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지진에 발꼬인 에르도안… ‘21세기 간디’에 20년 옹성 내주나[Global Focus]
에르도안, 가정용 무상 가스 등
보수이슬람·저소득층 집중공략
당선 땐 총 30년 장기집권 열려
클르츠다로을루, 정부실정 맹공
금융·언론·사법권 등 독립 강화
최근 여론조사서 50.9%로 과반
대선 이후 나토·우크라 전쟁 등
정치·외교적 행보 변화에 촉각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20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릴까. 오는 14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명운을 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상대는 ‘튀르키예의 간디’라 불리는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스트롱맨’의 대표 격인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말하는 방식도, 정치적 스펙트럼도 모두 다른 인물이다. 그야말로 ‘21세기 술탄’과 ‘21세기 간디’의 대결인 셈이다. 전 세계의 이목도 튀르키예 대선으로 쏠리고 있다. 폴리티코는 튀르키예 대선을 가리켜 ‘2023년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대진표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상황 속 튀르키예의 입장,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내 튀르키예의 역할, 미국·유럽연합(EU)·러시아와의 관계 등 대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하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튀르키예의 정치·외교적 방향이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에르도안 철권통치 유지될까… 튀르키예 ‘간디’ 변수 = 이번 선거에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비롯해 무하람 인제 조국당 대표,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 등 총 4명이 출마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최근 여론 조사상 인제 대표와 오안 대표 표 지지율을 합쳐도 10%를 넘기지 못해, 사실상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양강 구도다.
에르도안·클르츠다로을루 두 후보는 여야 당적만큼이나 뚜렷하게 다른 특징을 보인다. 먼저 정치 스타일이 확연하게 갈린다. 에르도안은 ‘21세기 술탄’이란 별명답게 언사가 거침이 없다. 그는 2020년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말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는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침착함의 대명사다. 그가 2014년 의회에서 연설하려다 괴한에게 맞았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두 차례 주먹으로 가격당하며 눈과 뺨에 멍이 들었지만, 그는 동료들에게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장애물로 가득하다”며 침착함을 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튀르키예에서는 인도의 정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를 빗대 그에게 ‘간디 케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양강 구도 속에 2003년 총리 취임 이후 20년 넘게 집권해오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치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가 이를 증명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여론조사업체 MAK가 지난 4월 26일∼5월 4일 전국 성인 5750명을 대상으로 ‘오는 14일 대선에서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겠는가’라고 묻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손을 든 응답자가 50.9%로 과반을 차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45.4%였다.
◇대선 쟁점과 공약은 = 핵심은 경제난 해결이다. 튀르키예는 2017년 개헌으로 대통령제 국가가 됐는데, 이듬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임기부터 리라화 가치가 76%나 폭락했다. 반면 물가는 치솟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년 대비 상승률이 85%를 넘겼는데, 이는 최근 24년간 최고 기록이다. 지난 2월 5만여 명이 사망한 대지진 이후 미흡했던 정부의 초기 대응도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튀르키예 경제성장률은 2021년 11.4%에서 지난해 5.6%로 절반가량 떨어졌는데, 지진 여파로 최대 2%포인트 더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한 듯 일단 집토끼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농촌 지역, 보수 이슬람 신자 층을 공략하며 조기 연금 수령·수입 농산물 관세 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5월 한 달 동안 가정용 천연가스를 ‘무상 공급’하는 정책도 시행하는 상태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회계사 출신임을 내세워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정치적 실정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독립하는 것은 물론, 언론 자유와 사법권 독립을 강화하고 현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회주의 체제로 회귀하겠다고 내건 상태다. 이른바 ‘에르도안의 유산’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에르도안 승패 시 향후 외교 시나리오는 =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개헌안에 따라 최대 2033년까지 총 30년 장기 집권의 길이 열린다. 그가 69세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 집권이다. 승리 시 국제사회의 ‘급한 불’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친(親)러시아 행보를 강화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도 방해하는 등 서방에 어깃장을 놓아 왔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노골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당선될 경우 가장 먼저 유럽연합(EU)과 나토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의회에서 미루고 있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안 비준도 처리될 수 있다. 또 이슬람주의 대신 세속주의 이념을 다시 확립하고, 이에 따른 합리적인 경제 정책이 운용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패배 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 에르도안 대통령은 승리를 자신하며, 야당 연합의 결속을 부정하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에르도안이 패배를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14일 투표에서 승패가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여론조사 추세상 압도적인 ‘과반 후보’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투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2주 뒤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당선인을 가린다. 이 경우 늦어도 28일에는 당선자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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