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우연과 실수의 기억이 스민 '청사진'

최윤필 2023. 5. 1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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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 독일 베를린의 한 염료업자가 붉은색 물감을 얻기 위해 평소 쓰던 재료들(으깬 곤충과 황산철, 칼륨 등)을 준비하던 중 칼륨이 떨어진 걸 알게 됐다.

급한 김에 그는 동물성 지방에서 추출한 칼륨을 썼는데 놀랍게도 만들어진 염료는 짙고 영묘한 푸른색을 띠었다고 한다.

산화철의 붉은색이 동물성 지방에 의해 염기로 환원되면서 푸른색 침전물, 페로시안화철을 생성한 거였다.

푸른 물감이 귀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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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 존 허셜(John Herschel)
청사진 기법을 창안한 영국인 천문학자 겸 화학자 존 허셜. 위키피디아

18세기 초 독일 베를린의 한 염료업자가 붉은색 물감을 얻기 위해 평소 쓰던 재료들(으깬 곤충과 황산철, 칼륨 등)을 준비하던 중 칼륨이 떨어진 걸 알게 됐다. 급한 김에 그는 동물성 지방에서 추출한 칼륨을 썼는데 놀랍게도 만들어진 염료는 짙고 영묘한 푸른색을 띠었다고 한다. 산화철의 붉은색이 동물성 지방에 의해 염기로 환원되면서 푸른색 침전물, 페로시안화철을 생성한 거였다. 푸른 물감이 귀한 시절이었다. 인류 최초의 화학 합성색소가 된 그 물감으로 프로이센 군대가 군복을 염색하면서 그 색은 ‘프러시안 블루’라는 이름을 얻었다.

1842년 영국 천문학자 겸 화학자 존 허셜(John Herschel, 1792~1871)이 1842년 5월 11일 ‘청사진(blue print)’이라 불리게 된 기법을 개발하면서, 정착액으로 쓴 게 프러시안 블루 용액이었다. 반투명 종이(트레이싱 페이퍼)에 검은색 잉크로 글씨나 그림을 그린 뒤 감광지 위에 올리고 빛을 쪼이면 잉크로 덮이지 않은 부분이 빛에 감응하고, 그 용지를 페로시안화 용액에 담가 마치 네거티브 필름처럼 푸른색 바탕에 흰색 글씨와 그림을 얻는 기법. 최초의 여성 식물화가 겸 사진가 안나 애트킨스가 1843년 ‘영국 조류 도감: 청록색 인상’에서 식물 삽화를 복제한 것도 허셜의 청사진 기법이었다. 청사진은 건축가와 공학도들이 설계도나 공정 도면을, 도면 크기에 상관없이 손쉽고 저렴하게 복제하는 방법으로 널리 활용됐다.

지난 세기 복사기 등이 잇달아 개발되면서 허셜의 기법은 점차 덜 쓰여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청사진’이란 용어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말로 지금도 즐겨 쓰이고 있다. 그 까닭은 어쩌면, 계획-구상의 처음이 우연과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아이러니의 교훈을 잃고 싶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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