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량 1등" 피 부족 국가 민낯…수술실서 줄줄 새는 피, 해결책은

안정준 기자, 박미주 기자 2023. 5. 11.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T리포트]혈액 절벽이 온다 (下)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피 부족 국가'로 진입한다. 10·20 수혈이 지속적으로 줄어 10년 전 대비 반토막 났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피로 지금까지 버텨냈지만, 곧 임계점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당장 올해 혈액 공급이 소요량에 못미치는 위기 단계가 올 수 있다. 인구절벽과 맞물려 도래할 '혈액 절벽'은 국민 생명줄의 위기이기도 하다. 헌혈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면 혈액 '수요'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등의 불인 혈액 위기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모색해본다.

무릎수술 수혈률 78%, 물쓰듯 펑펑… 호주는 '이것'으로 사용량 줄여


"우리나라가 거의 세계 1등인 영역이 있습니다. 인구 1000명당 사용하는 적혈구 수혈량입니다."

김태엽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회장(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혈액 관리의 현주소를 평가해달라는 머니투데이 질문에 "우리나라는 혈액 공급 관리는 굉장히 잘하지만 의료현장에서 혈액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인구 절벽으로 곧 수혈용 혈액부족이 본격화되지만 혈액 사용량은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것. 결국 공급보다는 의료현장에서의 수요 관리가 '혈액 절벽' 대응의 시작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혈액 사용량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은 사실일까.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적혈구제제 공급량은 호주와 일본, 캐나다의 경우 각기 27유닛(1유닛=400cc), 26.3유닛, 21.1유닛인 반면 한국은 41유닛이었다. 우리나라가 이들 세 국가보다 두 배 가량 많은 혈액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의료현장의 과도한 혈액 사용 관련 단적인 예가 슬관절치환술이다. 한국의 슬관절치환술 수혈률은 78%인데 미국과 영국은 8%, 호주는 14%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이정재 순천향대서울병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무릎수술을 받는 환자가 100명이라면, 이 가운데 78명이 수혈을 받는 반면 미국이나 영국은 8명에 불과하다는 뜻"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수혈 적정성 평가를 하게 된 계기도 슬관절치환술의 과도한 수혈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구체적 수혈률을 파악 가능한 수술 슬관절치환율이기 때문에 그나마 구체적 해당 통계가 있다는게 의료계 설명이다. 김 회장은 "슬관절 수술을 받는 사람은 그 수술 외에는 수혈받을 확률이 없어 평가 지표로 사용하기 쉬웠던 것"이라며 "혈액 사용량이 실제론 더 많은 심장수술의 경우엔 세분화된 진단코드와 혈액사용 자료가 없어 비교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심장수술 수혈률도 추정 자료는 있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심장수술 수혈률은 76~95%로 추정된다. 29%인 미국의 최대 3.2배다. 의료현장 혈액 사용은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수술별 수혈률 세부 집계도 어려운 것이 수요 측면에서의 우리나라 혈액 관리 현주소인 셈이다.

이처럼 의료현장에서 새는 피를 관리하려는 시도가 그동안 없던 것은 아니다. 수술 시 얼마나 혈액이 사용되는지, 수혈을 피하기 위한 사전 조치는 취해졌는지, 부적절한 수혈 관행이 이뤄지는지 평가·감시하는 이른바 '환자혈액관리'(Patient Blood Management·PBM) 개념이 도입된게 2019년이다. 혈액관리법 개정으로 의료기관에 '수혈관리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면서다. 유독 우리나라만 도입한 개념이 아니다. PBM은 2010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집행위원회(EC) 등에서 2010년부터 세계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도입 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의료현장에선 PBM 개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게 보건의료계 중론이다. 우선 PBM 개념을 반영한 수술실 수혈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 병원은 수술 중 수혈량을 제대로 체크하지 않아 어디서, 얼마나 혈액이 낭비되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15 정상이라면, 우리나라는 10이면 수혈하지만 미국은 7이 돼야 수혈한다"며 "우리나라 가이드라인엔 환자 혈액 관리개념인 PBM이 덜 반영돼 있어 사용량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뿐 아니라 호주와 캐나다 등도 이 가이드라인은 7 이하다.

관리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PBM 개념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회장은 "수혈관리위원회를 만들어서 의료진을 교육시키고 PBM 개념이 의료현장에서 구현되도록 하겠다라고 보건복지부의 계획은 서있다"며 "하지만 수혈관리위원회는 과거 수혈위원회처럼 혈액 폐기율 관리와 안전하고 안정적인 혈액 공급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혈액관리 개념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보건의료계에선 의료현장에 PBM 개념만 잘 정착돼도 수혈량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PBM을 통한 수혈 관리의 대표적 성공 사례가 호주다. 호주는 PBM 개념 도입으로 인구 1000명당 적혈구제제 사용량을 2008년 31.8유닛에서 2013년 21.5유닛으로 줄였다. 정부 주도로 PBM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혈액안전 감시체계를 운용한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김 회장은 "아직 우리나라에 PBM에 정착되지 못한 것은 '적정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의료진도 PBM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슬관절 수술률을 넘어 좀더 세분화된 국내 자료를 확보해 교육에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혈·수혈 대체하자"… 인공혈액 개발하고, 신약 사용 넓혀야


혈액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인공혈액이 떠오른다. 세계 각국에서 수혈을 대체할 인공혈액 개발에 나섰고 우리 정부도 줄기세포를 활용한 인공혈액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인공혈액 실용화는 2037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이에 단기적으론 수혈 수요를 줄일 수 있는 고용량 철분제 등 신약의 사용량 확대를 위한 해당 약제의 건강보험 급여화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부는 올해부터 2037년까지 수혈용 인공혈액 대량생산과 실용화를 위한 '세포 기반 인공혈액(적혈구·혈소판) 제조 및 실증 플랫폼 기술개발사업'을 진행한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이 공동으로 사업을 수행하며 올해부터 5년간 책정된 관련 예산은 471억원이다. 향후 필요시 추가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1단계 사업 기간인 2027년까지는 인공혈액 세포 분화·증식 기술을 개발하고 인공 적혈구·혈소판을 5~10㎖ 생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표준화된 생산공정을 만들고 시생산에도 들어가며 품질관리 기준, 시험법 개발 등 제조공정 플랫폼을 구축한다. 실용화를 위한 허가·관리방안도 마련한다.

2027년부터 2032년까지 2단계 기간엔 인공 적혈구·혈소판 제제를 1~2유닛(Unit)생산하고 임상(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연구과정) 시험을 지원한다. 범부처적 규제 기반도 구축한다. 3단계인 2032년부터 2037년까지는 인공 적혈구·혈소판 제제를 한 번에 50~100유닛을 생산하는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혈액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한다. 정부는 2037년엔 인공혈액을 실제로 쓸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학 복지부 재생의료정책과장은 "인공혈액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헌혈 기반 혈액 수급의 구조적 불균형을 첨단재생의료기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과제"라며 "김현옥 재생의료진흥재단 수석전문위원이 사업단장으로 있는 '세포 기반 인공혈액 기술개발사업단'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한국보다 앞서서 인공혈액 기술 개발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해 11월 영국에서는 브리스톨대 연구진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배양한 인공혈액의 세계 첫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2021년 교토대에서 창업한 메가카리온이 유도만능줄기세포로 혈소판을 만들어 환자에 투여해 안전성을 입증했다.

고단위 정맥 철분 치료제인 JW중외제약의 ‘페린젝트주’/사진= JW중외제약

하지만 당장 인공혈액이 상용화되지는 않은 터라 전문가들은 단기적 해법으로 수혈량을 줄일 수 있는 신약의 건보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태엽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회장(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은 "수술 전 빈혈의 가장 흔한 원인인 철결핍성 빈혈의 수술 전 치료에 우수한 효과를 나타내고 수술 중 수혈량 감소에 크게 기여하는 고단위 정맥 철분 치료제 등 비급여 약제 사용을 급여 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수술 전 빈혈 동반 환자에서 빈혈의 원인을 파악하고 수혈을 대신할 적정한 대체 치료를 수술 전에 시행하는지 여부도 파악해 의료기관별로 비교해야 한다"고도 했다.

고단위 정맥 철분 치료제로는 JW중외제약의 '페린젝트'와 한국팜비오의 '모노퍼' 등이 있다. 이는 무수혈 수술의 핵심 의약품으로 산부인과 제왕절개·부인과암 수술, 정형외과 인공관절·척추질환 수술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비급여라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급여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BMS제약의 적혈구성숙제제 '레블로질'도 마찬가지다. 고리철적혈모구형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RS) 저위험군 환자군에서 수혈량을 줄여 만성 수혈에 의한 부작용을 줄여주지만 급여 적용은 안 되고 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