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 줄 알고 쐈다" 언론인 20명 이상 살해한 이스라엘
"2001년 이후 최소 20명 살해됐지만
기소·징계 없어... 폭력적 보도 탄압"
2022년 5월 11일 오전 6시 31분. 아랍계 매체 알자지라 기자 시린 아부 아클레(당시 51세)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북부 도시 제닌의 난민촌에 있었다.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세워지면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의 거주지다. 미국 국적의 아부 아클레는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테러범 색출 작전을 취재 중이었다.
여섯 발의 총성이 갑자기 울렸다. 한 발이 아부 아클레의 뒤통수에 날아들었고, 그는 즉사했다. 그와 동료 언론인 3명 모두 가슴과 등에 커다랗게 '프레스(언론)'라고 적힌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9일(현지시간) 공개한 특별보고서에서 "이스라엘군의 기자 살해는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민간인을 표적 삼는 것을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그러나 아부 아클레 살해에 대해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프레스 조끼 입고도 총격의 표적 돼"
CPJ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이스라엘군이 살해한 언론인은 최소 20명이다. 이 중 최소 13명은 기자라고 식별할 수 있었음에도 이스라엘군이 공격했다. "아부 아클레는 당시 난민촌 취재 사실을 사전에 이스라엘에 알렸고, 그의 방탄조끼 역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고 알자지라는 밝혔다.
2008년 4월 숨진 로이터통신 카메라 기자 파델 샤나도 '프레스'라고 적힌 방탄조끼를 입고 'TV' '프레스'라고 표시된 차량 옆에 서 있었지만 이스라엘군 탱크가 발사한 포탄에 맞아 숨졌다. 샤나의 형제인 무함마드는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어떠한 설명이나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며 "이스라엘군은 샤나가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취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쏜 것"이라고 했다.
프레스 조끼를 입고 취재 중 복부에 총상을 당한 프리랜서 사진기자 야세르 쿠디흐는 "우리가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며 "군인들은 기자들이 있는 곳을 직접 겨냥했다"고 했다.
사망한 언론인은 일부일 뿐이다. 더 많은 기자들이 취재 중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다쳤다. 2021년에는 AP통신, 알자지라 등 12개 이상 언론사 사무실이 들어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았다.
"사람들 죽어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CPJ는 살해된 언론인 20명의 사례를 분석해 이스라엘군의 대처 방식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책임을 부인하고 △증거와 증언을 무시하며 △자체 조사를 불투명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교전 중에 '우연히' 아부 아클레가 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아부 아클레 피살 5개월 만이었다.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쏜 총에 맞았을 가능성을 계속 흘렸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아부 아클레가 이스라엘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고 결론내렸고, 영국에 기반한 연구단체 '포렌식 아키텍처'와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알 하크'도 이스라엘군이 아부 아클레를 살해할 의도로 겨냥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당시 현장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없었다고 동료 PD가 증언했지만 모두 배제됐다.
이스라엘은 2014년부터 군에 의한 민간인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평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언론인의 죽음을 다룬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부 아클레는 동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계지만 미국 시민권자였기에 요식적 조사라도 했다. 숨진 나머지 20명 중 2명은 이탈리아와 영국의 특파원이었고, 나머지는 팔레스타인 출신이었다. 이스라엘인은 없었다. CPJ는 "이스라엘이 국제적 압력이 있을 때만 조사하는 시늉을 한다"며 "조사를 하더라도 기소되거나 징계를 받는 등 책임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한 취재 보도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르단 로야TV 기자 하페즈 아부 사브라는 "기자들이 시위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충돌이 있는 곳은 피하게 된다"며 "주민이 촬영한 영상을 받아 사용하는 등 보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깨깨깨깨깨” 그래야 열려 - 남세동 맨땅브레이커 상편
- 9세 초등생, 우회전 신호 위반 시내버스에 치여 숨져
- 뱀이 거기서 왜 나와?...일산 아파트 1시간 넘게 정전
- 아이스크림 훔친 초등생 신상 공개 논란…“낙인 찍기” vs “부모 잘못”
- "잊히고 싶다" 말했던 文, 책방 열며 보폭 넓히기… 왜?
- 아이유, '셀러브리티' 등 6곡 표절 혐의로 고발당해
- 윤석열표 '3대 개혁' 방향엔 찬반 팽팽... 추진 전망은 65%가 부정적
- 정몽원 HL그룹 회장, 백지연 전 앵커와 사돈 맺는다
- "베트남인들은 한국서 일하고 싶다" 10년 만에 '한국어 시험' 최다 응시
- "체감온도 50도니까 외출 금지"...'괴물 폭염'에 실신한 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