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랜드마크vs랜드마크] 용산청사와 청와대
5월 10일로 대통령 집무 공간을 삼청동 청와대에서 용산의 청사로 이전한 지 1년이다. 용산청사와 청와대는 건축적인 면에서 살펴볼 때 그 위치에서 오는 의미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풍수지리상 명당 터로 자리 잡은 북악산 능선에 들어섰으며, 한성의 중앙 북측에 자리한 조선시대 왕궁의 의미가 청와대 위치에 반영돼 있다. 북측에 높은 산을 두고 서울의 중앙 북쪽 편에 위치하며 도시를 껴안는 구조다. 자연스레 지형, 위치에서 오는 관습적 위계질서가 느껴진다.
그러나 용산은 사대문을 벗어난 남산의 바깥이다. 한강과 강남을 생각하면 서울 중심이지만, 이보다는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서초동의 법원단지와 더 가깝게 배치됐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위치상 입법, 사법, 행정, 세 권력의 균등 분할에 가까워진 모습이다. 새로운 용산청사가 국회, 법원과 3각 구도를 이루며 한강과 용산공원, 중앙박물관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내고 서울의 도시구조를 새롭게 조정해 나간다면, 우리도 서울을 풍수지리의 과거 전통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인지적 사고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용산청사, 입법·사법·행정 균등 분할
청와대와 용산청사 사이에는 건축공간의 구성적 차이가 있다. 건물의 높이가 2층의 한옥과 10층의 일반적인 빌딩으로 확연히 다르다. 청와대는 한식 기와집 모양을 본떠 권위적인 대궐집처럼 보이지만 콘크리트 구조로, 겉모습만 한옥처럼 보인다. 청와대는 또 2층 구조로 대통령만을 위한 집무실만 있을 뿐 업무를 지원해주는 비서관들은 별동에서 근무했다. 이는 결국 소통의 단절을 가져와 민의와 정책이 분리되는 한 원인이 됐을 것이다. 반면 용산청사는 대통령실에 대한 권위적 구분이 없고 비서관, 기자들과 한 건물을 함께 사용하며 구별의식을 타파하고 있다.
또 10층의 용산청사는 2층의 청와대와는 달리 높은 전망을 갖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보면 청와대는 높은 지형에 위치하면서 서울의 중심부를 내려다보는 땅에 붙은 묵직한 느낌의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고, 용산청사는 비록 높고 멀리 보기는 하지만 허공에 뜬 상태의 전망이므로 가벼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관습적 위계질서 느껴지는 청와대
2층 한옥의 청와대는 층고의 제한이 적어 천장 높이를 높임으로써 청사를 방문하는 상대방을 위축되도록 하는 건축적 수법이 쓰였다. 용산청사는 일상적인 높이를 가진 건물로 공간으로 제압하는, 소위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 청와대는 기자회견을 위해 계단을 내려와 상승하는 계단을 뒤로한 채 기자들과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용산청사에서는 빌딩의 현관을 들어와 엘리베이터 홀 옆에서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만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통령과 기자가 너무 작위 없이 만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줄었다는 뜻을 내포한다.
한편 청와대는 가식적이지만 한옥이라는 한국의 전통성을 구조와 장식에 반영함으로써 대통령이 한국인의 자부심과 문화를 등에 업고 그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반면 용산청사는 일반 건물이기 때문에 국정의 근간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돼야 하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표출해낼지, 그 숙제를 안고 있다.
두 건물이 다른 의미를 발산하지만 조직 구조와 일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대통령실로서 용산청사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나 의사결정의 내용, 과정은 건축물의 위치나 건축적 공간, 형태 구성에 의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총리인 처칠이 얘기했듯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는 명제가 전혀 틀린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 집무공간의 건축적 모습은 대통령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 잠재력이 큰 용산공원에서 미래로 나아갈 새로운 도시 건축공간을 창출할 기회를 갖게 됐다. 대통령이 ‘일하는 방식의 새로운 변화’라는 비전을 심어주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용산청사가 국민에게 자부심을 줄 새 청사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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