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남 탓’ 일삼는 정치리더를 보는 걱정
결코 짧지 않은 임기 남겨둔 尹정부…바닥 지지율로 ‘정권의 시간’ 끝내지 않기를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 1년을 넘어섰다. 지난 9일 집권 2년째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기자는 많이 실망했다. 지난 국정을 되돌아보고,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띄우는 자리가 될 것으로 짐작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성토하는 언급들로 가득 채워졌을 뿐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마치 과거로 돌아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하는 야당 대표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윤 대통령은 전세 사기, 금융투자 사기, 마약범죄 등 최근의 굵직한 사회악들이 모두 전임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 탓이라 직격했다.
윤 대통령은 건물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진 것을 세우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며 문재인 정부가 남긴 비정상을 복원해야 하는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 탓을 돌리는 윤 대통령의 언급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외교, 남북관계, 부동산 문제, 경제 등 거의 모든 국정운영 분야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의 책임을 거듭 거론하곤 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지난 정권을 탓하는 것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희귀한 사례다.
정권을 넘겨받고 자신이 국정운영을 도맡은 시간이 이제 1년을 넘겼으니, 전 정부 탓은 그만했으면 하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지지율이 증거하고 있듯이 국민의 눈 밖에 난 국정운영을 늘 전 정부와 야당에 책임을 돌리는 행태가 반복되다보니 윤대통령의 ‘남 탓’ 정치의 심리적 기저를 곰곰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정도다.
‘상식 심리학’이라는 분석 개념이 있다. 학문적 심리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람들이 나름의 이론과 원칙에 기반하여 사회적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하이더(Heider, 1958)에 의해 처음 언급된 개념이다.
상식심리학 관련 독보적 연구자인 존스와 니스벳(Jones & Nisbett, 1972)은 ‘남 탓’ 현상을 행위자와 관찰자의 서로 상반되는 ‘편향성’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쉽게 말하면 남 탓 하는 행위자는 자신의 잘못된 행태는 ‘상황적 제약 탓’으로,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는 상황적 영향을 전혀 고려치 않고 개인의 자질 부족 등 ‘사람 탓’을 한다는 얘기다.
어떻든 세계사를 되돌아보건대, ‘남 탓’을 정략으로 삼는 정치리더는 때로 위험한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히틀러는 독일의 불운을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며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다. 관동 지진으로 도시가 불타는 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일본 정부는 격앙된 민심을 비켜가기 위해 조선인이 발화자라는 마타도어를 흘려 수 천 명의 애꿎은 조선인들이 다치고 죽는 학살극이 펼쳐졌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도청행위에 대해 닉슨과 범행 참여자들은 국가 안보를 핑계 삼아 비난 여론을 비켜가려 했지만, 언론은 사건의 본질인 닉슨의 권력욕을 추척해 사퇴를 이끌어냈다. 우리가 겪어온 군부 독재의 리더들 또한 분단이라는 안보위기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내부의 부패를 감췄지만, 그것이 사실은 자신들이 독과점한 권력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음을 현대사는 증거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치 리더가 자신의 실정에 따른 국민들의 비판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턱없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전쟁을 벌이거나 정치적 희생양을 제물로 삼는 정략은 문명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돼왔던 게 사실이다.
출제자가 문제를 잘못 내 성적이 떨어졌다고 남 탓 하는 수험생은 다음 시험에도 좋은 점수를 거둘 수가 없다. 윤석열 정권은 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전 정부가 남긴 내키지 않는 유산 탓만을 하다가 바닥을 기는 지지율 속에서 정권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퇴임의 순간을 곰곰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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