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격전지’인 태평양 섬나라로… 한국 영향력 넓힌다
정부가 이달 29~30일 18개 태평양도서국(태도국)의 정상급 인사들을 서울로 초청해 처음으로 ‘한-태도국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태도국은 최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중이 서로 공을 들이면서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그동안 한반도 주변 4강(强)에 과도하게 치우쳤던 한국 외교가 새로운 영역으로 지평을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는 태도국과의 정상회의에서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교섭을 벌이는 한편, 개발협력·기후변화·해양수산·인적 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태도국은 태평양 중부·서부와 남태평양에 위치한 14국을 가리킨다. 여기에 호주·뉴질랜드, 프랑스 자치령인 뉴칼레도니아·프렌치 폴리네시아도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 면적의 14%에 육박하는 광활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갖고 있고, 참치 어획량의 70%가 이곳에서 나올 정도로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등 주요국들은 이런 태도국의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해 오래전부터 집중해왔던 지역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별도의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가 뒤늦게 뛰어든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태도국을 핵심 파트너 중 하나로 언급했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차례 외교장관 회의를 진행했다. 이어 1995년 PIF의 대화 상대국이 된 지 28년 만에 첫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에선 미국의 영향력이 강했다. 하지만 2021년 중국이 호주 코앞에 있는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한 것을 기점으로 미·중 경쟁의 또 다른 격전지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워싱턴에서 ‘미-태도국 정상회의’를 최초로 개최했고, ‘태도국 협약 특임대사’라는 자리를 만들어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지명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솔로몬제도에 30년 만에 대사관을 재개설했고, 통가에는 대사관을 신설할 예정이다. 게다가 이달 하순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다. CNN은 “이번 방문은 중국의 역내 영향력 증대에 대응하기 위한 태평양 파트너십 강화를 모색하는 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미국보다 앞선 2018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파푸아뉴기니 방문을 계기로 ‘중-태도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를 계기로 ‘전면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관계를 격상했고, ‘중-태도국 협력기금’을 만들어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보건·농업·해양·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이 태평양 도서국들과 첫 정상회의를 한 직후 중국은 “태평양 도서국이 대국 게임의 바둑알이 돼선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이 태도국에 대한 기여와 관여를 확대하면서 한미 동맹이 이 지역에서도 공동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한국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주도의 태도국 지원 협의체 ‘푸른 태평양 동반자(PBP)’에 일본·캐나다 같은 유사 입장국들과 참여하고 있다. 또 이 지역에서 공적개발원조(ODA)를 고리로 하는 한·미·일 협력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인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는 “태평양 지역은 풍부한 해양·수산·광물 자원 때문에 강대국들의 주도권 경쟁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개발 경험, K팝 같은 소프트 파워를 앞세워 지역 내 자유·평화 유지에 함께하겠다는 측면을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이번 회의에서는 제1의제로 기후변화를 내세웠다. 키리바시·투발루의 국토 대부분이 해수면 상승으로 수십 년 이내에 수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태도국은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태도국은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아 효과적인 공동 대응이 어려운데 정부는 탄소 배출 저감, 풍력·태양광·해수온도차 발전 같은 분야에서 우리가 보유한 선진 기술과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이번 회의는 한국이 달라진 국력에 걸맞은 역할을 해서 국제사회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정부의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과도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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