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대통령' 파월의 희망회로 [맨해튼 클래스]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 5. 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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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맨해튼 클래스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편집자주] 세계인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뉴욕(NYC)과 맨해튼(Manhattan)에 대해 씁니다. 국방비만 일천조를 쓰는 미국과 그 중심의 경제, 문화, 예술, 의식주를 틈나는 대로 써봅니다. '천조국'에서 족적을 남긴 한국인의 분투기도 전합니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023년 5월 FOMC(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한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금리인하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부정하고 있다. /사진= CNBC 생방송 캡쳐


"파월이 연임한 덕분에 은행 4개가 망했다." 미국 금융인들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자신의 연임을 위해 늑장을 부리다가 뒤늦게 금리를 올려 은행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파월을 금융 전문가가 아닌 그저 정치인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그는 적어도 학력에 있어서는 정치가(家) 코스에 적합한 길을 걸었다. 프린스턴에서 정치학사를, 조지타운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담당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물론 파월은 월가 투자은행 딜런,리드&코에서 일했지만 그 이후에도 사모펀드(PEF) 운용사 칼라일 등에서 법무 관련 일을 주로 맡았다. 공화당원인 그는 2011년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이 연준 이사로 임명했는데 스스로의 변신에 능했던 걸로 알려졌다. 도널트 트럼프가 집권하면서는 연준에 있다가 어부지리로 의장에 올랐다. 트럼프가 재닛 옐런 의장을 해임시킨 덕분이다.

파월은 그 때문인지 트럼프 눈치를 많이 봤다. 그가 2018년 12월에 금리를 올리자 트럼프는 대뜸 비서진에 파월을 쫓아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실제 트위터에서도 파월을 비난했다. 물론 연준 의장을 대통령 마음대로 자를 수는 없었다.

파월은 코로나19 발생 후 기준금리를 3월 한 달에만 150bp나 내려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다. 재선이 유력하던 트럼프 뜻대로 돈을 풀어 재낀 것이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됐고 이후에도 금리를 올리지 않아 재신임됐다.

새 대통령의 재정정책을 지원하려 미적거리던 그는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가 됐다. 전전임 벤 버냉키가 파월 때문에 인플레가 폭발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파월은 2022년 3월에 25bp, 5월에 50bp를 올렸지만, 6월에도 물가상승률이 8.6%에 달하자 그제서야 75bp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위협으로 서민들이 아우성을 치니까 비로소 외양간에 달려든 셈이다.

연준 내에서도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총재 같은 사람은 파월이 마음에 들리 없다. 그는 인디애나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990년부터 한 눈 팔지 않고 연준에서 일하며 금리정책을 주도해온 이다. 매파인 불라드는 기준금리를 크게 빨리 올리고, 경제에 충격이 없도록, 또 빨리 내리자고 한다. 하지만 파월은 매파인 불라드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정무적이다.

1년 2개월 동안 파월은 '뒤늦게', '부랴부랴' 기준금리를 500bp나 올렸다. 그런 후폭풍으로 미국에선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이 망했다. 유럽계로는 세계 5위권에 들었던 크레디트스위스(CS)까지 사라졌다.

1년새 500bp를 올리고 지난 4월에 이르러서야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대(4.9%)로 들어왔다. 지난해 중순 9.3%까지 찍었던 전년비 물가상승률은 2년 만에야 사정권으로 들어온 셈이다. 하지만 2%대 목표를 달성하려면 반 년은 더 고금리를 유지해야 할 듯 싶다. 낙타 등처럼 다시 튈 가능성을 파월은 가장 경계하고 있다.

그가 실수를 한 번만 더 하면 최악의 연준 총재로 기록될 것이다. 율사 출신이지만 금융계와 사모펀드 등에서 일하며 6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모았다. 때문에 칠순이 넘은 그에게 남은 건 명예욕이지 재물욕은 아니란 지적에 일 리가 있다. 연임에 집착했던 이유도 월가로 돌아가 돈을 더 벌거나 막연히 자리를 지켜려던 때문은 아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경제에 희망을 남기고 떠나겠다는 심산이다.

이런 배경에서 그가 최근 은행들이 나자빠지는 상황에서도 금리인상을 강행(5월)하고 피봇 가능성을 일축하는 까닭을 다른 이유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파월을 임명한 오마바가 그에게 월가의 구조조정 임무를 맡겼던 터라 그 미션을 이제서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뜻한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성공한 고액자산가들의 돈을 굴리며 은행 관계자 대출을 일삼던 이들은 사실 도덕적 해이의 극단에 있었다. 고객들이 맡긴 돈을 별 고민없이 연준이 발행한 장기국채로 돌리던 이런 은행들이 이번에 모조리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그래서 파월이 이번 기회에 쭉정이를 골라내고 있는 것이라는 그럴 듯한 분석도 나온다.

파월의 임기는 2026년 2월 말까지다. 당초 이도저도 아닌 스탠스로 매파나 비둘기파도 아닌 올빼미파로 조롱당했던 그는 두 번째 임기의 1년을 '각성한 매파'로 살았다.

트럼프와 코로나 시대를 지나 반세기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을 잡아낸 세계 경제대통령. 그가 내년부터 금리를 내려 주식시장의 찬사를 받으며 명예롭게 퇴임하는 시나리오를 실행하려면 금융위기와 같은 변수는 없어야 한다. 파월은 지난 5월 FOMC(공개시장위원회)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아직까지 미국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런 해피엔딩은 이뤄질 수 있을까.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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