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 "韓 상폐하고 美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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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뷰차 만난 한 사이버 보안업체 대표가 외국계 IB(투자은행)로 부터 받았다는 제안은, 국내에 만연한 보안업 홀대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이버 보안업에 대한 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후한 미국으로 가면 같은 매출이라도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해외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IB업계의 제안을 그는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해킹 집단을 보유한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과 연일 공방을 벌이고 사이버보안 역량을 키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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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한국에서 홀대 받을 바에야 차라리 상장폐지하고 미국 나스닥으로 갑시다"
최근 인터뷰차 만난 한 사이버 보안업체 대표가 외국계 IB(투자은행)로 부터 받았다는 제안은, 국내에 만연한 보안업 홀대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이버 보안업에 대한 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후한 미국으로 가면 같은 매출이라도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해외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IB업계의 제안을 그는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보안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10년간 어렵게 기술을 개발해 회사를 상장시키며 산전수전 다 겪은 그조차도 한국 보안업의 미래를 어둡게 본다는 의미다.
굳이 그의 설명이 아니라도 대한민국 보안시장은 활력을 잊은지 오래다. 시총 1위 안랩의 기업가치가 6천억원대에 머물 정도로 보안분야에 이렇다할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 하나 없다. 대부분 사이버보안 종목이 수년째 1천억원 대 안팎에 머물러있다. 아무리 미국과 시장 차이가 현격해도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굳이 따지자면 지난 10여년간 경직된 보안인증과 망분리 등 규제의 여파다. 혁신적 보안기술을 개발해도 규격에 맞지않다는 이유로 인증을 받지 못해 사장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레퍼런스 확보가 안되니 매출 확대가 어렵고 해외진출과 투자도 가로막히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생성형 AI발 사이버보안 위협이 폭증하는데 이를 막을 방패인 보안산업은 영세성을 벗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이 보안산업 육성에 최적인 지정학적 여건을 갖췄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해킹 집단을 보유한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과 연일 공방을 벌이고 사이버보안 역량을 키워왔다. 비슷한 여건인 이스라엘의 경우 전세계 사이버보안 유니콘 42곳중 6곳을 보유하며 승승장구한다. 축적한 보안역량이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엇박자가 난다는 의미다.
다행인 것은 윤석열정부 들어 국가 사이버 안전망 구축이 공약되고 정부가 제도개선에 팔을 걷으면서 분위기가 차츰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도입된 신속확인제도와 정보보호 의무공시 제도다. CC인증으로 대표되는 획일화된 평가체제에서 외면받던 신기술 및 융·복합제품이 보다 유연한 기준을 가진 신속확인제를 통해 국가나 공공기관에 진입하는 길이 열렸다. 우량 레퍼런스를 확보해 민간시장 진출과 수출, 투자유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더불어 정보보호 의무공시 제도 강화로 기업들의 보안 투자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도 주효했다. 보안투자에 소홀했다간 낭패를 본다는 인식을 각인시키고 있다. 올초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진 LG유플러스의 경우 경쟁사 보다 미흡한 보안 투자가 투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제도 개선만으로는 보안업계의 활력을 되살리기기 어렵다. 지금처럼 영세한 규모로는 AI 딥테크를 악용한 신종 해킹 공격에 맞설 보안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시급한 게 투자활성화다. AI나 모빌리티, 게임 등 유행을 타는 분야에는 자금이 몰리는 반면, 국내에는 사이버보안 전용 정책펀드 하나 없다. 실제 보안업계 10곳중 7곳은 자금조달이 안돼 기술개발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하다. 그러나 닭(보안투자 여건)이 개선된 만큼, 달걀(기업성장)을 잘 낳을 수 있도록 투자 물꼬를 터주면 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최근 내놓은 '사이버보안 펀드조성' 방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년 300억원 규모의 정책펀드가 조성되면 2030년에 현재 4조원대 사이버보안시장을 2배가 넘는 10조 이상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단 50억원, 100억원이라도 좋으니 보안 전용펀드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보보안 업계의 숙원을 더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조성훈 정보미디어과학부장 searc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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