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에베레스트 BC 무전기가 울렸다 "노래 한 곡 해봐"

서현우 2023. 5. 1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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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에베레스트 캠프1(6,400m). 고된 등반을 마친 한국 원정대원들이 텐트 안으로 하나 둘 들어선다.

그중 한 명이 김명수씨다.

그는 당시 "<기다리는 마음> , <뱃노래> 같은 가곡을 불렀었다"며 "숨이 차서 한 곡 부르고 한참 숨을 고르고 다시 불렀다. 대원들이 앙코르를 외치고 다른 곡을 더 불러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때부터 노래 좀 한다고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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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계의 ‘가수’ 김명수 양정산악회 동문
희망나눔음악회 개막 공연
희망나눔음악회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명수씨.

1977년 에베레스트 캠프1(6,400m). 고된 등반을 마친 한국 원정대원들이 텐트 안으로 하나 둘 들어선다. 그중 한 명이 김명수씨다. 그는 캠프1에 머물면서 상단 캠프2와 해발고도 1,000m 아래 위치한 베이스캠프 간의 무전을 중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조용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무전기에서 그를 찾는다.

"노래 한 곡 불러봐라."

그렇게 에베레스트 최초로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울려 퍼진다.

원로산악인 김명수씨가 최근 여성산악회가 주최한 제10회 희망나눔음악회 행사에서 산노래 <산사람>으로 개막 공연을 장식했다. 김씨는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 원정대 대원으로 참여해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대한산악연맹 안전대책이사 및 재무이사직을 역임했고, 1991년에는 초오유·시샤팡마 원정대장을 맡아 시샤팡마를 등정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김씨는 "내가 산악계에서 노래 좀 부른다고 알려져 있다"며 "여성산악회에서 무대에서 노래 부를 산악인을 찾았는데 남선우 후배가 날 추천해 줘서 무대에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50년 전이네요. 1977년 한국에베레스트 원정 때였어요. 깜깜한 새벽 3시에 일어나 장비 챙기고, 아침 먹고, 헤드랜턴 켜고 12시까지 루트 작업을 했죠. 한낮에는 햇볕이 따가워 밤에 얼었던 눈이 녹아 눈사태를 일으키곤 해서 이렇게 작업했어요.

원로 산악인 김명수씨

그러다보니 다음 등반까지 많은 시간을 공허하게 보내야 했죠. 사방엔 풀 한 포기 없고 파란 하늘과 하얀 빙하뿐인 곳에서 저 혼자, 혹은 둘이 전진 캠프에 머물렀죠. 캠프간 소통은 오직 무전기로만 가능했어요. 저녁 식사까지 시간이 비니깐 교신하다가 누군가 저한테 노래를 한 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5,000m 이상 고지대.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지대다. 김명수씨는 그런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는 당시 "<기다리는 마음>, <뱃노래> 같은 가곡을 불렀었다"며 "숨이 차서 한 곡 부르고 한참 숨을 고르고 다시 불렀다. 대원들이 앙코르를 외치고 다른 곡을 더 불러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때부터 노래 좀 한다고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명수씨는 종종 사석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인 행사에서 노래를 부른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고 했다. 그가 이렇게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 것은 꼭 후배 산꾼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뒤 이 말들을 전하고 싶었는데 경황이 없어서 못 했어요. 여기서나마 말씀드리고 싶네요. 딱 두 가지를 권하고 싶어요. 먼저 여유 있는 등산을 즐기란 겁니다. 네팔이나 유럽에 가면 외국인들이 휴식시간에 책 읽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인들은 밥 먹고 짐정리하고 후딱 떠나죠. 이젠 후배들이 그런 여유를 좀 챙기면서 산에 다녔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젊을 때 먼저 몸을 아끼란 겁니다. 저도 이제 나이 들어 손주와 같이 걷고 산에 오르고 싶은데 연골이 닳아 아예 등산을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100세 시대, 100세까지 산에 오르려면 지금부터 관리해야 합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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