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민들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 돼…이번 선거는 민주화운동 성적표 받는 시간”
군부에 반기, 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1호
“우리 대에서 끝내자.”
3년 전 ‘세 손가락’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태국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은 이번 총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번 총선의 의미와 지난 3년이 남긴 성과 및 과제 등을 듣기 위해 쭐라롱껀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활동가 네띠윗 촛띠팟파이산(27·사진)을 지난달 25일 오후 줌으로 인터뷰했다. 네띠윗은 2020년 홍콩·대만·태국 민주화운동의 연대체인 ‘밀크티 동맹’을 제안한 이다. 그는 민주화 시위 이후 지난 3년 동안 태국이 정치 문제가 한층 더 활발하게 논의되는 사회로는 나아갔지만, 막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데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태국 국민들은 민주주의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네띠윗은 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18세가 되던 해 태국의 ‘1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됐다. 지난해 7월 불교에 귀의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최근 승복을 벗었다. 군부 쿠데타가 반복되는 태국에서 징병제가 결국 군부의 집권 기제로 작동한다는 문제의식이 병역거부로 이어졌다. 이 지점에서 그의 선택은 ‘병역회피’가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가 되며, 민주화운동과도 교차한다. 다음은 네띠윗과의 일문일답이다.
■ “시위로 정치의 일상화 이뤄내”
- 젊은 세대의 민주화 시위와 왕실 개혁 요구안 발표 이후 3년이 지났다. 그사이 어떤 성과가 있었나.
“정치의 일상화, 즉 태국 사람들이 정치를 자기 삶 속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겁이 나서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던 왕실의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것이 첫 번째 성과다. 두 번째로는 페미니즘, 동성결혼 같은 것들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는 젊은 세대의 용기가 기성세대를 끊임없이 설득한 결과이다. 이젠 드라마에서도 정치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이 모든 논의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그 탓에 다들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2020년 이후 한동안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 나라에선 살 수 없다’며 태국을 떠나려는 경향이 있었다. 정치권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 그렇다. 태국은 비정부기구(NGO)가 약하고 정치적 단체들이 정당만큼의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대한 피로감이 빨리 온다. 정치가 일상화됐다면 이젠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민주화를 이어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 거리 시위 같은 거대한 움직임을 제도적 성과로 이어갈 방법을 어느 사회나 고민한다.
“정당과 정치인에게 너무 의지하다 보니까 금방 좌절하고, 결국 그들이 이뤄주지 못한 민주주의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르는 것이 지금까지 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이 가진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군부독재가 그러한 좌절감을 소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군부는 정치인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강조하면서 ‘선한 사람’, 즉 군부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선한 지도자’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치인은 끽해봤자 (수명이) 10년 정도다. 시민단체가 생겨나면 정치인에게 집중됐던 희망이 분산되고 장기적으로 밑바닥에서부터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갈 수 있다.”
■ “태국, 변화 받아들일 준비 돼”
- 곧 2020년 시위 이후 첫 총선을 치른다.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 선거는 이제까지 젊은 세대가 주도해온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정치에 반영됐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대다. 지금까지의 민주화운동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확실한 성적표를 받아볼 시간이 됐다. 군부는 탁신계 프아타이당과 전진당(MFP) 등 진보세력을 없애려 하지만, 현재 선거 국면은 이들이 압도적으로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군부의 목표는 실패하리라 본다. 다만 총선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프아타이당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정당이 해산되거나, 쿠데타가 다시 일어나거나, 구세력이 규합해 정권을 탈취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군부세력이 아직 죽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화 요구가 완전히 성공하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 선거를 앞둔 태국의 분위기는 어떤가.
“태국 국민들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다 돼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한 변화를 막는 정치인 혹은 왕실이 방해해 태국 국민들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 국민들은 준비가 돼 있다.”
- 그 변화는 민주주의를 의미하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단순히 제도로서 존재하는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실현되는 민주주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환경·젠더·정의·인권·자유 등 다양성을 포함하는 민주주의를 뜻한다. 군부가 기존에 이야기한 민주주의는 이미 지겹다. 쿠데타도 결국 제도로서의 민주주의하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그런 것들이 아닌, 지금 우리가 당면한 수많은 이슈를 끌어안을 수 있는 민주주의를 바란다.”
■ “태국 징병제는 민주주의 저해”
- 병역 신체검사에 응해야 하는 최종 기한이 지난 4월9일이었다고 했다. 4월22일 승복을 벗은 이유는 무엇인가.
“승려로 계속 있으면 군 소집을 30세까지도 유예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승려가 돼서 평화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 징병을 기피하려 승려가 된 게 아니다. 그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승복을 벗었다.”
- 징병제가 태국의 정치·사회 문제를 대표한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이뤄진 국가와 군부독재 국가에서의 징병제는 다르다. 태국의 징병제는 군부가 권력과 군사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해온 제도다. 우리가 왜 권력을 쥐고 유지하려는 이들을 위해 부역해야 하는가. 징병제는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 향후 징병제가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군부는 목표 병력이 10만명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10만 병력이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안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징병제가 반드시 유일한 답은 아니라는 뜻이다. 군인들의 열악한 월급 수준, 군대 내 폭력과 인권탄압 같은 것들이 개혁된다면 진짜 군인이 되고 싶은 이들이 지원하게 되고 군에 대한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태국은 아직 양심적 병역거부 선례가 없어 내가 유일하다. 한국의 사례를 보고 배우고 싶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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