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깡통전세’를 대하는 정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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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전세보증사고 피해자가 될 뻔했다.
거주하고 있던 서울의 한 오피스텔 집주인이 이사 20일 전 전세보증금을 줄 돈이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집주인은 같은 해 4월 이사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전세가 아닌 월세 세입자를 구하고, 전세 보증금은 세입자 퇴거 대출을 받아 주겠다고 장담했다.
나쁜 의도가 없음에도 전세보증사고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집주인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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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전세보증사고 피해자가 될 뻔했다. 거주하고 있던 서울의 한 오피스텔 집주인이 이사 20일 전 전세보증금을 줄 돈이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집주인은 같은 해 4월 이사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전세가 아닌 월세 세입자를 구하고, 전세 보증금은 세입자 퇴거 대출을 받아 주겠다고 장담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DSR 규제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만한 규모의 대출이 나오지 않았다.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이사오는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돌려막기 하던 집주인에게 여유 자금은 없었다. 전세 계약 전 등기부등본 등을 꼼꼼히 확인했지만, 그때는 알 수 없던 정보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사를 열흘 앞두고 새 전세 세입자를 찾았다. 수많은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고, 새 세입자의 중개수수료를 전액 대납해준 덕이었다. 새로 이사갈 집의 잔금을 치러야하는 상황에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감은 일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했다.
‘깡통전세’의 위험성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육박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방치했을까. 당시 거주하던 오피스텔의 전세가는 매매가 2억여원의 90% 수준에 달했다. 그 일대 오피스텔들은 대부분 깡통전세였다. 계약 당시만 해도 오피스텔은 다 그런 줄 알았고,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 전세사기·깡통전세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무자본 갭투기를 할 수 있도록 방치한 정부 정책의 실패가 근본 원인이라는 데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전세사기 가해자들은 부실한 제도를 악용했을 뿐이다. 나쁜 의도가 없음에도 전세보증사고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집주인들도 많다.
최근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경매 시 피해자들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긴급저리 전세자금대출을 지원하는 등의 방안은 피해자가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이같은 사태를 야기한 깡통전세를 근절할 방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빌라와 오피스텔에 집중된 전세보증사고는 아파트에서도 발생할 위험이 높다. 한국부동산원 임대차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올해 1~3월 전국 시·군·구 중 아파트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지역은 33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지역에서 무자본 갭투자로 인한 전세보증금 반환 사고가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깡통전세를 대하는 정부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는 사후 대책 뿐 아니라 사전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만큼 또다른 피해자 발생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집값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인 전세가율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게 그 방안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 제도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전세 제도가 1970년대부터 자리잡아 임대차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실현하기 쉬운 방안은 아니다. 반면 전세가율을 제한해 ‘깡통전세’를 방지하는 방안은 국회의 입법 만으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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