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허준 이야기

경기일보 2023. 5.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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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렬 한의학 박사

허준(1539~1615)은 1539년(중종 34년) 양천 허씨인 아버지 허론과 영광 김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허준의 젊은 시절은 호남지역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호남지역의 인맥이 매우 중요하다. 허준과 관련된 호남 사림 가운데 유희춘은 허준의 5촌 당숙이던 김안국의 제자로 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한 특별한 사이다.

그의 나이 30세 되던 해에 내의원에 출사해 1596년 선조의 어지를 받들어 편서국을 설치해 의서의 편찬을 시작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결국 편찬은 중단되고 말았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어의였던 허준은 의주로 유배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욱 의서 편찬에 혼신의 힘을 다해 1610년 8월 초, 마침내 완성된 원고를 광해군에게 바쳤다. 1613년 11월 조선 내의원에서 교지를 받들어 ‘동의보감’이 간행, 15년간의 숭고한 허준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됐다.

허준은 동의보감이라는 의서를 통해 고래의 도가적 전통을 의서 편찬의 기본 철학으로 삼아 금원대사가 의학의 정리 및 이후의 명대 의학을 조선 향약론의 전통으로 흡수 완성하는 업적을 이뤘다. 

허준의 이러한 자연철학은 16세기 중·후반 서경덕(1489~1546)을 조종으로 해 한강 이북과 임진강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성시산림’ 학파들의 이른바 유·불·선 삼교회통 사상과의 교류 덕분이다. 개경 출신의 화담은 도가적 학풍에 상공업을 중시하고 절충과 개방 의식이 뚜렷했으며 조선 후기 남인 실학의 저류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유학과 도가 및 불교를 넘나드는 회통의 사상, 특히 선가적 분위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실생활에 필요하다면 정학이나 이단을 가리지 않고 절충·보합하려는 학문적 개방성도 가지고 있었다.

허준이 서울과 개경을 잇는 임진강 주변 이북 학자들과의 삼교회통 전신의 교우를 통한 자연철학의 완성에서 동의보감이 완성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허준의 고향에 대한 진실게임이 일어나고 있다. 산청에서 유의태에게 의술을 사사했다는 웃지 못할 억측도 나온다. 허준의 본관이 양천현(강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양천 허씨들의 세거지, 특히 허준의 할아버지 허곤, 아버지 허론, 허준 자신과 그의 동생 허징과 허준의 후손들 모두가 경기도 장단(파주)에 거주했으며, 이들의 사후 묘소가 장단에 있다. 허준의 묘소는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1991년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다시 말해 파주는 동의보감을 허준이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학문적 토대와 정신적 철학을 숙성시킨 곳이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닿아 있는 곳이 허준의 고향이다. 파주시민들에게 허준에 대한 긍지를 지키게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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