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노래 들으며, 이곳에선 다시 청춘이 된다
“엄마하고 딸이 같이 온 거예요? 어머니는 7학년? 8학년? 요즘 80대는 사실 60대 같으셔서. 가늠이 잘 안 되네요. 하하.”
7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라이브카페 ‘정훈희와 김태화의 꽃밭에서’ 무대에 선 가수 정훈희가 너스레를 떨자 실내 곳곳 “꺄르르” 웃음소리가 터졌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그의 노래를 들으러 온 중·장년층 관객 80여 명이 자아낸 소리였다. 주 연령대는 60대에서 80대. 하지만 공연 호응만큼은 10~20대의 K팝 공연장 못지않았다. 첫곡 ‘꽃길’을 시작으로 ‘빗속의 연인들’ ‘진실’ ‘꽃밭에서’ 등 정훈희가 히트곡 6곡을 쏟아낼 동안 관객들도 연신 떼창을 쏟아냈다. 공연 막바지엔 기립 박수까지 나왔다. 정훈희는 공연 직후 “오늘은 그나마 비가 와서 사람이 적었다”며 “본래 180명까지 꽉 들어찬다”고 했다.
정훈희는 7년 전부터 이곳에서 한 달에 2~3회씩 토·일요일 오후 3시부터 약 1시간 10분 가량 라이브 공연을 펼치고 있다. 남편인 가수 김태화(73)와 함께 “70세 되어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여기서 노래를 하자”며 30년 전 사둔 땅에 지은 카페였다. 현재는 “옛 스타와 노래를 만날 몇 안 되는 소중한 공간”으로 동년배 관람객을 대거 끌어모으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K팝 이외 장르를 선보이는 공연장들이 대거 사라졌고, 특히 중·장년층은 노래를 즐길 공간을 찾기 어려운 현실 탓이다.
덕분에 이 카페는 부산역에서 약 1시간 떨어진 거리에도 매달 공연 예약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정훈희, 김태화의 출연 일정은 매달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카페 소개, 혹은 카페 전화(0507-1333-7612)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입장료 2만원을 내면 음료 1잔과 함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정훈희·김태화의 노래를 배경 삼아 감상할 수 있는 카페 뒤편 기장의 너른 바다와 모래사장 풍경이 일품이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대로에 있는 라이브 카페 록시(Roxy)는 밤의 정경을 주무대로 7080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이곳에서 월 8회, 오후 8시에 가수 송창식(77)이 공연을 펼친다. 그는 이 카페 소유주는 아니지만, 20여 년 전 록시의 초대 사장이 현재 위치에 산 땅에 건물을 올릴 때 직접 설계를 맡았고, 이후 전용 공연장이자 연습장처럼 이곳을 써왔다. 송창식은 “한창 연습 때는 매주 5시간씩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며 “천장 및 전체 구조를 둔각으로만 설계해 소리 울림을 최소화했다. 가수가 라이브하기엔 최적 공간”이라고 했다.
이곳에선 다른 시간대에 다른 가수들도 노래하지만, 오후 8시 송창식이 올라올 때마다 최대 170석에 달하는 실내에 관객이 가득 들어찬다. 지난 5일에도 약 100여 명 관객이 몰려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 출신이자 동명 영화 줄거리의 실제 모델이었던 기타리스트 최훈과 함께 통기타 두 대로 연주하는 송창식의 노래를 감상했다. 공연비 없이 가장 저렴한 메뉴가 2만원인 음료, 혹은 6만원인 식사류를 시키면 먹으면서 관람이 가능하다. 정작 송창식이 노래를 하면 식사를 중단하고 노래에 빠져드는 관객들이 속출했다. ‘선운사’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등 그를 대표하는 명곡들이 연주될 때마다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공연 직후 만난 송창식은 “내 무대가 음식 회전율을 낮춰 정작 카페 수익에는 도움이 안 된다”며 웃었다.
이곳들은 가수들 스스로에게도 중·장년층 관객들을 만날 소중한 공간이다. 두 사람은 특히 지난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엔딩곡 ‘안개’에 함께 목소리를 입혀 화제가 됐다. 덕분에 젊은층 관객도 늘었다. 단골 신청곡으로 ‘안개’가 자주 올라온다. 정훈희는 “그래도 안개 말고도 다양한 옛 곡을 자주 선곡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카페는 3대가 함께 오는 공간”이라며 “이젠 옛 곡을 들을 곳도 부를 곳도 많지가 않다. 가수에게도 이런 공간은 목을 유지하기에 귀한 공간”이라고 했다. 송창식은 “나는 출발이 카페에서 노래한 사람이고, 가수가 매일 노래할 곳은 카페밖에 없다”며 “수입에는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진 않지만 노래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공연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부산·하남=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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