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80] 어버이날에 듣는 ‘부모은덕가’
지금은 거의 부르지 않는 ‘부모은덕가’는 민요풍 창가인데 간혹 외국곡으로 잘못 소개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1절과 2절,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고사를 활용하여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있는 3절, 고생하신 부모님의 은덕을 잊지 말고 갚자는 4절과 5절로 이루어져 있다. ‘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 자를 비롯해 ‘최신창가집’(1914년), ‘애국창가’(1916년) 등의 여러 노래책에 수록될 만큼 인기를 구가했으며, 독립운동 가요로도 불렸기 때문에 노랫말에 등장하는 ‘부모’를 ‘조국’으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이 노래의 작사가인 안창호는 학도들에게 노래 부르기를 권고하고 장려한 인물로 유명하다. 자연과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인격을 수련하고 품성을 닦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부모은덕가’의 작곡자에 대해서는 한참 동안 김인식으로 추정하거나 미상인 채로 비워두었다. 하지만 음악가 김인식과 김형준의 대담을 다룬 잡지 ‘신가정’ 1934년 3월호의 기사를 근거로 정사인이 이 노래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밝혀냈다.
바장조에 4분의 4박자, 오음계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효’를 주제로 한 만고불변의 호소력 있는 노랫말과 친숙한 선율, 안창호의 적극적인 독려 등으로 자연스럽게 당대인의 인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은 이 노래처럼 효도를 주제로 한 ‘친(親)의 은(恩)’이라는 학교 창가와 대비해 보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일제 주도로 1910년에 편찬한 음악 교과서 ‘보통교육창가집’에 수록된 ‘친의 은’은 관제적 성격을 다분히 지닌다는 점에서 ‘부모은덕가’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현한 문화가 혼종적인 성격을 당연히 지니는데도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시작을 말할 때는 전통의 단절과 외래 문화의 이식만 강조하기도 한다. 대중가요를 ‘작사·작곡자가 창작해 대중매체를 통해 유통된 일련의 노래’라고 정의한다면, ‘부모은덕가’는 대중가요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더구나 이 노래는 유성기(축음기)라는 근대 매체를 통해 유통되기도 했다. 일본축음기상회에서 ‘닙보노홍’이라는 상표를 달고 1913년에 ‘부모은덕’이란 제목의 음반으로 발매되었고, 1923년에는 ‘부모의 은덕가’란 제목으로 재발매되었다.
부모에 대한 효도라는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노래라도 충분히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노래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래 가요의 번안곡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창작한 민요풍 노래에서 대중음악 초기의 모습을 헤아려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어버이날이었다. ‘부모은덕가’를 불러 보다가 대중음악 초기의 역사를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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