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탈옥’이 무서운 이유 [류현정의 아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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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와 테크놀로지는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테크놀러지 전문 기자가 현대 스토리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짚어드립니다.
브레이크 아웃(break out)은 ‘탈옥’ ‘탈출’ ‘탈주’를 뜻합니다. 주로 집단적인 탈출을 의미한다고 해요. 흥미진진한 소재이다 보니,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이름의 영화와 뮤지컬, 게임도 많이 있습니다. 오토바이 제조업체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의 인기 모델명도 ‘브레이크 아웃’입니다. 바이크 애호가들에게 질주란 일상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니까요.
그런데, 애플도 ‘탈옥’을 진행 중입니다. 애플은 금융 회사와의 제휴 없이 결제를 처리하고 각종 리스크 평가, 사기 분석, 신용 조회까지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이 프로젝트 코드명이 ‘브레이크 아웃’입니다.
금융 회사의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신규 수익을 만드는 애플의 대탈출 드라마는 시작되었습니다. 애플은 지난 3월 할부 구매를 지원하는 ‘애플페이 레이터(Apple Pay Later)’를 출시했고 4월엔 고금리 저축 계좌 상품까지 내놓았습니다.
애플의 고금리 저축 계좌 상품은 골드만삭스와 제휴하기는 했습니다만, 미국 저축성 예금의 평균 이자(0.35%)의 10배 이상에 달하는 연 4.15% 이자를 제공합니다. 계좌 출시 4일 만에 10억 달러의 예치금이 몰렸다고 해요.
애플의 야심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애플은 월 구독료를 내고 아이폰을 빌려 쓰는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도 준비 중입니다. 월 5만~6만원을 내고 최신 아이폰 기종을 바꿔가며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 애플의 핵심 엔진
애플의 탈옥 프로젝트에서 기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입니다. 애플의 사업 규모가 방대하고 복잡해도 애플의 핵심 엔진은 하드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서비스는 당초 계획보다 1년 이상 지연되며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애플은 유려한 디자인, 감각적인 터치, 자연스러운 화면 넘김, 찰칵 달라붙는 액세서리 등의 남다른 사용 경험을 제공해 소비자 최접점(단말)을 장악해 왔습니다. 기능이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스티브 잡스의 유산입니다.
잡스는 지독하리만큼 단순하고 간결한 디자인에 집착했습니다. 복잡한 기능을 단순하게 경험하게 하려면, 엔지니어링(공학 기술)이 좋아야 합니다. 잡스는 휴대전화 두뇌인 중앙 처리장치(AP)부터 운용체계(OS), 웹브라우저, 사무용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조화롭게 설계해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놓았죠.
하드웨어가 애플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점은 숫자에서 확인됩니다. 2022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애플의 전체 매출은 3443억2800만 달러로 우리 돈 470조원이 넘습니다. 이 중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맥, 애플 워치, 아이팟 등 하드웨어 매출이 80%에 달합니다. 2018년 2분기까지 애플의 하드웨어 매출 비중은 90%가 넘었습니다.
같은 해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29%, 잉여현금흐름은 1114억4300만 달러(130조원)나 되었습니다. 애플의 프리미엄 전략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참고로 애플이 자체 설계한 2세대 칩 ‘M2′를 탑재한 ‘맥북 에어(노트북)’의 경우 500만원에 달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 서비스 1등은 없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삼성전자와 애플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애플이, 올 1분기에는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어요.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이 점유율 60%로 압도적인 1위입니다. 요즘 미국에서 아이폰 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입니다. 아이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습니다. 나머지 50% 시장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150여 종이 나눠서 갖고 있습니다.
반면, 점유율 1등인 애플 서비스는 없습니다. 앱 스토어는 안드로이드 앱 장터인 플레이스토어에 밀리고 클라우드 서비스는 아마존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선 구독자수 2억명을 자랑하는 넷플릭스에 한참 못 미치지요. 애플TV+의 구독자 수는 2500만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악 스트리밍 시장의 최강자도 애플 뮤직이 아니라 스포티파이입니다.
그런데도 애플 서비스 매출이 지난해 781억 달러(94조원)에 달했습니다. 보잉(666억 달러), 인텔(631억 달러), 나이키(491억 달러), 아메리칸항공(490억 달러), 코카콜라(423억 달러), 넷플릭스(316억 달러), 맥도날드(233억 달러)의 지난해 매출과 비교해 보십시오. 애플은 서비스만으로 미국 굴지의 회사 매출을 가볍게 넘어서는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애플이 서비스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이유는 하드웨어라는 거대한 저수지 덕분입니다. 세계 아이폰 활성 사용자 수가 10억명이 넘습니다. 애플은 이 거대한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 각종 밭작물(서비스)을 기르고 돈을 벌고 있습니다.
‘애플TV+가 언제 넷플릭스를 따라잡을 것인가요?’ 라는 질문은 우문입니다. 애플 서비스의 우선 순위는 시장 점유율 1등이 아니라, 애플 단말기와 서비스를 통한 총체적인 경험을 1등으로 만들어 고객을 붙들어 두는 데 있습니다. 그 총체적 경험의 합이 애플을 가장 수익성 좋은 회사,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회사로 만들었습니다.
◇ 즐거운 감옥의 탄생
만약 소비자가 비싼 가격 등을 이유로 아이폰 대신 안드로이드 폰을 샀다고 가정해 봅시다. 애플의 기회 손실은 아이폰 매출 그 이상입니다. 아이폰을 접점 삼아 서비스로 돈을 벌 기회도 놓치게 됩니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2~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오랫동안 추가 수익 창출 기회를 잃게 되는 셈입니다.
애플이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를 준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애플 제품을 구매하는 부담을 ‘확’ 낮추자는 것입니다. 월 구독으로 아이폰이나 맥, 아이패드를 쓰기 시작한 사용자는 애플 뮤직과 애플TV+ 등 애플의 서비스도 구독할 것입니다.
애플의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 형태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이폰13은 월 35달러(약 4만원), 아이폰13 프로는 월 45달러(5만 5천원), 아이폰13 프로 맥스는 월 50달러(약 6만원)이 유력하게 검토되었다는 블룸버그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아이폰13을 799달러를 한 번에 내고 구매하는 대신 3년 간 총 1260달러(약 153만원)를 내고 대여해서 사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구독 서비스를 통해 아이폰을 더 비싸게 팔겠다는 게 애플의 계산일 수도 있습니다!)
애플의 ‘탈옥’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애플 제품을 쉽게 구매하는 길을 터줍니다. 이건 즐겁지만 빠져나오기 힘든 ‘감옥’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특정 제품 혹은 서비스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잠금(lock-in) 효과가 강력해 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드웨어 기기 판매 → 콘텐츠와 서비스 매출 증대 → 더 많은 하드웨어 기기 판매’라는 애플의 플라이휠(선순환)도 더 빠르게 돌아갈 것입니다.
◇ ‘사과농장’까지 유도하는 경험
애플의 제품 경험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단순히 제품만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쓸모를 높이는 생태계까지 만듭니다. 애플은 2001년 휴대용 음악 플레어이 ‘아이팟’을 출시한 후 음원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출시했고요, 2007년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는 ‘애플 스토어’라는 앱 장터를 내놓았습니다. 셋톱박스인 애플TV를 내놓은 후에는 애플TV앱, 애플TV+도 함께 선보였죠.
여기에 애플은 아이폰, 애플 워치, 아이패드(태블릿PC), 맥(PC) 또는 맥북(노트북) 등 애플 기기 간 연결 기능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애플 기기를 갖고 있을 때 편리함이 배가 되도록 하면, 제품 추가 구매가 일어납니다.(아래 기능 참조).
최근 시장 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에 따르면, 스마트워치를 사용하는 아이폰 소유자의 거의 80%가 애플 와치를 사용합니다. 스마트워치를 쓰는 삼성 스마트폰 사용자의 39%만 삼성 갤럭시 워치를 사용하는 것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죠. 애플 마니아들 사이에선 맥북,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에어팟 등을 하나씩 사모으고는 ‘사과 농장’을 차린다고 표현합니다.
* 에어드랍(AirDrop) - 근처에 있는 아이맥, 맥북, 아이폰, 아이패드에 사진, 비디오, 문서 파일 등을 무선 전송할 수 있습니다.
*핸드오프(Handoff) - 아이패드에서 작업하던 그림을 맥에서 수정할 수 있고 아이패드에서 보던 브라우저 창을 맥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
* 에어플레이(AirPlay) - 각종 콘텐츠를 스마트TV로 공유하거나 스트리밍할 수 있습니다.
◇ 언제든 콘텐츠에 거액을 지를 수 있다
애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애플TV+는 소품종 소량 생산유통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9년 설립된 애플 스튜디오를 통해 오리지널도 제작합니다만,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애플TV+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코다’(CODA),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은 ‘파친코’, 에미상 최우수 코미디 시리즈에 빛나는 ‘테드 래소(Ted Lasso)’ 등이 있지요. 애플은 영화 사업에 매년 10억 달러(약 1조28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인데, 넷플릭스의 연간 콘텐츠 제작 예산 170억 달러에는 못 미칩니다.
다만, 애플의 콘텐츠 투자 태세는 점차 공격적으로 전환할 것입니다. 애플이 2021년 서비스 월간 요금제 ‘애플원(Apple One)’에 이어 올해 하드웨어 월간 구독 서비스까지 내놓는다면, 구독을 유지할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테니까요.
* 애플원 - 애플 뮤직(음악), 애플 TV+(온라인 영상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게임), 아이클라우드(저장공간) 등을 묶어 개별 구독하는 것보다 저렴한 월간 요금제
애플은 확실하게 사용자를 모으는 스포츠 콘텐츠에는 이미 ‘베팅’하고 있습니다. 2022년 7월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중계권 입찰에 뛰어들었고 올해부터는 미국프로축구(MLS) 리그를 독점 중계합니다. 지난해엔 애플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58억파운드(약9조3700억원)에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증시에 상장된 맨유 주가가 폭등했습니다.
팀 쿡 애플 CEO가 마음을 먹는다면, 콘텐츠 기업을 거액을 주고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2년 전부터 애플이 비디오 게임 스튜디오인 EA(Electronic Arts)나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디즈니를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애플은 지난 2018년 8월2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기록했고, 2년 만인 2020년 8월19일 2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후 1년4개월 만인 2022년 1월 3일 장중 시총 3조 달러를 넘어섰지요. 경기 침체 여파로 시총은 2조 달러대로 내려앉았습니다만, 애플이 계획대로 ‘탈옥’에 성공한다면, 시총 3조 달러 재진입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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