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86] 안드레아 보첼리의 시골 극장
‘캐시미어의 제왕’이라는 별명의 패션디자이너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는 1985년 하나의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내의 고향인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지방 솔로메오(Solomeo) 마을의 중세 성과 집들을 구입, 리모델링을 통해서 본사 건물과 학교, 도서관, 극장을 지은 것이다. 회사 수입의 일부를 재단에 기부하고 재단에서 이러한 문화 사업들을 진행하는 형식이다. 자신도 이곳에 살면서 한적한 시골을 문화 마을로 재건하는 데 땀을 쏟았다. 외딴 지역이지만 이 마을에 만들어진 극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들을 유치하며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는 ‘침묵의 극장(Theatro del Silenzo)’이 있다. 2016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가 자신의 고향인 ‘라야티코(Lajatico)’에 만든 노천극장이다. 매년 7월 여기서 열리는 음악회에 보첼리 자신이 직접 출연해서 노래를 한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서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2만 명의 관객이 찾아온다. 토스카나의 언덕에서 시원한 밤공기를 느끼며 음악을 감상하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멋지다. 1년에 단 하루만 공연을 하고 나머지는 비어있으므로 ‘침묵의 극장’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공연이 없는 시기에는 예술가의 작품들이 순회 설치된다. 지난봄 방문했을 때는 박은선 작가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명사들이 헌정한 문화예술 공간이 베네치아나 밀라노 같은 유명 도시가 아닌 상대적으로 한적한 시골에 만들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자신이 출생하고 자란 마을을 위한 통 큰 기부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현이다. 올해부터 실행되는 우리나라의 ‘고향사랑 기부제’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참고 사례들이다. 외딴 시골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건 ‘자연’과 ‘예술’밖에 없다.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봐라. 그리고 그보다 더 위대한 인간이 만든 공연을 봐라”는 의도로 절경의 장소에 원형극장을 건설했던 그리스인들의 철학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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