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빠금살이
세찬 먹비가 내렸다. 오랜만의 단비였어. 저수지 물이 꽉 찼다. 하늘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 가뭄이 길었다가 쏟아진 빗줄기. 감사한 마음으로 비를 머금자 꽃이파리들이 기지개를 켠다. 바다와 산맥을 건너고 국경을 초월해 내리는 빗줄기.
비가 개면 어린 동무들 모여 꼬막껍질, 조개껍질을 주워다가 찬그릇을 삼고, 장대비에 떨어진 꽃이파리들을 주워 조약돌로 으깨 반찬을 만든다. 모래로 쌀을 삼아 밥을 짓고 널찍한 돌판에 밥상을 차린다. 소꿉놀이를 여기선 ‘빠금살이’라고 해. 남자아이 여자아이 짝을 지어 부부놀이, 가족놀이를 했다. 혹은 병원을 차리기도 하고 미용실을 차리기도 해. 장성해도 인간은 어차피 빠금살이 같은 걸 하는 거 같아. 인간이 자라면 또 얼마나 자랄까. 성숙한들 또 얼마나 깊어질까. 한국 영화계에 김지미씨 같은 대배우가 없을 것이다. 그녀가 가수 나훈아씨와 동거하며 그림과 일본어, 영어 등을 권해 실력을 갖추게 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 밖에도 배우 김지미씨는 네 번의 결혼 생활을 이어갔는데, 어른들의 소꿉놀이라 해야 할까.
“남자는 다 어린애야. 불안하고 부족한 존재지. 여자들이 모성애로 감싸니까 사는 거지. 내가 많이 어린 남자, 나이든 남자 다 살아봤지만 남자는 다 똑같아. 어린애야.”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풍선은 의미심장했다. 나이가 든 어린아이들, 부족한 존재들.
어린아이들이 모여 놀던 마을 공터가 있었지. 느티나무 아래라든가 개울가 모퉁이 놀이터가 사라지고 없어. 옛 기억을 되살릴 공간들이 증발하고 없어. 새들도 알을 낳을 수 없는 시멘트 덩어리 집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을 내건 카페들. 꽃다발로 사랑을 도전하지 않고, 모진 헤어짐과 낳지 않는 아이들. 모르겠다. 이건 새로운, 저들만의 빠금살이인가.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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