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프리카 이 나라에 지어준 국립박물관, ‘핫플’로 떠올랐다
한국이 비용대고 설계와 시공, 운영법 전수까지 도맡아
9일 저녁(현지시각)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럽연합(EU) 창설을 경축하는 ‘유럽의 날’ 행사가 열렸다. 현지 정부 고위관계자와 각계 인사, 각국 대사 등 1000여명이 운집해 기념식과 파티, 전시, 공연이 이어졌다. 박물관 중앙 국기 게양대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였고, 내빈들이 입장한 현관에는 박물관이 한국정부의 무상원조로 건립됐음을 한국어와 프랑스어(공용어)로 적시한 동판이 붙어있었다.
2019년 7월 개관한 박물관에서 열린 대규모 국제 외교 행사였다. 이날 박물관을 찾은 내·외빈들은 이 나라 전통 가옥을 형상화한 외관에 현대적 전시 공간을 갖춘 박물관에 대해 일제히 호평을 쏟아냈다. 건축가 출신 로베르투 파렌테 브라질 대사는 “정말 멋진 건축물”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지켜세웠다.
한국이 지어준 콩고민주공화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나라 교육·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은데 이어 아프리카 외교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 어떻게 해서 직선거리로 1만2915㎞(수도 서울·킨샤사 기준)나 떨어진 낯선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지어주게 됐을까?
지난 2011년 7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비좁고 열악한 기존 국립박물관을 한국의 도움으로 신축하는 방안이 처음 논의됐다. 이 방안은 차츰 구체화돼 역대 아프리카 원조 최대금액인 2100만 달러(약 278억)를 투입하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 문화원조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단순 금액만 지원한게 아니라 설계(정림건축)와 시공(한솔EME·이삭건설), 운영노하우 전수(상명대)까지 한국이 도맡았다.
450여개 부족으로 이뤄진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에서 면적(한반도 11배)은 2위, 인구(9651만명)는 4위다. 그러나 인구 통계 조사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인구는 1억 5000만명을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현지 외교가와 국제사회의 추정이다. 부동의 1위 나이지리아(2억1000만명)에 이은 아프리카 2위의 인구 대국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구리·코발트·다이몬드·리튬 등이 풍부하게 매장된 자원부국으로 세계 열강들이 치열한 자원외교를 펼치는 곳이다. 단순한 원조 이상의 투자라는 의미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쿠데타와 내전이 빈발하는 고질적인 정정불안 때문에 박물관 건립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사업은 착착 진행됐고, 설계도면대로 지어진 박물관은 2019년 7월 준공됐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인류학의 보물창고 같은 곳으로 구석기 시대인 20만년전부터 인류가 거주했고, 구석기·신석기·철기 문명이 번성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출토됐다. 이후 벨기에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거쳐 1960년 독립했다.
신축된 박물관에는 콩고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각종 유물들의 전시 공간이 체계적으로 들어섰고, 시민들과 학생들의 필수 견학 코스로 사랑받았다. 특히 개관 석 달 뒤인 2019년 10월 대형 패션쇼인 ‘콩고 패션 위크’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대형 문화 행사들도 잇따라 열렸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벨기에 필리페 국왕 부부가 박물관을 찾아 유물반환 행사를 진행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방문은 가혹한 식민 통치의 가해·피해국으로 원한이 깊었던 두 나라가 오랜 응어리를 푸는 첫걸음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됐다. 앞서 그는 선대 국왕 시절 행해진 폭정을 사과하고 식민통치 시절 약탈한 유물 중 하나인 대형 가면 ‘카쿵구’를 돌려줬다.
국왕 부부의 박물관 방문은 일정 중 하이라이트였다. 펠리페 국왕은 옛 식민지이자 피해국인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사과와 반성·화해의 메시지를 내놨고,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고국의 품에 안긴 ‘카쿵구’ 가면도 둘러봤다. 한국이 지어준 박물관이 화해와 치유의 구심점이 된 것이다.
지난해 8월에는 남부아프리카개발공동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말라위·나미비아 퍼스트레이디와 에스와티니 왕비 등이 박물관을 찾는 등 정상외교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오는 7월 28일부터 8월 6일까지 킨샤사에서는 프랑스어권 국가들의 스포츠체전인 프랑코포니 경기대회(Jeux de Francophonie)가 열리는데 문화·예술 관련 주요 행사들이 대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이 대회에는 프랑스·캐나다 등 전세계 54개국이 참가한다. 박물관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문화 핫플레이스로 각광받는 것이다.
박물관은 최근 개관 4년만에 ‘늦깎이 현판식’을 했다. 이 박물관은 한국의 2100만 달러 무상원조를 통해 건립됐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한국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한국과 콩고민주공화국 양 국기를 새겨넣은 동판이 박물관 입구 외벽에 설치됐다. 현판식에 참석한 조재철 주 콩고민주공화국 대사는 “이 박물관은 전세계에 한국의 문화 역량과 세계문화발전에 대한 기여의지를 발신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중국 정부의 원조로 ‘중앙 아프리카 문화센터’가 지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 1억 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 원조’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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