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장 "밸류엔지니어링 넘어 작가형 건축 육성해야"[인터뷰]
"표준화된 도시 모델 안타까워…경제·투자 활성화로 작가성 전환 풍토 조성 기대"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김희준 최서윤 기자 = "경제성 논리가 우선시되다 보니 밸류엔지니어링(가치공학·건축공사의 기획과 설계 및 시공, 유지관리 전 과정에서 원가 절감을 통한 가치 증대)을 하고 나면 나머진 합리적이란 이름으로 표준화되는 거죠. 지금까지 만들어온 도시모델은 표준화였습니다. 그게 안타까워요."
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장은 우리 건축 선진화 방안으로 단연 '작가형 건축 육성'을 꼽았다. 1960년대 이후 기술산업 중심의 압축 성장으로 이룩한 짧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건축도 '산업형' 모델에 치중하다 보니 작품성보다는, 기능과 효율에 따라 획일화됐다는 지적이다.
천 회장은 "문화 중심으로 가기엔 아직 전환 단계인 것 같다"면서 "작가형 건축은 개인의 창작 능력뿐 아니라 관련 법제도 뒷받침돼야 하고, 건축주도 있어야 되고, 공공성과 산업생태계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서 본 듯 낯익고 똑같은 건물 일색인 우리 도시에 작가성을 불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 회장과 협회는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건축예술진흥법'을 준비해 추진하고 있다. 특별한 건물을 짓는 핵심은 단순하다. 특별한 비용과 특별한 공사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 발주 제도로 평단가와 공기에 맞추면 경복궁 같은 건물이 나올 수 있나요? 작가성을 만들 수 있는 건물을 작은 것 몇 개라도 우선 만들어야죠. 지금처럼 바꾸지 않으면 계속 표준형 건물만 나옵니다. 우리의 일반 공공문화시설을 보고 세계 건축이 감동하긴 아직 어렵지 않습니까."
문화체육관광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한국건축가협회는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 위치해 있다. 천 회장과의 인터뷰는 이달 4일 협회 사무실에서 51분간 이뤄졌다. 다음은 천 회장과의 일문일답.
◇'작가형 건축' 육성 위한 건축예술진흥법안…핵심은 충분한 예산과 기간
-지난해 3월 제33대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셨다. 협회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인가.
▶건축예술진흥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두 가지가 핵심인데, 특별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공사기간과 예산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평당 설계비와 공기를 정해두고 공장식으로 건물을 짓는 건 표준건물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지금 시스템에서 특별한 건물은 거대 자본가나 지을 수 있다. 작은 건물이라도 특별한 방식의 발주, 커미셔너(전권이 위임된 최고 책임자) 제도 등 다르게 지어질 배경을 만들지 않으면 기존의 공공건물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처럼 지역 살리기 차원에서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기존과 예외로 좋은 건축설계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시공비도 만들어 주고 기간도 여유 있게 보장해야 후손도 자랑스러워할 경복궁 같은 미래유산 건물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와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협회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프리츠커상은 작품의 우수성과 인류·지역사회 기여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시상한다. 일본에서 8명·7개 수상작이 나왔는데 우리가 못 받은 게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건축 교육에서부터 아직은 일반적인 기능해결책을 제시하는 '솔루션 프로바이더' 개념이지, 작가형 건축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건물 일색이다. 산업적 건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가 기능과 효율만으로 만들어지면 무미건조한 군대 막사가 된다. 반면 프리츠커 수상자는 모두 작가형 건축가다. 예술성이 있고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건축을 만들어 가며, 그걸 후원하는 후원자도 있다.
건축가들이 여전히 의사결정 과정에 앞단이나 윗단에 있지 못한 점이 아쉽다. 총괄 지휘자로서 좀 더 힘을 가지고 오케스트레이팅(조정) 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관은 주도권을 놓지 못하고, 건축주는 비용과 이해관계를 쥐고 있으니, 작가성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최소화되고 만다. 다만 조금씩 바뀌고 있어 절망적으로 보진 않는다. 경기융합타운 마스터아키텍트(MA)로 참여할 때 철저하게 권한을 위임받아 일해본 경험이 있다. 수평적 리더십으로 갈 수 있게 힘을 실어준 거다. 앞으로 건축교육도 산업형과 작가형으로 병행되어야 하고 더욱 많은 작가형 건축가들도 등장하면 점점 건축문화환경이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협회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린 협회를 만드는 게 중요한 원칙이다. 덧붙이자면, 궁극적으로는 경기도 좋아지고 더 많은 자본가도 생겨나야 한다. 경제가 상승 측면일 때 예술이 발전해온 건 분명하다. 르네상스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던 것처럼.
-건축사와 건축가 용어 사용 논란을 정리하자면? 관련 협회도 대한건축사협회, 대한건축학회 3단체 및 새건축사협의회 등 여럿으로 갈렸는데.
▶건축사협회는 등록건축사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건축물의 법적인 등록, 안전, 법률적 인증 모든 것을 건축사를 통해 하도록 법제화가 돼 있다. 인허가나 법률 문제 중심으로 국토교통부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그런데 건축업에는 건축사사무소 운영자도 있지만 도시설계 영역을 지원하는 많은 창의집단이 있다. 건축사진, 공간디자인, 연구·교육, 목조, 장인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중 좀 더 창의적인 건축공간을 지향하는 게 건축가들이다. 1세대 건축가인 김수근 선생(제10대 한국건축가협회장) 등 1957년 건축사면허제도가 생기기 전에 먼저 한국건축가 협회가 생겼다. 초기에는 엘리트 건축집단으로, 사업보다는 문화적인 생각을 많이 하고 가치 창조 집단으로서의 건축영역을 생각하고 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역할분담을 통해 단일화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미래산업 등장, 열린 공간으로서의 도시공간 혁신으로 나아가야"
-저서 '열린공간이 세상을 바꾼다(2018, 공간서가)'에서 공간의 진화, 1686년 영국 에드워드 로이드가 개장해 사회적 공간 장치로 성장한 커피하우스, 포용적 성격을 띤 뮤지엄의 탄생 등을 통해 열린 공간의 소신을 피력한 바 있다. 우리 건축에 적용하면?
▶궁극적으로 도시공간은 열린 공간으로 가야 하고 공공성과 상업적 측면이 함께 가야 된다. 산업혁명 시기처럼 새로운 미래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구글과 애플에 이어, 챗GPT 등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의 등장으로 또 다른 혁명의 시기다. 신기술을 공간과 결합하면 도시공간을 혁신시킬 수 있는데 제도나 우리 사고는 뒤처져 있다.
미래 도시로 지어진 세종시의 경우 정부청사 건립 때 가운데 공간을 비우고 방사형으로 짓는 네덜란드 모델이 적용됐다. 미래 가능성을 비워두고 링 모양으로 구조를 가져간 건 창의적이었다. 도시에 수평적 모델을 두고 정부청사도 타워형으로 높게 짓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했지만, 결국은 보안 등 이유로 열린공간의 아이디어가 많이 줄었다. 현재는 행정도시로서의 한계가 보인다. 어떻게 다른 산업을 포함해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지가 여전히 과제다. 새로 지어질 국회분원이나 용산 대통령실은 좀 더 소통형으로, 열린공간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공간정보가 만들어지고 이를 활용해 가상오피스를 구성하며 프롭테크(부동산+기술)도 활성화되고 있다. 협회는 가상공간의 니즈를 어떻게 활용하며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나.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의료시설의 진단보조장비처럼 꼭 필요하다. 더 창의적으로 하는 부분은 건축가가 개입하는 영역이지만, 현재 모습을 디지털로 구현해 그 안에서 실시간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다. 메타버스나 게임 등 디지털 건축 공간을 새로운 상상과 통찰을 줄 도구로 활용하면 기획 단계와 설계 차원에서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한 단계 발전될 수 있다. 협회도 지금은 빌드업단계지만 디지털 플랫폼 구현을 시도하고 있다. 가상의 대체불가토큰(NFT)을 통해 건축가의 도면자료를 거래하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도 시민건축플랫폼을 미리 만들어 선보이려고 한다. 영동대로 프로젝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만지고 볼 수 있게 디지털갤러리에 개략 이미지를 게임형으로 구현하는 식이다.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SBAU)가 9월 1일 개막한다. 주제가 '서울의 100년 후를 그리다'인데, 어떤 부분을 선보일지 간략히 소개 부탁드린다.
▶우선 '서울 그린링'을 선보인다. 서울 전체가 하나의 그린링으로 바뀌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다. 50년, 100년 후 한강에서부터 서울이 다 연결돼 용산 후암동과 남산 세운상가를 거쳐 걸어갈 수 있는 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향후 서울에서 대한민국 전체 도시를 그린으로 연결하는 계획으로 이어진다.
또 급격하게 변하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나의 도시국가, 메가시티국가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지금은 서울이 중심이지만, 대전과 부·울·경·대구·호남 등을 각각 인구 500만 메가시티로 바꾸고, 이 도시들을 도별 지역으로 나누는 게 아닌, 하나의 구(區)처럼 스케일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다. 이 구가 모여 하나의 큰 도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각 도시에 적정 밀도 산업클러스터도 조성하고 이들 핵심거점을 한시간 내 연결하는 초메가도시국가 '원시티네이션'의 장기계획도 필요하다. 단지 5년기간의 정부에서 진행하는 계획이 아니라 충분한 담론을 형성해 찬반양론을 거치면서 발전국토변환의공간변환의 토대를 만들고, 한국건축가협회가 싱크탱크로 기능하고자 한다. 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프로필
△서울대 건축학 학사·박사 및 하버드대학원 도시설계 석사△행복도시건설청 공공건축심의 위원회 위원장 △국토부 중앙건축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문체부 관광거점심의위원회 위원 △2019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 △2015 광주비엔날레 3차 광주폴리 총감독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서울디자인올림픽2009 총감독 △서울시 공공건축가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위원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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