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속 불가능 K팝
K팝은 지속 가능할까. 하이브의 2023년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 내용 일부가 팬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관건은 공연 티켓을 경매 방식으로 판매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티켓 가격 변동제)’ 확대와 독자적인 팬 플랫폼 ‘위버스’의 유료화 플랜이다. 하이브가 출시한 새로운 서비스의 가격 전략이 팬덤의 상식과 크게 어긋나며 K팝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먼저,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미국의 티켓 판매 플랫폼 ‘티켓마스터’의 서비스다. 실시간 수요를 알고리즘으로 계산해 가격을 경매가처럼 높이는 판매 방식이다.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폭리 추구 실태를 지적받았을 정도로 문제적인 서비스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하이브는 전도유망한 공연 매출 확대 방안으로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주주들에게 소개하며, 같은 원리로 티켓파워에 기반해 가격을 책정하는 ‘부르는 게 값’인 판매 전략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정당한 가격에 투명한 거래를 하도록 관리·감독해야 하는 주체가 오히려 공연을 보고 싶은 팬들의 마음을 볼모로 폭리를 취하고 나서서 시장 질서를 교란하겠다고 선언한 꼴이다.
핵심은 하이브의 신뢰하기 어려운 가격 책정 전략과 계속된 소비자 기만이다. 일례로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의 상품을 독점 판매하는 ‘위버스샵’은 10만원짜리 우비, 1만원짜리 양말 등 대체로 높은 가격대의 상품을 팔아 왔다. 가치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높은 가격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위버스샵은 상품불량, 지속적인 배송과 환불처리 지연 등으로 2021년 서울전자상거래 피해다발업체로 이름을 올렸다. 상세 판매 이미지와 다른 물건을 배송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불량품을 환불하는 데에 1년 가까이 걸린 피해 사례도 많았다. 축적된 팬들의 분노가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발화점으로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팬들은 음반 외 하이브 상품의 불매를 선언하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다.
하이브의 독자 팬 플랫폼 ‘위버스’의 프리미엄 서비스 확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위버스는 실시간 라이브·콘서트 중계·굿즈 판매 등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신종 온라인 플랫폼이다. 위버스 없이는 덕질이 어려울 정도로 K팝 팬들에겐 절대적인 창구로 자리 잡았다. 하이브는 SM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인수전을 계기로 독자 플랫폼을 사용하던 SM 아티스트들을 데려와 팬 플랫폼을 위버스로 통일하는 데에는 거의 성공했다. ‘젤리’라는 가상통화까지 최근 출시되며 K팝은 일종의 기축통화를 갖게 된 셈이 됐다.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 합작법인을 세우는 등 블록체인 시장에 발을 뻗어왔기에, 젤리가 어떤 자산 가치를 형성하게 될지 상상해 볼 수 있다. 팬들은 독점적으로 콘텐츠를 유통하고, 경쟁 없이 시장 가격을 정하는 ‘완전히 보이는 손’이 된 독과점 생산자의 탄생에 소비자의 권리가 더 취약해질까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팝은 짝사랑 비즈니스다. 기획사들은 전례 없는 호황 속에 빠르게 덩치를 불리며 각종 신종사업에 진출하고 있으나, 사랑이 끝나면 매출도 끝나는 냉정한 현실로 인해 산업의 근간이 근본적으로 허약하다. 역대 최고 실적을 갱신하고 있다지만, 실상은 팬들의 헌신으로 만든 각종 기록을 권한 없이 가져다 쓰며 기업 가치를 증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방탄소년단이 해체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하이브의 시가총액이 일주일 만에 3조원이나 증발했던 이유다. 소비자로서의 팬들의 권리를 무력화하고 자원을 쥐어짜는 ‘가렴주구’가 계속되면 K팝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자기 꼬리를 먹는 뱀’ 같은 탐욕스러운 경영을 멈춰야 한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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