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아름다운 걸 본 죄
저물녘 10만마리 도요새 무리가 군무를 춘다. 계통 없이 추는 군무가 아니다. 일정한 속도와 리듬을 유지하며 이리저리 하늘을 날면서 군무를 춘다. 자연이 연출하는 신묘한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경이로움을 느끼며 눈이 멀 수밖에 없으리라. 10만마리 도요새 무리의 군무를 보며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만물을 기르고 만물을 형성하는/ 전능한 사랑의 힘”(괴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장관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강행되면서 도요새 무리를 비롯한 철새들은 먹고 쉴 갯벌을 잃어버렸다. 10만마리 도요새가 군무를 추던 옥구염전 또한 폐전되었다. 황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되는 도요새 무리의 군무는 새만금 방조제 건설이 마무리되면서 옛일이 되고 말았다. 참혹한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21세기판 조개무덤 앞에서, 상실감과 죄책감 등 복잡한 감정이 어우러진 깊은 ‘생태 슬픔’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었다. 33.9㎞의 새만금 방조제가 연결되면서 모두가 갯벌이 파괴되었다고 말했지만, 갯벌은 아직 죽지 않았다. 7년의 작업 끝에 영화 <수라>는 새만금 지역에 마지막으로 남은 군산 수라 지역의 갯벌 생태계를 연구하는 시민과학자들의 활동과 어민들의 표정을 앵글에 오롯이 담았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을 하는 ‘시민과학자’ 오동필 선생이 도요새들의 군무를 그리워하며 ‘아름다운 걸 본 죄’ 때문에 생태조사 활동을 멈출 수 없다고 한 말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아름다운 걸 본 죄’라는 말은 ‘아름다운 걸 본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리라. 동화작가, 사진가, 일반 시민들이 지난 30년 동안 생태 슬픔을 넘어 돌봄전환사회를 위해 정직한 목격자로서 기록 활동을 수행한 데 대해 경의를 보낸다.
하지만 ‘식인’ 자본주의(낸시 프레이저)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은 자연을 ‘합병’하는 일을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아름다운 4대강(江)이 파괴되고, 연안의 갯벌이 메워지고, 제주 비자림숲의 나무들이 잘려 나간다. 수라 갯벌 또한 이웃한 미군기지 탄약고 안전거리 확보라는 이유로 600여가구가 살던 풍요로운 포구였던 하제마을이 해체되었다. 하제마을은 수령 600년 된 ‘팽나무 어른’ 혼자 쓸쓸히 지킨다. 그래서 영화 <수라>는 뛰어난 영상미학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좋은 삶이고, 무엇이 좋은 사회인지를 묻는 사유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 돌봄과 자연 돌봄이 어우러진 돌봄전환사회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영화 <수라>는 자연 없는 문화는 없다는 점을 환기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6월에 개봉되는 영화 <수라>가 전국 상영관에서 롱런했으면 한다. 관람객들이 어쩌면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까닭은 자본주의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자본주의 ‘때문’일 수 있다는 개안(開眼)을 하는 작은 질문을 이 영화를 통해 하게 되었으면 한다. 황윤 감독의 “당신의 수라는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이 귓전에서 아직 맴돈다.
하제마을 팽나무 어른과 수라 갯벌을 만나러 이 봄날 군산에 가야겠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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