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 5개국 ‘두 개의 중심’[가깝고도 먼 아세안](10)
우리의 최대 흑자국이었던 중국으로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그 대체 지역으로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큰 관심에 비해 아세안 각 국가 간의 문화적 특징이나 서로의 정치·외교적 역학 관계까지는 잘 모른다. 동남아 10개국을 ‘아세안’이라는 하나의 국가 연합체로 묶어 이 지역을 바라보다 보니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오인까지 한다. 인접 국가 간에는 수천년간 치열하게 싸우며 영토를 복속하기도 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절대 동맹국이었다가 최근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으로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아세안(ASEAN)은 크게 ‘대륙아세안’과 ‘해양아세안’으로 나눌 수 있다.
대륙아세안(5개국)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이고, 해양아세안(5개국)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필리핀이다.
대륙아세안 지역에 대해서는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 또는 ‘메콩강 5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도차이나’라는 표현은 지금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지역을 점령한 프랑스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지역이라는 뜻으로 명명한 것이다. 최근에는 인도차이나반도 영역을 태국, 미얀마까지 포함하는데 현재 약 2억50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선 상당히 굴욕적인 지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를 ‘차이나재팬’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이 지역 5개국 모두를 관통해 흐르는 메콩강의 이름을 따서 ‘메콩강 경제권’이라고 부른다. 메콩강을 둘러싼 중국과 깊은 갈등으로, 메콩강 국가들이라는 표현이 전 세계적으로 자주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주간경향 1148호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 말라가는 메콩강, 긴장감이 흐른다 참조).
태국의 바트 경제 3국
태국은 대륙아세안 국가 중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는 태국의 화폐인 바트(Baht) 경제권이다. 이 3개국에서는 미국 달러와 함께 태국 바트화가 쉽게 통용된다. 태국을 중심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은 소비재 유통 강국인 태국을 통해 다양한 물자를 보따리 무역 형태로 수입하기도 한다.
유엔 국제이주기구의 2022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인 2019년 태국에는 약 300만명의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다. 그중 48%인 약 144만명이 미얀마 국적이며 34%인 약 102만명이 캄보디아인, 18%인 약 54만명이 라오스인이었다. 정식 등록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까지 더하면 이들의 숫자는 배 가까이 늘어난다. 정식으로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 숫자만으로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전체 인구의 3~7% 규모가 태국 바트화를 받고 그 돈을 자국으로 보낸다. 태국 바트 경제권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육로로 쉽게 국경을 오가는 이들은 태국에서 유통되는 제품들을 보따리 무역 형태로 물자가 부족한 자국에서 팔기도 한다.
아세안 소속도 아니고 바트 경제권도 아니긴 하지만 약 10만명의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태국에서 일하고 있어 이들을 통해 방글라데시로 물건이 유통될 수도 있다. 또한 태국 방콕에는 ‘소이 아랍(Soi Arab)’이라 불리는 중동 무슬림 거리가 있다. 중동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소와 식당,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밀집해 있다. 태국으로 보따리 무역을 위해 중동의 다양한 국적 상인이 찾아온다. 따라서 태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자리를 잘 잡으면 태국뿐만 아니라 인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는 물론 방글라데시 멀리 중동에까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베트남 영향력 아래 국가 캄보디아, 라오스
캄보디아, 라오스는 경제적으로 태국과 밀접하고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는 국가들이기도 하다. 1978년 12월 베트남은 수백만명의 캄보디아 국민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주범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캄보디아에 친베트남 정권을 수립했다. 39년째 장기 집권 중인 훈센 총리는 베트남에 의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베트남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집요한 캄보디아 공략으로 최근에는 중국 자본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긴 하지만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라오스는 베트남이 미국과 전쟁을 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와준 혈맹이다. 베트남은 라오스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핵심적인 도움을 줬다. 1987년 라오스와 태국의 국경 분쟁 당시 라오스가 태국에 밀리자 베트남군이 태국 국경을 공격하는 등 양국은 지금까지 절대적인 우방 관계를 맺고 있다. 라오스 초대 공산당 서기장이자 국가수반이었던 카이손 폼비한은 베트남계 라오스인으로 오랫동안 정치·경제적으로 베트남에 의지하며 라오스를 이끌었다.
라오스와 베트남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2021년 3월에 베트남 건설부가 1억1100만달러(약 1450억원)를 들여 라오스에 국회의사당을 기증했다. 특이한 것은 라오스 국회의사당을 민간 건설업체가 아닌 베트남 11공병사단이 건설했다는 점이다. ‘양국은 피를 나눈 전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처럼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많은 것이 여전히 베트남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주요 국가 인프라 사업의 베트남 지분이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국적기인 ‘앙코르 에어’와 ‘라오 에어라인’의 지분 49%를 베트남 국영 항공사 베트남항공이 보유하고 있다(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영이 악화된 베트남항공은 2022년 5월 앙코르 에어 지분 35%를 매각해 현재 14%만 보유). 또한 지난 칼럼을 통해 소개한 베트남의 군통신사 비엣텔(Viettel)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1위 통신 기업이다.
대륙아세안 지역에서는 오랜 맹주였던 태국과 1980년대 후반 뒤늦게 개혁·개방을 하며 태국의 위상을 맹추격 중인 베트남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아세안 국가 그룹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서로 원조 맹주를 자처하며 싸움 중이다. 필리핀은 전혀 아시아적이지 않은 독특한 역사로, 아세안에서 겉돌고 있다.
※해양아세안 국가들의 이야기, 다음 호에서 이어갑니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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