[2030 어디 살아요]"돈 더 들어도 전세 대신 월세로"
월세전환율 5%…대출금리보다 높지만 월세 선호
서울 아파트 매입도 늘어·생애최초 청약도 인기
빌라왕 전세사기 피해자의 상당수가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중심으로 '전세 포비아'가 확산하면서 주거 선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높아지는 전월세전환율 등으로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공공임대마저 여전히 문턱이 높다. 빌라, 오피스텔부터 셰어하우스 등 대안 주거까지 2030세대의 주거 현황을 들여다봤다.
#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A씨(29)는 현재 강서구 화곡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직장과 멀지 않아 결혼 전까지는 이곳에서 거주할 생각이었지만 최근 빌라왕 사건이 터진 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에서 전세 2억원에 살고 있는 B씨(34)는 반전세 전환 조건으로 집주인과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계약 연장 조건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65만원으로 전월세전환율은 5% 가량이다. 현재 전세자금 대출 이자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잇따른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 상당수가 2030세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전세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빌라왕 사건 이후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 연장을 취소하거나 반전세 전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2030세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도 증가하면서 전세 수요자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 대신 반전세·월세 찾아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거래량은 4353건으로 지난해 4월(8109건)에 비해 46%가량 줄었다. 특히 1분기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도 총 1만6008건으로 지난해 1분기 2만2755건 대비 30%가량 줄었다.
전세 사기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전세 사기 피해지역 일대의 전세 거래량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는 5호선 화곡역과 가깝고 신축 빌라가 많아 2030세대 빌라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지난 4월 서울 강서구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거래량은 372건으로 지난해 801건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올 1분기 거래량도 146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74건)에 비해 35%가량 줄었다.
전세사기 주요 피해지역으로 지목된 인천 연립·다세대 전세수급지수도 지난해 10월(86.6) 90 밑으로 하락한 뒤 △2022년 11월 82.3 △12월 80 △2023년 1월 80 △2월 82.9로 하락 추세다. 전세수급지수가 100보다 작을 경우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와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2030세대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은 월세 등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경찰 발표에 따르면 전세사기 연령별 피해자는 20대가 18.1%(308명), 30대가 33.4%(570명)로 절반 이상이 2030세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외 40대는 13.3%(227명), 50대 9.7%(166명), 60대 6.3%(108명) 순이었다.
실제 현장에서도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하면서 월세 전환 요구가 늘고 전세 거래량은 줄고 있다고 보고 있다. 화곡동 A 중개업소에서는 "최근 빌라왕 사건 이후 이 일대에서 집을 구하려는 손님이 크게 줄었다"면서 "그나마 오는 손님들은 보증금 5000만원을 상한선으로 제시하면서 반전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화곡동 B 중개업소에서도 "전세 계약이 안 되니 집주인이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경우에는 먼저 반전세로 돌려 세입자를 받겠다고 한다"면서도 "당장 목돈이 없는 집주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화곡동에서 8년째 살고 있는 B씨는 전세보증금 2억원을 보증금 5000만원·월세 65만원으로 집주인과 기존 계약을 변경했다. B씨는 "혹시나 사고 터질까 전전긍긍하느니 월세가 낫겠다 싶었다"며 "월세로 나가는 비용은 아까워도 보증금 액수가 적어 보험에 들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세자금 대출 금리가 낮아지면서 월세보다는 전세가 유리한 상황이지만 전세자금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월세를 선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서울지역 전월세전환율'은 지난해 3월 4.7%에서 꾸준히 상승하면서 지난 2월 연 5%를 기록했다. 가령 기존 2억원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경우 매달 83만원(2억원*5%를 12개월로 나눈 값)가량의 월세를 내야 한다.
이와 비교하면 청년버팀목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대출금리가 1.5~2.1%(9일 기준)로 서울지역 전월세전환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 "빌라에서 발생하는 전세사기 비중이 늘어나면서 월세를 선호하는 등 전세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다만 최근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값이 동반 하락하고 전세사기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한 아파트 전세계약 비중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돈 더 들더라도 '아파트' 구해볼까
2030세대의 서울 아파트 매매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총 3234건 중 2030세대의 매매 건수는 1161건(35.9%)으로 나타났다. 2030세대의 서울 아파트 매수 건수는 지난해 12월 298건(29.8%)에 불과했지만 올해 1월(358건·30.8%), 2월(794건·34.7%), 3월(1161건·35.9%)로 꾸준히 늘었다.
상대적으로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대두되면서 아파트 매입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최근 전세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주택가격도 조정받으면서 전세 계약보다는 아파트 매입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수도권 청약에서 생애최초 특별공급 경쟁률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일 광명자이더샵포레나 특별공급에서는 생애최초 특별공급 122가구 모집에 796명이 지원하면서 6.5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다만 아파트 가격이 조정됐다 하더라도 금리가 높아지면서 아파트 매입에 따른 원리금 상환액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송 대표는 "최근 금리가 안정세라 하더라도 2~3년 전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라면서 "상환능력을 고려해 아파트 매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재민 (makmi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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