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산불도 1주일 전 예측 가능?…‘한국식 기후모델’ 방정식 푼다

김정수 2023. 5. 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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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한국의 기후과학자
기후변화 분석 도구 ‘기후모델’ 연구
윤진호 광주과기원 환경공학과 교수
윤진호 광주과기원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광주과기원 기후분석모델링 연구실의 컴퓨터 서버 앞에 섰다. 윤 교수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기후모델 분석은 외부 슈퍼컴퓨터를 활용하고, 계산량이 많지 않은 단순한 기후모델 분석은 자체 컴퓨터를 활용해 하고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a href=\"mailto:jsk21@hani.co.kr\"jsk21@hani.co.kr/a

“세계가 온실가스를 가장 덜 배출하는 경로로 가도 2040년 이전에 지구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 보다 1.5도 상승할 확률이 50% 이상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6차 기후변화평가 보고서에 담겨 있는 과학계의 이런 예측은 기후모델을 사용해 나왔다. 기후모델은 대기, 해양, 지표면, 얼음과 같은 기후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 작용을 복잡한 방정식들로 표현해 가상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지구와 기후를 조작하는 실험 연구가 불가능한 기후변화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 도구다. 윤진호(49)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공학과 교수는 아이피시시 6차 보고서에 주저자로도 활동한 기후모델 분야 전문가다. 그를 지난 3일 광주과기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 이름이 ‘기후분석모델링 연구실’인데 주로 어떤 연구를 하는 곳인가?

“기후변화를 연구할 때 보통 처음에는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분석을 하게 되는데, 관측 자료나 누가 시뮬레이션 해놓은 결과를 가지고 분석을 하면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 연구실에서는 분석과 모델까지 조금 포괄적으로 하려고 한다.”

―다른 연구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션 자료를 다시 분석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이피시시 보고서를 쓰려고 전 세계에 있는 몇 십 개 센터에서 각기 기후 모델을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자료량이 1~2 테라바이트가 아니라 몇백 테라바이트여서 자료를 만든 센터도 다 분석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각 센터가 그 자료를 다 공개해서 다른 연구자들이 분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직접 기후모델을 만드는 연구도 하나?

“모델을 만드는 것은 워낙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개인 연구자 한 명이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학 연구실에서는 모델 전체를 다 할 수는 없고 모델 안에 있는 특정 구성요소를 따로 떼서 개선하거나 개발하는 연구를 한다. 연구실의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모델 개발하는 것에 정말 관심 있으면 하는 것도 좋은데, 그러면 박사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 4~5년 안에도 박사 논문을 끝내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웃음) 사실 우리 기상과학원이나 해양과학기술원의 모델도 영국과 미국의 기존 모델을 가져와 몇 가지 구성요소들을 바꿔서 만든 것이다.

―국내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만든 ‘국산 모델’은 없다는 얘기인데.

“한 20년 전이라면 해외에서도 개발해놓은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개발된 기후모델들이 소스 코드까지 다 공개된 ‘공유 모델’이 돼 있다. 그래서 그 모델에서 시작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거기서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한국에 특화된 것을 만들면 된다. 우리 연구실 프로젝트 중에 지금 동아시아 쪽에서 크게 이슈가 된 미세먼지에 집중한 기후모델을 만들려는 것이 있는데, 그것도 미국의 예전 모델을 가져와서 좀 고치고 덧붙이고 하는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피시시 제5차 종합보고서를 보면 신뢰도가 ‘중간’ 이하로 표시된 대목들이 꽤 있는데, 8년 만에 나온 이번 제6차 보고서에도 그런 대목들이 보인다. 기후모델의 한계 때문이라고 봐야 하나?

“구름과 강수 같은 현상들은 여전히 기후모델의 불확실성이 크다. 그런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단순히 모델의 한계라기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절대적인 관측의 양이 부족한 것과 맞물려 있다. 특히 온도나 강수량 같은 것은 지상에서 관측하는 포인트들이 굉장히 많고 인공위성에서도 관측이 되는데 구름 같은 경우에는 인공위성으로 관측하기도 힘들다. 상층에 구름이 낀 경우 아래 층은 못 보고, 레이저를 쓰면 구름층을 뚫고 관측이 가능하지만 넓은 범위를 못 본다.”

―기후 과학에서 가장 불확실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

“구름과 에어로솔(대기 중에 부유하는 미세입자)이라고 할 수 있다. 구름은 위치한 높이에 따라 역할이 확 달라진다. 또 주로 어떤 것으로 구성되느냐에 따라 에너지를 더 가둘 수도 반대로 더 반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마나 지표에 가까이 있는지, 또 물과 얼음 비율이 어떤지가 무척 중요한데 대기 중에서는 ‘과포화수적’이라고 해서 주변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얼음으로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다. 관측 자료 부족으로 그런 물방울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등의 정보가 불확실한데다 미세먼지 같은 에어로솔과도 연결돼 더욱 불확실성이 높다. 이런 것이 기후변화 예측에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기존 기후모델들이 너무 보수적이어서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선 모델 자체가 모의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직 꽤 있다. 대표적인 게 해수면 상승이다. 지금까지 기후모델에서는 해양 유체 운동에 ‘부시네스크 가정’(밀도의 변화를 무시하는 것)을 적용하고 있다. 쉽게 말해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의 전체 부피가 불어나 해수면이 상승하는데, 대부분의 기후모델에서는 바다에 있는 물의 전체 부피가 고정돼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나온 해수면 상승 예측치는 모델을 돌려 모의해 나온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이 온도와 같은 조건을 고려해 추정한 결과로 보면 된다. 아이피시시 6차 보고서에서 몇 개 모델이 해수면 상승까지 실제 모의를 시작했지만, 5차 보고서 때만 해도 어느 모델도 그렇게 못했다.”

―기후모델에서 바닷물의 부피가 변화하는 것으로 가정을 바꾸면 되지 않나?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하면 모델의 방정식이 좀 더 복잡해져서 모델을 구성하기 힘들어진다. 기후모델이란 것이 지구를 복사하는 것이지만 모든 걸 다 포함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해양 모델에서는 오랫 동안 그런 가정을 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컴퓨터도 커졌고 복잡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국의 기후변화 연구는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나?

“연구자들이 다들 왕성하게 활동하고 좋은 논문도 많이 쓰고 있지만 연구자 풀이 좀 작은 편이다. 더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려면 우선 연구하는 사람들이 좀더 늘어야 한다. 기후변화 연구는 일정 정도 기초과학 쪽에 속해 장기적으로 오래 투자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구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이뤄져야 연구자도 더 늘고 좋은 연구도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기후모델이 외국에서 보기에 한국이 기후변화 연구에 얼마나 투자하는지에 대한 척도일 수 있는데, 아이피시시 5차 보고서 때까지는 우리 기후모델 하나 없었다. 그러다 6차 보고서 때 두 세 개 생겨 좀 나아졌다.”

―기후분석모델링 연구실에서 기후모델을 적용해서 한 주요 연구 사례를 든다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를 말하자면 산불 예측 연구다. 산불이 날 수 있는 위험을 파악해 대응하려면 고해상도 자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통 기후모델의 해상도는 가로·세로 각 100킬로미터의 박스로 나와서 지방자치단체 같은 데서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가로·세로 각 4킬로미터 정도의 박스로 해상도를 높여서 대형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은 기상 조건을 최대 1주일 전에 예측해 산불 위험도를 알려주는 모델을 개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작년에 논문으로 발표했고, 이제는 그것을 강수량이나 기온 같은 것에도 적용해보려고 한다.”

―산불 예측의 해상도를 어떻게 그렇게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나?

“인공지능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사진앱 가운데 옛날 사진을 스캔하면 요즘 찍은 것처럼 좋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다. 그런 알고리즘을 거의 그대로 갖고 와서 우리 쪽에 적용한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에이아이가 학습을 해서 고해상도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기후변화 예측을 인공지능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은 어떨까?

“인공지능이 우리가 늘 사용하는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보지 못하던 것들, 한 두 단계 숨어 있는 것들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해 볼 가치는 충분하지만 문제는 결국 학습시킬 데이터다. 인공지능을 활용함에 있어서 무엇을 어떤 데이터로 학습시킬지부터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은 일단 모델 전체를 다 인공지능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모델에서 제일 약한 부분의 관계식을 인공지능 기반의 방법으로 대체하고, 모델이 입력할 관측 자료를 사전 처리해 잡음을 제거하고, 최종 결과물을 보정하는데 쓰는 것 등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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