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워싱턴 선언과 북한의 분노

김진하 2023. 5.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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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6일 한미정상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재확인과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 및 한미원자력협정 준수를 명문화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핵우산 제공을 재확약받았고, 미 핵자산에 대한 접근 통로를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언의 의의는 작지 않다.

그렇다면 선언의 북핵 억제 효과는 단지 제한적인 수준에만 머무르는 것일까? 북한은 4월 29일 김여정 부부장 명의로 험악한 비난 성명을 내고 한미정상을 겨냥한 '복수 결의' 화형식을 벌이는 등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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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4월 26일 한미정상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재확인과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 및 한미원자력협정 준수를 명문화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핵우산 제공을 재확약받았고, 미 핵자산에 대한 접근 통로를 확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언의 의의는 작지 않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존 볼튼 전 백안관국가안전보좌관이 워싱턴 선언은 불충분한 반쪽 계획들만 담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도 있듯이, 미국의 결의(resolve)

를 실체화하는 획기적인 확장억제력 강화 방안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나 핵 공유 계획 등에 대한 암시는 없었다.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보유나 핵 재처리 시설 구비도 당분간 요원한 일이 되었다. 차관보급 핵협의그룹(NCG) 신설, 전략 핵잠수함 한국 기항 등을 통한 핵 자산의 정례적 가시성 증대 등 외견상 평탄한 조치들이 언명되었을 뿐이다. 북핵 위협에 대한 한미 간 인식차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선언의 북핵 억제 효과는 단지 제한적인 수준에만 머무르는 것일까? 북한은 4월 29일 김여정 부부장 명의로 험악한 비난 성명을 내고 한미정상을 겨냥한 ‘복수 결의’ 화형식을 벌이는 등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선언을 ‘빈껍데기’라고 폄훼하면서도 ‘상응한 보다 결정적인 행동’을 공언하는 등 모순된 반응을 보였다. 빈껍데기 선언에 분기탱천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바로 워싱턴 선언의 재보장(reassurance) 효과 때문이다. 확장억제 공약 신뢰도가 트럼프 행정부 시대 이전으로 복원되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자국 이익 우선의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추진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 대한 공약 훼손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반도 정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핵 확산을 꾀하는 제재 대상 열외국가로 취급받던 북한을 일거에 정상회담의 상대이자 국제 외교무대 주역으로 등극시켰다. 국제사회 대북 비핵화 공조체제의 이완과 균열을 초래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이에 더해 협상을 빌미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대폭 축소했다.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현저히 감소시켰다. 심지어 확장억제 공약의 최후 보루이자 인계철선인 주한미군의 감축과 철군을 협상의 지렛대로 빈번히 활용하였다. 핵 공격 시 미국이 핵 보복에 임할 것이라는 북한의 믿음을 훼손하는 행태들이 반복되었다.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도를 급격히 추락시켰던 것이다. 하노이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한국의 대화 노력을 무시하며 미사일 도발 세례를 거리낌 없이 자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동맹체제의 복원을 통한 미국의 지도국 지위 회복에 주력해온 바이든 정부가 한국 정부의 동맹 강화 노력에 화답하며 얻게 된 결실이 워싱턴 선언이다. 선언은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여기저기 비가 새던 핵우산을 재건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국제사회 청중을 대상으로 천명한 공약이며 분명한 대북 경고 메시지다. 북한 분노는 기실 워싱턴 선언의 확장억제 신뢰도 복구 효과를 반증하는 것이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도전과 난제가 산적해 있다. 북한은 미 본토 타격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핵전력 고도화를 달성하여 핵우산의 신뢰도를 근저에서 흔들기 위해 진력할 것이다. 중국, 러시아와 결착하여 한미동맹의 견고성을 시험하며 탈동조화를 기도할 것이다. 또 다른 고립주의 정부가 미국에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치와 의지의 국가 연대로서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를 더욱 격상시키는 한편, 확장억제의 고도화, 정례화, 제도화를 위해 전력투구해 나가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북핵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국민적 단합과 국론 결집은 이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 김진하=△현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고려대 국제학부 겸임교수 △민주평통 외교안보분과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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