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야영비 대신 술값이나 내쇼" 매화 명당에서 하룻밤
시크한 사장님이 내준 매화 명당에서 하룻밤
백패커에게 화려한 꽃이 피어나는 봄산은 그림의 떡이다. 눈 녹은 살풍경에 지친 안구를 아름다운 꽃을 보며 정화시키고 싶은 욕구와 산불방지기간에 금지구간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투철한 준법 정신, 그리고 개방구간이라도 산불소식에 비화식으로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마음이 뒤섞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가자고 들썩거리는 배낭을 보며 조용히 사람 없는 곳을 검색해 본다. 어딜 봐도 봄 향기가 가득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봄을 찾아 검색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심한 척 막바지 매화축제가 한창인 광양행 버스 표를 검색해 봤다. 매진이었다. '에잇 잘됐네! 조용한데 가자' 실망 반 포기 반이었다. '광주는?' 예전에 광양으로 갈 때 광주에서 환승한 적 있던 터라 검색해 봤다. 축제기간 동안 광주에서 매화마을로 가는 셔틀이 운행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버스표를 예약했다. 마음 따로 행동 따로였다. '비화식으로 준비해서 매화만 구경하고 쫓비산에서 잠만 자고 오면 되지 뭐!' 이렇게 나는 또 나를 속였다.
급 결성된 멤버인 전주에 사는 김효주와 인천에 사는 김나윤과는 광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각자 첫차를 타고 광주에 도착해야 마지막 오전 10시 셔틀을 탈 수 있었다. 효주는 일찍 도착했지만, 나윤이와 나는 주말 나들이객들의 교통체증으로 30분이나 늦어 출발하려는 셔틀을 겨우 잡아 올라탔다. 한 시간 반을 달린 셔틀이 매화마을에 근접하자 차량과 사람이 빼곡했다. 마을에 들어가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 차에서 내린 다음 걸었다. 거리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매화와 상춘객들로 가득했다.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 야영하고 다음날 일찍 내려와 구경할까 했지만 밝은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매화는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질 않았다.
결국 배낭을 멘 채 매화마을을 구석구석 휘젓고 다녔다. 빼곡한 나무들 사이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축제기간 동안 매화농장 주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주막을 연 듯 했다. 자리에 앉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산행을 해야 해서 다음날 하산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따금씩 백패커를 발견할 때마다 '쫓비산 데크에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하는 불안한 눈빛을 나누었지만 일단은 매화가 목적이니까 매화에 충실하기로 했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매화마을의 끝에 다다랐다. 이제 쫓비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주어진 시간을 꼼꼼하게 소비하느라 야영지가 남아 있지 않을까 봐 걱정이었다. 하산객에게 데크 상황을 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위에 백패커들이 많이 와있나요?"
"한 12명 정도 와있는 것 같던데요?"
절망적이었다. 12명이 텐트 각 1동씩에, 쉘터까지 친다고 하면 이미 포화상태일 것이다. 일단 올라가보자.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였다. 노지 아무데나 야영하기엔 무릉도원의 매화나무가 너무나 눈앞에 아른거렸다.
"우리 일단 내려가서 매화나무 아래에서 매화막걸리 한 잔 하고, 택시 타고 나가서 시내에서 잘까?"
효주와 나윤이도 이미 매화에 푹 빠져 있었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찬성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그리곤 매화가 가장 멋들어지게 늘어진 주막을 찾아갔다. 보잘것없는 플라스틱 테이블임에도 매화나무 아래에 있다는 것만으로 럭셔리한 느낌이었다. 알바생인 듯 어린 청년이 매화막걸리와 파전을 들고 왔다. 달달한 막걸리 한 잔에 취한 건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취한 건지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매화나무 아래에서 유비, 관우, 장비라도 된 양 매원결의梅園結義를 외쳤다. 금세 비운 병을 흔들며 사장님을 부르자 이번에는 진짜 사장님이 오셨다.
"오메, 이 큰 배낭들은 뭐시여? 위에서 자고 오요?"
"아뇨~ 위에서 야영하려고 했는데, 이미 꽉 차서 그냥 내려왔어요. 여기서 한잔하고, 택시 타고 시내 나가서 자려구요."
"오메~~ 그람 여기서 텐트 치고 자쑈~~테이블 치워 줄랑께. 뭐 하러 거기까지 가요?"
"와~진짜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야영비 낼게요!"
"술값이나 내고 가쑈!"
그러곤 시크하게 걸어가셨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잠자리 걱정이 사라진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더욱 느긋하게 즐겼다.
해가 지고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테이블을 치우고 텐트를 쳤다. 텐트와 매화나무에 랜턴을 켜 놓으니 분위기가 더욱 낭만적이었다. 순간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랜턴 빛을 머금은 매화 잎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효주가 선곡한 재즈곡 선율이 매화마을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눈에 대고 빛을 차단했다. 잠시 초점이 맞춰지는가 싶더니 별이 보였다. 매화 잎만큼이나 무수한 별이 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랜턴 빛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매화나무가 보이면서도 별이 잘 보이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오늘밤은 매화와 움직이는 별을 함께 담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멋진 조합이다.
다음날 새벽 웅성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텐트 문을 열어 보니 사진작가들이 몰려와 있었다.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 있어야 했지만 좋은 구도를 선점하기 위해 서두른 듯했다. 밤새 별을 찍고 있던 카메라를 회수했다. 별과 매화가 제법 만족스럽게 찍혔다. 새벽 공기를 머금고 선명해진 매화꽃 아래의 텐트 풍경을 담은 후 철수했다. 길거리에 사람이 넘쳐나기 전에 드론을 날렸다. 섬진강 너머 하동마을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그대로 해가 솟아올랐다.
태양은 잠든 매화마을을 깨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축제 마지막 날을 즐기기 위해 하나 둘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장사 준비를 하시는 사장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마을에서 내려갔다. 전날 긴 줄을 이뤘던 포토존이 아침이라 좀 한산했다. 세 명 모두 포토존에 연연해 하지 않는 편이지만, 기회가 있는데 굳이 건너 뛸 것까진 없을 것 같아 슬쩍 자리를 잡았다.
이미 자리잡고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새치기와 눈치싸움이 맹렬하게 치고 들어왔다. 경쟁자를 물리치며 사진 몇 장 건지고 재빨리 빠져 나왔다. 벌써부터 정체되는 도로를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올 때 타고 왔던 광주행 셔틀은 오후에나 있어서 택시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걸어 나갔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 사서 고생이 이날의 매화나무 아래에서의 하룻밤이라면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메고 간 새 배낭, 빅 아그네스 가넷 60L
용량
: 60L+7L,
무게
: 1.62kg,
힙벨트 최소/최대
: 81cm/137cm
적정 무게
: 9.07kg~22.68kg,
토르소 길이
: 41~46cm
1차 테스트(2023년 3월 18일) : 쫓비산. 날씨 좋음. 배낭무게 약 21kg
2차 테스트(2023년 3월 23일) : 방장산. 흐리고 가끔 비. 배낭무게 약 18kg
"까톡" 월간산 신준범 기자님한테 톡이 날아왔다.
"미정! 백패킹용 배낭 하나 줄게 쓸래?"
"저 배낭 많은데요?"
"하나 보내줄 테니까 써보고 어떤지 알려줘."
백패킹을 다니면, 온오프라인으로 제품 협찬이 들어올 때가 있다. 여느 인플루언서들처럼 팔로워가 많아, 사진을 예쁘게 찍어 올려서 홍보를 해달라는 게 아니고, 백패킹을 워낙 진심으로 다니다 보니, 제품을 써보고 찐 후기를 써달라는 얘기다.
"어디 건데요?"
"빅 아그네스Big Agnes."
"빅 아그네스요? 아… 그건 나랑 안 맞는데?"
장비에도 궁합이 있다. 혹자는 산을 스포츠처럼 다녀가는 데 의미를 두는가 하면, 혹자는 산을 온전히 누리고 모든 순간을 담고 싶어 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요즘은 트레일 러닝이나 미니멀 한 BPLBackPacking Light이 대세라지만, 굳이 눈치 보며 대세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일단 산의 최고의 순간을 담기 위한 카메라와 마운트, 드론, 각각의 배터리, 밤새 카메라가 꺼지지 않도록 충전할 보조배터리와 케이블만 해도 무게가 4~5kg은 기본이다. 여기에 안락함을 추구하는 텐트와 선호하는 매트와 침낭까지 챙기면 그에 맞는 배낭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이다. 대놓고 말하자면 나는 BPHBackPacking Heavy 타입으로, '초경량'의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빅 아그네스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뭐 굳이 욕먹기 싫어서 밝히자면 BPH지만 음식은 단출하게 챙기는 편이다.(BPH≠쓰레기라는 말씀)
"사용해 보고 후기는 내 맘대로 써도 돼요?"
"응 대신 몇 번 사용해 보고 객관적으로 써."
그렇다면 부담 없이 사용해 보겠다.
장점
1 백패널이 입체적으로 등에 꼭 들어 맞는다.
2 힙벨트 스트랩이 상하로 나뉘어 있어 몸에 미세하게 밀착되도록 맞출 수 있다.
3 경량배낭임에도 프레임 시트가 하중을 잘 버텨 뒤틀리지 않고 잘 지지해 준다.
4 밀착형 스트레치 포켓으로 운행시 장애가 되지 않는다.
5 트래쉬캔이 쓰레기 수거용으로 재활용 가능하다.
6 솔루션다이 립스톱 소재 보강으로 내구성이 강해 바위나 나무에 스쳐도 쉽게 파손되지 않는다.
7 UTS 코팅을 적용해 발수 성능이 좋아 간헐적 우천시 배낭커버가 필요없다.
단점
1 BPH에겐 동계용으로는 용량이 부족하다.
2 최대 무게가 22.68kg까지로 되어 있지만, 21kg으로 채웠을 때, 어깨끈이 짓눌려 통증이 있다.
→ 타사 경량배낭도 확인 결과 최대치로 채울 경우 같은 현상이 있었다.(HMG 20kg)
→ 2차 테스트에서 배낭무게를 18kg으로 맞췄을 때는 어깨 통증이 없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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