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의 ‘희토류 제로’ 선언… 모두가 불가능하다는데[홀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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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열린 테슬라 투자자 행사에서 나온 소식이 완성차 업체들을 비롯한 산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이 행사에서 테슬라 파워트레인 사업부 임원 콜린 캠벨은 “공급망 문제와 희토류 자석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 때문에 모터에서 희토류 자석을 제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방침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마스터 플랜 파트3′의 핵심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행사에서 캠벨은 희토류 1·2·3으로 표시된 세 가지 물질이 등장하는 두 장의 슬라이드를 공개했습니다. 첫 번째 슬라이드에는 테슬라 모터에 사용되는 희토류의 양이 각각 500g·10g·10g으로 표시돼 있었습니다. 반면 다음 슬라이드에는 세 희토류가 모두 0g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희토류 2·3은 분명치 않지만, 희토류 1의 정체는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모터에 사용되는 영구자석의 핵심인 희토류 금속 네오디뮴입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실제로 희토류 없는 자석 또는 희토류를 줄인 자석 실험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발표 이후 희토류 생산 회사와 공급 업체들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습니다. 하지만 이 발표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테슬라가 새로운 자석을 개발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와이어드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분명한 사실”이라며 “새로운 상업용 자석은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테슬라가 기존에 이미 발명 또는 발견된 방식을 다시 이용하려 한다는 얘기입니다.
◇독특한 성질 가진 희토류
희토류 자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희토류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죠. 희토류는 원소기호 57번부터 71번까지의 란타넘(란탄)계 원소 15개, 21번 스칸듐(Sc), 39번 이트륨(Y) 등 모두 17개 원소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자연계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금속 원소’라는 뜻이고, 영어로는 ‘땅에 거의 없는 성분(rare earth elements)’이라고 합니다. 원소 이름이 ‘숨어 있다(란타넘)’, ‘얻기 어렵다(디스프로슘)’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구 상에 희토류가 드문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광물 원소처럼 농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광물과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 분리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희토류가 관심을 끄는 것은 지구 상의 다른 원소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천 가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물질’로 불립니다. 사이언스뉴스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색을 발하게 하는 것, 유로화 위조를 방지하는 형광 물질, 해저를 가로지르는 광섬유 케이블, 전기차와 컴퓨터의 자석, 헤드폰의 음파 생성, 열추적 미사일의 궤적 이동, 양자컴퓨터 제작 등이 모두 희토류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희토류가 특별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독특한 전자(電子) 구조 덕분입니다.
희토류 원소에는 특별한 궤도를 도는 f-전자라는 전자들이 있는데, 외부 자극을 받으면 궤도를 오가며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이 에너지를 활용해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낼 수 있죠. 시장전문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100억 달러 어치의 희토류로 완제품을 만들면 2조~3조 달러 규모가 됩니다. 산업에 미치는 희토류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네오디뮴 대신 페라이트 쓸 듯
희토류의 용도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이 자석입니다. 희토류의 f-전자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거나 회전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를 이용하면 영구 자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기차의 핵심인 모터가 바로 네오디뮴을 이용한 합금으로 만들어집니다. 네오디뮴은 쉽게 부식되고 부서지는 데에다, 섭씨 80도가 넘으면 자력이 떨어집니다. 이 때문에 철-붕소와 섞어 합금을 만듭니다. 네오디뮴 자석은 3kg의 자석으로 300kg이 넘는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테슬라는 원래 희토류로 만든 영구 자석을 쓰지 않았습니다. 전기가 흐르면 자력을 발휘하는 전자석을 이용한 모터를 사용했죠. 하지만 5년 전 모델3를 양산하면서부터 뒷바퀴 구동 모터에 네오디뮴 자석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자성으로 더 먼 거리를 주행할 수 있도록 하고 토크를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앞바퀴에는 여전히 전자석을 쓰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희토류 제로 선언은 이 때문에 업계의 의구심으로 이어집니다. 강한 자석이 더 많은 주행거리를 보장하니까 말이죠.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희토류 자석 대신 페라이트를 쓰려고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와이어드는 “1950년대부터 냉장고 문을 닫는 데 사용되는 페라이트는 철과 산소로 구성된 세라믹에 스트론튬과 같은 금속을 약간 첨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면서 “저렴하고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네오디뮴 자석과 비교하면 부피 대비 자력이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같은 성능을 내기 위해 훨씬 더 무겁고 큰 자석으로 모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이 장악한 공급망이 진짜 문제
천하의 머스크가 대안없이 무모한 계획을 추진할 가능성은 작습니다. 와이어드는 “모터는 이론적으로 약한 자석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부품 재배치와 설계 방식 변경을 통해 해결할 여지가 많은 복잡한 기계장치”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소재 회사인 프로테리얼은 최근 무게를 대폭 줄인 페라이트 자석 활용 모터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머스크는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시도하고 있을까요. 바로 희토류 공급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 중국의 덩샤오핑은 “희토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와 동등한 자원”이라고 선언하고 희토류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희토류 채굴, 가공, 자석 제품화를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됐습니다.
특히 희토류는 심각한 오염 산업입니다. 네오디뮴은 우라늄, 토륨과 같은 방사성 원소나 다른 희토류 원소와 결합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독성이 강한 화학약품으로 이를 씻어내는 과정에서 광산과 하천이 오염되고 종사자는 물론 주변 마을 사람들까지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사양산업화되는 동안 정부 통제가 가능한 중국이 희토류 산업 전체를 장악한 겁니다. 미국은 2000년대 초 문을 닫았던 캘리포니아의 마운틴패스 광산을 다시 열어 희토류 생산에 나선 상태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가져간 희토류 패권을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심지어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희토류의 12%가 전기차에 사용되고 있고, 그 비중은 급속히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정책에 따라 언제든 전기차 공급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아직 근본적인 대체 물질 없어
희토류 자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과학자들을 따르면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도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물질이어야 합니다. 자성을 띠고, 다른 자기장 속에서도 자성을 유지하고, 고온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수십만 가지의 물질을 후보군에 올려놓은 다음, 희토류가 함유된 물질을 버리고 남은 물질의 원자 배열을 인공지능 기법인 딥러닝(심층 학습)으로 탐색하고 있습니다. 자석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죠. 운석에서만 발견되는 니켈-철 화합물인 테트라테나이트도 강력한 영구자석 후보입니다.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지는 테트라테나이트를 인공으로 훨씬 빨리 만드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자석 스타트업인 니론의 질화철 자석도 관심을 끌고 있지만 원하는 대로 가공하기 어렵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기술은 재활용입니다. 현재 1%에 불과한 희토류 재활용을 철이나 구리처럼 쉽게 만들면 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회수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서 네오디뮴을 회수하면 10년간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수요의 5%를 충족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언젠가 희토류가 없어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머스크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온 발상이 희토류를 쓰지 않겠다는 거죠. 다만 머스크의 다른 계획이 그랬듯이, 테슬라 전기차에서 당장 희토류가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머스크의 계획에는 항상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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