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일 청년교류에 발벗고 나선 독일인 韓명예영사…“한일, 문도 가슴도 열어라”

2023. 5. 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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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센州 대한민국 명예영사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박사
1990년 통일 후 동독으로 이주…“통일 과정 겪은 산증인”
동서독과 다른 남북한 “통일은 장기적 과제, 조금씩 열어야”
기자 출신 부인과 이름 딴 ‘한일 펠로우십 프로그램’ 설립
한일 미래 세대에 “독-프 관계 경험 공유하고파”
독일 작센주(州) 대한민국 명예영사인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박사가 9일 서울 인근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홀렌더스 박사는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미래세대간 교류가 중요하다며 부인 카롤린 뫼링 박사와 부부의 이름을 딴 '홀렌더스 한일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최은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작은 기여이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독일 작센주(州)의 대한민국 명예영사인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박사(71)는 통일 문제와 한일 관계에 대한 기자의 모든 질문에 곧바로 답변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 끝에 나온 말에는 힘이 있었다.

독일 작센주는 우리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드레스덴 선언’으로 알려진 드레스덴이 주도로, 홀렌더스 박사는 2012년 이곳의 대한민국 명예영사가 된 후 현재까지 한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명예영사로 독일의 통일 경험을 한국과 공유하며 한반도 평화 문제에 기여해 온 그는 이제 한일 미래세대 간 교류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헤럴드경제는 9일 홀렌더스 박사를 서울시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다소 낯선 명예영사 제도는 총영사관 또는 영사관을 두지 않은 곳에 외교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둘 수 있도록 한 재외공관설치법 7조에 따른다. 해당 지역에 5년 이상 거주해야 하고, 명예영사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명예영사는 직무수행에 필요한 자료에 관한 경비 등을 제외하고 별도의 봉급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직무영사와는 달리 영사직을 전임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단순 명예직은 아니다.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사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선박 및 항공기의 보호, 통상·경제·예술·과학 및 교육 등 교류 촉진 등 업무 중에서 외교부 장관이 지정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통상 주재국 국민인 경우가 많다.

홀렌더스 박사는 친구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 역동적인 매력을 느껴 지구 반대편의 나라를 자주 찾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뮌스터에서 태어나 줄곧 서독에서 살았던 그는 1990년 독일이 통일된 직후인 1992년 동독 지역이었던 드레스덴으로 이주했다. 한국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독일의 통일 과정을 설명한 연설을 인상깊게 본 김성환 당시 외교부 장관이 홀렌더스 박사를 옛 동독 지역의 첫 번째 대한민국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홀렌더스 박사는 독일 통일 직후 드레스덴으로 이주한 이유에 대해 “당시 독일은 흥분되는 상황이었고, 독일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며 “동독으로 가는 것 자체가 세계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고향인 뮌스터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세법 전문 변호사 겸 법무사로 활동했던 그는 드레스덴으로 이주한 후에도 법무사로 근무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법체계에서 동독의 체계를 처음부터 설계할 기회였다”며 자신을 “독일의 통일과 변화를 직접 본 산증인”이라고 소개했다.

독일 작센주(州) 대한민국 명예영사인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박사가 9일 서울 인근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홀렌더스 박사는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미래세대간 교류가 중요하다며 부인 카롤린 뫼링 박사와 부부의 이름을 딴 '홀렌더스 한일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최은지 기자

윤석열 정부는 현재 신(新)통일미래구상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정한 이후 30년 만에 새로운 통일정책을 작업하는 중이다. 독일 통일은 한반도 분단 극복을 위한 사실상의 유일한 참고 사례로 꼽힌다.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 상황에서 통일정책을 준비하는 한국이 가장 고려해야 하는 점에 대해 홀렌더스 박사는 “통일은 장기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조금씩 창문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1990년 통일이 됐을 당시의 독일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분명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홀렌더스 박사는 “남북한과 달리 동서독은 서로 전쟁하지 않았다”며 “당시 소련은 약했지만, 지금은 중국의 힘이 강하다는 국제 정세도 다르다”고 밝혔다.

당시 M.고르바초프에 의해 추진된 소련 개방과 개혁정책의 영향으로 동구권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고, 동독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 분위기가 형성됐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동맹으로 서독을 든든하게 지원했던 반면 소련은 경제와 군사적으로 취약한 상황으로 동독을 통제할 의지와 능력이 현저히 낮았다.

이와 달리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패권 전쟁 상황에서 전략적인 북중러 간 밀착은 통일 담론에 힘을 더욱 받지 못하게 한다. 이런 가운데 핵·미사일 도발을 단행하는 북한, 남북한이 분단되고 7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미래 세대와 통일 담론의 괴리 등 통일 정책은 곳곳이 장애물이다.

홀렌더스 박사는 “동독도 통일을 원하지 않았지만 동서독 간의 인적교류는 조금씩 이어져 왔었고, 결국 민의가 통일을 원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며 “인적교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을 염원하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독에서도 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지 못했지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민주적 가치였다”며 “인류애적 관점으로 도와줄 부분은 도와주고 협상해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독일 작센주(州) 대한민국 명예영사인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박사와 부인 카롤린 뫼링 박사가 9일 서울 인근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부의 이름을 딴 '홀렌더스 한일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설립해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미래세대간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최은지 기자

우연히 한국과 인연을 맺은 후 오랜 시간 한반도 평화 구축에 독일의 경험을 공유하며 기여해 온 홀렌더스 박사의 역할은 미래세대 교류 지원을 통한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부인 카롤린 뫼링 박사(69)와 함께 자신들의 이름을 딴 ‘홀렌더스 한일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한일 양국의 젊은 정치, 언론, 시민사회 지도자들을 유럽의 의미 있는 나라로 초청하는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내년 봄 첫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배경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 개선을 경험한 부부의 젊은 시절이 있다. 뫼링 박사는 “과학전문기자로 독일과 프랑스의 청년 교류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던 적이 있는데, 당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혜택을 받았다”며 “이러한 경험을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일 양국의 다음 세대에 공유해 제가 받은 혜택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던 독일과 프랑스는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적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으나, 2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적극적인 과거사 청산과 유럽연합(EU)의 창설로 관계가 진전돼 우방국으로 발전했다.

뫼링 박사는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 개선에 미래 세대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을 목도했다”라며 “한일 관계 개선이 중요하고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양국 미래 세대가 모여 방안을 찾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홀렌더스 박사는 “위안부 문제를 처음 알게 됐을 때 피해자들의 인권과 합당한 방책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고, 못지않게 화해를 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미래 세대가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은 시작이 앞으로 한일 관계를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부부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고심한 끝에 “문을 열고, 팔을 열고, 가슴을 열어라”는 독일의 속담을 소개했다. 홀렌더스 박사는 “제가 한국에 세 번째 왔을 때였다. 한국 분들이 굉장히 예의바르지만 그 때문에 좀 거리감을 느꼈는데, 친구인 김황식 총리가 나를 보자마자 허그를 했다”며 “그때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끼며 감명을 받았고,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한국에서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김황식 전 총리가 과거 한 칼럼에서 홀렌더스 박사를 소개할 정도로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독일 작센주(州) 대한민국 명예영사인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박사와 부인 카롤린 뫼링 박사가 9일 서울 인근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부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홀렌더스 한일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설립해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미래세대 간 교류이 장을 마련했다. 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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