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윤석열정부 1년 명암
영업사원 자처에도 경제위기 고조
거친 언사 中 반발, 화 키울 우려
‘창의적 실용외교’로 돌파구 찾길
약 1000년 전 동아시아는 혼돈의 시기를 맞이했다. 북송과 거란, 고려와 거란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패권국인 거란이 고려를 침입하자 사신으로 파견된 서희는 거란의 주적인 북송과 서하(西夏) 탓에 장기전을 바라지 않는 속내를 읽어냈다. 북송과의 단교를 약속, 싸우지 않고도 국제무역지대인 강동 6주까지 차지했고 주변국과 무역·교류를 이어갔다. 고려는 이런 창의적 실용외교를 밑거름 삼아 훗날 거란을 격퇴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무역적자는 우리 경제의 민낯을 드러낸다. 무역수지는 14개월째 적자를 이어가며 그 적자액이 636억달러에 달한다. 외환시장도 요동친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3개월 사이 100원가량 올라 달러당 1320∼1340원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탓에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1.75%포인트로 벌어져 자본유출과 환율급등 흐름은 한동안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경제위기의 근저에는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한·중수교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경제는 중국 주도 공급망에 편승해 성장세를 이어왔는데 수년전부터 상황이 확 달라졌다.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반도체를 빼곤 한국과 대등하거나 추월한 상태이고 양국 수출은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전환됐다. 반도체 불황까지 겹쳐 대중 수출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적자국으로 돌변했다. 올 1∼4월 대중 무역적자액은 101억1000만달러로 전체 적자의 40%를 차지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과거처럼 한국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많은 흑자를 보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했다. 중국은 아직 한국의 최대교역국이자 수출의 20%를 차지한다.
윤 대통령의 세일즈외교 성과도 신통치 않다. 미 반도체과학법에서 보조금 지급 때 적시한 기술정보 공유와 초과이익 공유 등 독소조항이 여전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논란을 빚은 국산 전기차 차별도 달라진 게 없다. 오는 10월로 끝나는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조치도 추가 연장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일 정상은 반도체 공급망 공조에 합의하고 서로 수출규제도 풀었다. 이런 정도로 저성장 쇼크와 무역적자가 해소될 리 만무하다.
과도한 친미·친일 행보가 중국의 반발을 불러 화를 키울 수 있다. 중국 당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에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가지 말라”,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험악한 말을 쏟아낸다. 5년 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처럼 고강도 경제보복이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쪽 풀도 뜯고, 저쪽 풀도 뜯어먹어야 한다”고 했다. 신냉전이 격화하면서 두 개의 목장에서 풀 뜯는 시기는 지나간 듯하다. 한쪽에 비중을 두더라도 누구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게 현명하다. 지도자가 거친 말로 요란을 떠는 건 하책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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