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WNBA 선수 “둘째 낳고 출산휴가”…한국 ‘3대 스포츠’ 엄마 선수는 고작 3명

채윤태 2023. 5.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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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선수 임신 때 ‘계약 해지’
선수들 은퇴 뒤로 임신 미뤄
미 프로농구에선 ‘출산 휴가’
미 여자프로농구(WNBA) 피닉스 머큐리의 주전 가드 스카일라 디긴스 스미스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둘째 임신 소식을 전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스카일라 디긴스 스미스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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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일라 디긴스 스미스(32)는 출산휴가로 인해 내일 시작되는 훈련캠프에 참가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미국 여자프로농구계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뉴스 플랫폼 ‘걸스 토크 스포츠 티브이(TV)’의 설립자 크리스티나 윌리엄스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트위터에 피닉스 머큐리의 주전 가드 스미스의 훈련캠프 불참 소식을 알렸다.

스미스는 2013년 미 여자프로농구협회(WNBA) 입문 이후 여섯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된 스타 선수다. 농구계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한 그는 지난해 10월 인스타그램에 아랫배가 봉긋하게 솟아오른 사진을 올리며 “둘째 임신 중”(New addition loading)이란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간판급 스타라고는 하지만, 스미스도 3년 전까지만 해도 ‘출산휴가’는 꿈도 꾸지 못했다. 실력에 따라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 냉혹한 미국 프로농구 세계에서 ‘임신·출산은 곧 경력단절’을 의미했다. 2018년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스미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전 시즌을 뛰었다.” 아들을 낳고 9주 만에 복귀했지만, 결국 2019년 시즌은 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즌이 끝나고 난 뒤 트위터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날더러 ‘중도포기자’라느니, 팀을 버렸다느니 말들을 했다. 사실 산후 우울증으로 두달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상태였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이 거의 없었다.”(2019년 10월19일 트위터 메시지)

스미스를 비롯한 전·현직 선수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2020년 미 여자프로농구협회는 선수협회와의 단체협약(CBA)을 통해 유급으로 출산휴가를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선수들은 이 합의로 출산휴가 시 100% 급여와 함께 5천달러(660만원)의 육아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이런 얘기는 우리나라엔 아직 먼 얘기다. 현재 국내 ‘3대 스포츠 리그’(농구·배구·축구)에서, 출산 뒤 현역으로 복귀한 ‘엄마 선수’는 배구선수 정대영(42·지에스 칼텍스), 김해란(39·흥국생명)과 축구선수 황보람(36·세종스포츠토토) 등 3명밖에 없다. 농구의 경우, 전주원(51) 우리은행 코치가 2004년 출산하고 이듬해 복귀했던 걸 끝으로, 코트로 돌아온 선수는 단 1명도 없다. 2022~2023 시즌 등록 선수(462명) 가운데 0.65%, 기혼 선수(24명)로 좁혀도 엄마 선수는 12.5%에 불과하다.

축구계의 경우, 대다수의 선수들이 구단과 ‘근로자 계약’을 맺어 근로기준법에 따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보장되지만 실제로 이 제도가 임신한 선수에게 제대로 적용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이를 낳고 현역으로 복귀한 유일한 사례인 황보람 선수의 경우, 2017년 5월 구단 쪽에 임신 사실을 알린 뒤 출산·육아휴직 사용 가능성을 고지받기는커녕 일방적 계약해지 통보를 받기도 했다. 그는 출산 뒤 2018년 11월 구단과 재계약을 맺고 리그로 복귀했다.

선수가 개인 사업자 자격으로 구단과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 배구·농구계의 경우, 출산휴가·육아휴직 관련 규정이 전무하다. 구단과의 계약 효력을 중지 또는 해지했다가, 출산 이후 재계약을 논의하는 수순을 밟는 게 일반적이다. 배구계 대표 리베로 김해란 선수 역시 2020년 임신·출산을 결정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출산 넉달 만인 2021년 4월 구단과의 재계약을 거쳐 코트로 돌아왔다.

김 선수의 사례는 어디까지나 국가대표급 스타 선수들에게만 해당된다. 구단에서 입지가 확실치 않은 선수들이나 신인 선수들에게 출산은 커리어 전부를 내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전주원 코치는 “제도적으로 출산휴가·육아휴직이 보장되지 않은 (비스타급) 선수들의 경우 당장 급여가 나오지 않아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체육계 임신·출산·육아 등 모성보호 실태조사’는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 체육인들의 불안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조사에 응한 선수 268명(현직 74.6%, 전직 19.4%, 지도자 6%) 가운데 201명(75%)은 “출산한 여성 선수가 일정 기간 휴가를 보장받으면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답했는데, 그럼에도 226명(84.3%)이 “소속팀에서 여성 선수들이 임신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배구선수 ㄱ씨는 이 조사에서 “은퇴 나이에 맞춰서 낳으려고 일부러 임신 시기를 늦췄다”고 밝히기도 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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