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의 '소울 메이트' 가슴 따뜻했던 형님

신준범 2023. 5.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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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형님이 '엄 대장'하고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요. 너무 아쉬워요. 코로나 끝나고 이제 조금 살 만해지나 싶은데, 이렇게 되시다니. 제가 가장 믿는 분 중에 한 명이었어요. 산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강하면서도, 가슴은 따뜻한 산악인이었어요."

얼마 전 우이동 산악문화허브 3년 운영권을 휴먼재단이 가져오게 되면서 센터장 자리에 홍옥선 사무처장을 앉힌 이도 엄홍길 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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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형님이 '엄 대장'하고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요. 너무 아쉬워요. 코로나 끝나고 이제 조금 살 만해지나 싶은데, 이렇게 되시다니. 제가 가장 믿는 분 중에 한 명이었어요. 산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강하면서도, 가슴은 따뜻한 산악인이었어요."

홍옥선(67·청맥산악회)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처장이 4월 1일 산이 되었다. 의정부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많은 산악인이 모여 갑작스런 비보에 애통해 했다. 특히 엄홍길 대장은 "며칠 전에도 그렇게 같이 산에 가자고 했는데…"라며 당황했다.

엄홍길휴먼재단이 창립한 2008년부터 홍옥선씨가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15년간 함께했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산에서 알고 지내던 형·동생 사이로 산에 대한 열정이 통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얼마 전 우이동 산악문화허브 3년 운영권을 휴먼재단이 가져오게 되면서 센터장 자리에 홍옥선 사무처장을 앉힌 이도 엄홍길 대장이었다. 함께 일했던 휴먼재단 직원은 그에 대해 "업무적인 면은 칼 같지만, 인자하고 아버지처럼 포근하게 잘해 주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홍옥선씨는 1986년 대한산악연맹이 꾸린 K2원정대의 대원이었다. 당시 김병준씨가 대장을 맡고 장봉완씨가 부대장을, 윤대표씨가 등반대장을 맡는 등 당대 최고의 등반가들로 꾸린 원정대의 대원이었다. 산악계의 행정 전문가인 그는 K2 원정 당시 대산련 사무국장이었다.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로 활동하다 자리를 옮겨 한국등산학교에서 30여 년간 강사로 활동했으며 오랫동안 교감을 맡았다. 그래서 한국등산학교 졸업생들은 아직도 그를 '교감선생님'이라 부른다.

몸이 호리호리한 홍씨는 밸런스 잡는 등반을 잘했다. 60대에도 현역으로 산을 다닐 정도로 등반 열정이 강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정이 많고 유쾌한 입담으로 즐겁게 했다"고 추억했다.

그는 생전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등반의 고독감이 좋다"고 했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바위와 나만 남는 고독감이 좋다는 것.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등산학교 교육생들이 느끼길 바라며 자신감을 강조했다. "등반은 자신감이 있어야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홍옥선씨는 한국여행사 대표였다. 숱하게 히말라야를 다닌 경험을 살려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오랫동안 운영했다. 엄 대장은 "코로나로 여행사 손님이 없어 힘들었는데 이제 해외여행 물꼬가 조금 트이면서 잘 되려는 찰나에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외아들 홍승해(37)씨는 부친에 대해 "지독하게 산을 사랑하는 분"이라며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주말이면 산에 갔다. 그때는 섭섭한 면도 있었는데 나도 가정을 꾸리고 자식이 생기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장례를 치르면서 아버지 지인 분들에게 위로를 상당히 많이 받았다"며 "아버지가 얼마나 인간관계에 원만한 분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친했던 1955년생 동갑내기 친구이자 K2원정대원이었던 박승기(다움숲 사무국장)씨의 추모글을 싣는다.

'그는 산에서 살았습니다. 40여 년 전 알파인 가이드협회 시절부터 여의도 대산련 사무국장, 코오롱등산학교, 한국여행사, 한국등산학교 강사까지 산에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산에 있으려나 봅니다. 그의 아내 춘천댁과 아들을 남겨두고 주마등처럼 스친 찰나에 가족에게 무슨 말을 남겼을 텐데. 아마도 "건강하게 잘 살아라"였을 것입니다. 그는 뜻밖의 장소 설악, 인수, 토왕성에서 쓱 나타나곤 했는데 이젠 북한산에서 만나봐야 할 것 갔습니다. K2에서 "야 임마 이게 제일 좋은 침낭이야"라며 챙겨주던 친구, 잘 가시게. 뒤뚱뒤뚱 걷던 특유의 걸음이 그립습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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