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잔나비가 입증했죠…‘KBS 심야 음악방송’의 필요성

남지은 2023. 5.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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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노영심’부터 최근 ‘더 시즌즈’까지
30년 역사…최정훈 진행 ‘밤의 공원’ 14일부터
지난 9일 ‘밤의 공원’ 첫 녹화에서 장기하, 김창완, 최정훈이 한 무대에 오른 드문 그림이 펼쳐졌다. 한국방송 제공

“잔나비 음악의 뿌리”라는 산울림 김창완과 잔나비 보컬 최정훈 그리고 장기하가 서로의 음악에 대해 얘기하고, 장기하는 최정훈과 함께 자신의 곡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열창한다. “이 순간이 꿈만 같다”는 최정훈의 말처럼 다시 보기 힘든 그림이다.

지난 9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신관 공개홀 <더 시즌즈-최정훈의 밤의 공원>(14일부터 일 밤 10시55분) 첫 녹화 현장은 지상파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밤의 공원>은 지난달 23일 끝난 <박재범의 드라이브>에 이은 <더 시즌즈> 두번째 이야기. <유희열의 스케치북> 후속으로 지난 2월 시작한 <더 시즌즈>는 1년에 네번 진행자와 색깔을 바꿔 선보인다.

이창수 피디는 “그동안 (음악 프로그램이) 보편성에 초점을 뒀다면, <더 시즌즈>는 개별성에 더욱 중점을 뒀다. 진행자에 맞춰서 새로운 느낌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앞서 사회를 본 래퍼 박재범은 출연 가수가 노래할 때 무대에 올라 흥을 돋우는 등 자유분방한 진행으로 기존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선입견을 깼다.

장기하는 최정훈과 함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불렀다. 한국방송 제공

<밤의 공원>은 음악에 집중한다. 첫 녹화 현장에서 좋은 곡을 듣길 원하는 이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주로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던 잔나비의 음악이 나오고, 장기하는 “내 곡을 누구와 함께 부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김창완은 드라마 출연 배우들과 부르려고 만든 곡을 이날 들려줬다. 최정훈은 “음악과 노래에 조금 더 집중해서 진행할 것이다. 한국 음악의 뿌리, 줄기, 가지까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더 시즌즈>는 1992년부터 시작한 <한국방송>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1992~1994) <이문세 쇼>(1995~1996) <이소라의 프로포즈>(1996~2002) <윤도현의 러브레터>(2002~2008) <이하나의 페퍼민트>(2008~2009) <유희열의 스케치북>(2009~2022)까지 이어졌는데, 13년 동안 진행한 유희열이 ‘표절 논란’으로 물러난 뒤 7개월 동안 맥이 끊긴 상태였다. ‘선배 사회자’들도 쟁쟁해 후임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더 시즌즈>라는 새로운 포맷은 영리한 변화였던 셈이다.

다만 기존 프로그램과 색깔이 너무 달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이창수 피디는 “티브이(TV)는 물론 웹에서도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흐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우리나라에 정말 많은 뮤지션들이 있는데, 그 분들을 새롭게 깨워서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30년간 방송한 KBS 심야 음악 프로그램들. 한국방송 제공, 유튜브 갈무리.

심야 음악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높지 않다. <스케치북>은 1~2%대까지 떨어졌고 <드라이브>도 그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좋은 가수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지상파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존재 의미를 찾기도 한다. 잔나비는 2017년 2월 <스케치북>에 출연했고, 장기하도 2008년 11월 <페퍼민트>에서 ‘싸구려 커피’를 부르며 데뷔했다. 이런 무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아는 최정훈은 “<스케치북>이 끝난 뒤 주변의 많은 뮤지션들이 이제 음악을 발표하며 설 무대가 없어진 것 같다고 고민했다. 더 좋은 뮤지션과 곡을 소개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해 진행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더 시즌즈’ 두번째 진행자 잔나비 최정훈. 한국방송 제공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30년간 이어온 힘은 “이 시대에 팔리는 음악이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한 음악을 소개하려는 노력”이다. <밤의 공원>도 유행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방송> 음악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맡아온 강승원 음악감독은 “음악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지만 각자 마음속에 나만의 음악을 갖고 있지 않나. <더 시즌즈>가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음악이 거기 있구나,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프로그램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창수 피디는 “쇼트폼 안에서 짧게 편집한 음악을 보여줘야 인기가 많아지는 시대지만, 그래서 내 음악에 대해 진지하고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석형 피디는 “음악을 취향대로 듣기도 하지만, 1주일에 한번쯤은 프로그램에서 좋은 곡을 소개받고 찾아 듣게 하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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