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을 말한다]③ 지라시 이용하면 하급, 유튜브는 중급…상급은?

김효선 기자 2023. 5.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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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지라시, 언론 통한 방식이 유튜브 등 SNS로 변화
주주 인증 해야 볼 수 있는 게시판 통해 주가 관리

주식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K씨는 시청자들에게 H사 주식을 계속 추천했다. 일반 투자자에게 생소한 종목이었지만, K씨는 H사의 사업 중 매출 비중이 작은 부문을 당시 주목받던 테마와 엮으면서 주가가 곧 폭등할 것이라고 했다. 방송 전 K씨는 본인은 물론 가족 명의의 계좌를 동원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상태였다. 방송 이후 H사 주가는 급등했고, K씨는 H사 주가가 가격 제한폭까지 오른 날 시간외매매로 보유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이후 H사 주가는 등락을 반복한 뒤 K씨의 방송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모바일 메신저는 물론 유튜브 채널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정보를 유포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고,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주식 시세 조종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소위 ‘작전’을 펼치려면 사설 정보지(지라시)나 언론사 뉴스를 통해 거짓 정보를 생산하고, 직접 자금을 동원해 주가를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카카오톡, 텔레그램,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가 시세 조종에 활용되면서 금융 당국의 기존 감시 체제로는 작전을 사전에 포착하기가 어려워졌다. 초 단위로 퍼지는 소문에 개인 자금을 더 쉽게 끌어모을 수 있게 됐고, 작전 세력이 자금을 동원하지 않아도 개인 매수 자금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식이다.

그래픽=정서희

과거 한 경제지 기자가 상장 기업 최대 주주와 결탁해 허위 사실에 가까운 보도자료를 기사화했다가 구속된 사례가 있다. 작전을 위해 언론을 동원한 것인데, 이제는 언론의 도움 없이도 시세 조종이 가능하다. 많은 투자자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텔레그램,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I사의 주가 폭등 사례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다. I사는 최근 한국거래소로부터 현저한 시황 변동에 대한 조회 공시를 요구받았다. 난데없이 주가가 상한가에 오르더니 다음날에도 10% 넘게 급등했기 때문이다.

거래 당국과 해당 기업이 파악한 결과, 한 텔레그램 정보방에서 나온 소식이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정보방을 운영하는 자칭 투자 전문가는 I사가 미국에서 1조원 규모의 헬스케어 사업을 수주했다고 주장했고,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이 정보는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돼 언론에도 보도됐다. 당장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I사가 조회 공시를 내놓자 주가는 하락했다. 연간 매출이 3000억원 규모인 I사는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계약 규모가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해당 정보방 운영자는 당당하다. 불만을 제기하는 이용자들에게 “회사 측이 여러 사정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는 것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코스닥 상장사 임원은 “요즘 언론사를 이용해서 시세 조종하는 경우는 하급 취급받는다”면서 “텔레그램이나 유튜브가 언론 기사나 증권사 분석 리포트보다 높은 신뢰를 얻는 분위기이지만 여기서 이뤄지는 시세 조종도 중급 정도”라고 말했다.

더 진화한 시세 조종은 실주주들이 참여하는 종목 토론방에서 이뤄진다. 최근 상장폐지 실질 심사를 받게 된 한 코스닥 기업은 주주임을 인증해야 게시글을 읽을 수 있는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해당 기업 대표이사 A씨가 직접 게시판에 ‘곧 대형 호재가 온다. 기대하라’는 식의 글을 올려 주가를 움직이곤 했다. 주주 인증을 받아야 조회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해당 정보는 빠른 속도로 퍼져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경우는 사전 공시를 위반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감시 당국이 정보 흐름을 파악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악용되고 있다.

주식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 수가 크게 늘었고, 이들의 자금 규모가 커진 것도 작전 세력에는 유리한 환경이 됐다. 과거에는 작전 일당이 주가를 움직이면 나중에 개인 투자자가 몰리는 식이었는데, 미확인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지금은 개인 투자자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작전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호재성 정보가 나오면 개인 매수세가 몰리는 특성을 작전 세력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이전보다 시세 조종이 쉬워졌고, 이에 따라 개인의 피해 사례도 늘어나고 있지만 당국의 감시·관리는 더 어려워졌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유튜브만 봐도 구독자가 높은 채널에서 중소형주를 추천하면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수 유튜브 주식 채널이 유사투자자문업자 해당 여부가 불분명하고, 미신고 상태로 영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튜브 주식 방송의 수입원이 광고 수익, 시청자 후원, 정기 구독료 등이 혼재돼 있어 금전적 대가성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유사투자자문업 신고 대상 여부를 판단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특히 요즘처럼 테마주 투자 열기가 높아질수록 투자 시 신중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면서 “구체적인 사업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신중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딩방을 이용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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