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틀린 감상은 없다

기자 2023. 5. 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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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양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과 소설, 시, 비평문 등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는다. 한 편의 글을 같이 읽고서 “어떤 느낌이 드나요?”라고 질문하면, 학기 초에는 난감해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시에 대한 감상을 물으면, 학생들은 “저는 시를 잘 몰라서요…”라며 답변하기를 주저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참 안타까웠다. 시의 주제가 무엇인지 혹은 이 시를 쓴 작가가 누구인지를 물은 게 아니라 시를 읽은 이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을 물어본 것이기에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은 ‘옳은’ 답변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며 망설인다. 물론 다수의 학우 앞에서, 강의실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을 테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어려움이다. 다만, 그러한 부담감보다는 ‘옳은’ 해석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답변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욱 커 보여서 안쓰러웠다.

나 또한 처음 대학교에 와서 특정 시에 대한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나의 느낌을 서술하는 일보다 옳은 해석을 찾는 일에 더욱 몰두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전문가의 해설을 맹신하기도 했다. 나만의 감상에 집중하기보다 틀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누구라도 이러한 독해 방식을 익숙하게 느낄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다채롭게 읽히도록 쓰인 시 작품조차 교과서에 실릴 때면, 이에 대한 획일적인 해석과 함께 제시된다. 시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시의 주제는 무엇인지, 심지어는 이 시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까지 설명하며 외우게 한다. 시험 출제에 용이하도록 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는 전제 아래 시를 가르치는 것이다.

최승호 시인은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 문제를 풀어 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는 옳은 해석이 어불성설임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은 창의적 읽기의 내적 동기를 앗아간다. 자기만의 개성적인 시선으로 시를 바라보고 이에 개인적인 경험을 덧대어 보는 일은, 지금의 교육과정에서는 무용한 것으로 치부된다. 이는 시를 풍부하게 독해할 기회를 박탈시키며, 시를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주게 된다. 시 읽기가 즐거움과 재미를 주기는커녕 맞는 답을 찾아 헤매도록 만드는 고역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그러한 압박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시를 누가 썼는지, 이 시가 문학사적으로 어떤 가치를 갖는지, 어떤 시편들과 묶여 논의될 수 있는지는 알려줄 수 있지만, 이 시를 읽고 여러분이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는 결코 가르쳐줄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예시를 들어준다. “아침 1교시부터 이런 엄숙한 시를 읽으니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저 피곤하다”라고 말해도 되며, “시에 ‘불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불평해도 된다고. “지금은 이렇게 더운 날씨인데 시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어 정말 부럽다”라고 말해도 그것도 좋은 감상이 된다고. 정답을 알아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가슴속에서 새어 나오는 ‘나의 고유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좋겠다.

조금씩, 조금씩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자기만의 감상을 들려줄 때, 그리고 그것이 오답이 아니라 오히려 존중받아 마땅한 빛나는 의견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보여주는 환한 열기 같은 것이 있다. “이 글은 어떻게 읽혀요?” 물으면, 요즘은 학생들이 먼저 번쩍 손을 든다. 그러고는 아주 흥미롭고 참신한 감상을 들려준다. 나의 읽기가 설사 오독에 불과할지라도, 그마저도 텍스트를 모독하는 일이 아니라 텍스트와 나를 함께 풍성하게 하는 일임을, 많은 사람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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