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느끼는 맛과 배우는 맛으로 영그는 것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의 식습관을 두고 벌어지는 밥상머리 다툼은 일상적이다. 더 먹이려는 엄마와 안 먹으려는 아이, 먹지 못하게 말리는 아빠와 기를 쓰고 좋아하는 먹거리를 쟁취하려는 자식의 힘겨루기는 흔한 일이다. 왜 먹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이토록 복잡한 걸까.
동물들은 타고난 맛 감각에 따라 특정 먹이를 선호하거나 피한다.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하기에 단것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판다는 곰의 일종이면서도 감칠맛을 느끼는 감각을 잃어버려 고기 대신 대나무만을 먹는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맛이란 본능이 차지하는 중요성만큼이나 문화적 특성도 중요하다.
사람은 식재료를 그대로 먹기보다는 이를 가열하고 양념하고 발효시켜 다양한 맛과 풍미를 더해 즐기는 문화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선천적으로 ‘느끼는’ 맛을 넘어 후천적으로 ‘배우는’ 맛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저마다 처한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에 ‘배운 맛’에 대한 선호도는 다양하게 나타나며, 본능적 선호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커피는 식물성 알칼로이드의 일종인 카페인이 들어 있어 쓴맛이 난다. 아이들이 블랙커피를 질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를 자주 마시는 어른들의 경우, 이 쓴맛을 즐기며 일부러 찾는다. 심지어 청국장과 홍어와 취두부와 림버거치즈처럼 맛과 향이 지나치게 강해 선뜻 입에 넣기 어려운 음식들조차도 많이 접해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별미가 된다. 반대로 아무리 본능적 선호도가 높은 단맛이나 감칠맛이 풍부한 음식도 개인의 경험과 익숙한 정도에 따라 물리거나 역하거나 느끼하다며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사람에게 맛의 감각은 동물적 본능과 개별적 경험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영역이다.
이런 본능과 경험의 충돌이,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반드시 벌어지는 밥상머리 전쟁의 근본적 이유가 된다. 충분한 경험에 익숙해진 어른들에게는 맛에 더해 음식을 선택하는 다양한 선호 기준이 있다. 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몸에 좋은’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직 세상이 낯선 아이들은 이런 경험적 지식보다는 본능적 선호에 기대는 바가 크다.
게다가 맛을 느끼는 미각세포가 혀에만 분포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의 미각세포는 혀뿐 아니라 입천장과 목구멍 등 입안 전체에 퍼져 있기에 맛을 더 예민하게 느낀다. 아이들이 단것에 유독 집착하는 것이나 시금치, 브로콜리 같은 채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도 예민한 이들의 미각이 맛에 대한 감각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유식을 먹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거나 잘 먹던 아이가, 자라면서 오히려 편식이 심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의 발달 과정에는 만 2~6세 사이에 유난히 먹을 것에 민감하게 구는 푸드 네오포비아(food neophobia) 시기가 있다. 이 시기는 아이가 젖을 떼고 엄마가 주는 것만을 먹던 시기를 벗어나 자신의 손으로 음식을 찾아 먹기 시작하는 때이다. 모유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먹거리이기에, 엄마 젖을 먹는 아기는 먹는 것의 안전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젖을 떼고 제 손으로 먹을 것을 찾아 입에 넣는 시기가 되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기에 이들이 입에 넣는 것이 반드시 안전하리라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 아이들은 대개 음식을 가린다. 익숙한 음식 몇 가지만을 고집하고, 처음 보는 음식들은 거부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시기에 나타난 편식 습관은 대개는 학교에 갈 나이 즈음이 되면 점차 완화된다. 다만, 이 시기 아이가 접해본 음식의 가짓수가 적을수록, 아이의 기질이 예민할수록, 아이가 세상에 느끼는 불안감이 높을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더욱 오래 지속된다.
그러니 이 시기의 아이에게는 다양한 음식을 접하게 해 낯선 음식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고,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먹는 일이 고역이나 의무, 혹은 결핍된 다른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대리만족의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며, 자신의 몸과 정신을 쌓아가는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말이다.
한 명의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은 아이가 세상 음식의 맛을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세상에서 한발 떨어져 있을 때는 호불호가 없으나, 모진 풍파를 맞닥뜨리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시기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 시작하는 이들일수록 더 조심스럽고, 더 보수적이고, 더 깐깐하게 굴 수도 있다. 어른의 여유와 융통성이란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더해지는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살이를 막 시작한 이들에게 필요한 건 기존 사회의 호불호를 빠르게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취향을 찾고 안전한 삶의 방향을 발견할 때까지 실수를 다독여주는 여유가 아닐까.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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