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혀와의 갈등

임미다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2023. 5.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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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가 사는 곳 근처 도서관의 활짝 핀 등나무 꽃 아래 앉아 꽃향기를 마음껏 즐겼다.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어떤 향수도 햇살과 함께 쏟아져 길을 가득 메우는 등꽃 향기를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이 시기는 아이들과 함께 등나무의 꼬인 줄기를 직접 만져보며 ‘갈등’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만난 단어이고, 줄기를 꼬아 올라가는 방향이 반대라 ‘서로 복잡하게 얽혀 화합하지 못하고 충돌한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알려주면, 칡과 등나무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는 아이가 꽤 있다. 마침 꽃 필 무렵 등나무를 찾아 야외 수업을 한다.

등나무는 그늘을 만들기 위해 흔히 심기에, 주변에서 보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칡은 덩굴과 뿌리의 모습보다 ‘어른들이 마시는 까만 물’로 더 많이 인식되는 듯하다. 칡을 안다고 하는 아이들 대부분 “할머니가 칡즙 드시는 걸 봤어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영상을 찾아 칡덩굴, 칡뿌리 캐기, 칡즙 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준비한 칡즙을 따뜻한 물에 섞어 아이들에게 조금씩 맛보라고 했다.

입술에 닿기도 전에 맛이 쓸 것 같다며 눈살을 먼저 찌푸리는 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혀끝을 살짝 적시며 맛을 보는 아이, 꿀꺽 한 모금 삼키는 아이, 표정이 다 다르다. 그런데 맛보고 나서 반응은 한결같다. “한약처럼 쓴 걸 달다고 하시다뇨. 선생님은 이상한 혀를 가졌어요.” 처음엔 쓴 것 같아도, 끝 맛은 달짝지근하다고 한 내 말을 이렇게 받으며 아이들이 깔깔 웃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달콤함’은 하얀 설탕 맛일 테지만, 시중의 달콤한 간식거리에 들어있는 어떤 설탕도 은근하고도 깊은 자연의 달콤함을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시중의 단맛에 중독된 혀와 자연의 은근한 맛을 찾는 ‘이상한 혀’ 사이의 갈등. 쏟아지는 ‘먹방’과 가공식품 속에서 어떤 먹거리를 고를 것인가,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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