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부 대 반군부…‘민주화 열망’ 세 손가락, 승리의 V 그릴까
탁신 전 총리의 딸이 이끄는 프아타이당과 더 진보적인 전진당이 반군부 진영 형성
정당 지지율은 두 당이 ‘쿠데타 집권’ 쁘라윳 현 총리가 속한 집권당보다 크게 앞서
유권자 5200만명 중 42세 미만이 42%…젊은 세대 표심이 향방 가를 것으로 전망
2020년 태국 청년들은 민주화와 군부 통치 종료, 개헌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세 가지를 내걸었다 해서 ‘세 손가락’이 시위의 상징이었다. 당국의 강경진압으로 학생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저항의 물결은 흩어졌지만 당시 시위는 태국의 최근 정치 역사상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로 기록됐다.
그때 그 힘은 태국 사회에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 이달 14일로 예정된 태국 총선은 2014년 쿠데타 이후 두 번째, 2020년 대규모 시위 이후 첫 번째 총선이다. 태국은 의원내각제를 따르기 때문에 결국 누가 총리가 되느냐, 어느 당에서 총리를 배출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오래도록 억눌린 태국 젊은 세대의 정치적 요구가 어떻게 분출될지가 이번 총선의 관전 포인트다.
■ 반군부 진영 ‘압승’하더라도 총리 배출 셈법 ‘복잡’
이번 총선은 ‘군부 대 반군부’ 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7)이 이끄는 프아타이당과 이보다 좀 더 진보적 색채를 띠는 전진당(MFP·까우끌라이당)이 반군부 진영을 형성한다. 패통탄 후보와 전진당의 피타 림짜른랏 대표(43)는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선호도 1·2위를 다투고 있다. 정당별로 봐도 프아타이당과 전진당이 각각 30%대 중후반의 지지율을 보이며 앞서 나간다.
반면 201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69)가 속한 루엄타이쌍찻당(RTSC)과 역시 쿠데타에 가담한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77)가 소속된 팔랑쁘라차랏당(PPRP)은 10%대 지지율로 뒤처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지율을 감안하더라도 반군부 진영이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한 정당이 상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하원에서 단독으로 총리를 배출할 수 있는 ‘매직 넘버’는 376석이다. 총리가 되기 위해선 상원 250석과 하원 500석을 합친 전체 750석에서 절반 이상(376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상원은 2019년 군부가 지명한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반군부 진영은 이번 총선에서 선전한다 하더라도 친군부 성향인 상원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하원에서 ‘압승’을 거두는 것만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프아타이당이나 전진당이 단독으로 하원 376석을 가져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 구성 측면에서 봐도, 한 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꾸리기 위해선 하원에서 최소 251석이 필요하다. 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다른 당과 연합해야 한다. 계속해서 군부 계열과의 연정 가능성이 언급되는 건 이 때문이다.
프아타이당은 최근 ‘310석 대승’을 목표로 내걸었다. 310석 이상을 획득하지 못하면, 다른 당과 연정을 했을 때 프아타이당이 총리 배출 우선권을 가지리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에게 ‘전략 투표’를 하라고 승부수를 던졌다. 현재 지지율상 상원 250석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당, 즉 프아타이당에 투표하라는 메시지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이 같은 선거 전략은 전진당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두 당은 ‘청년층·진보세력’이라는 동일한 유권자 집단을 일부 공유한다. 프아타이당이 ‘전략 투표’를 호소하는 대상은 결과적으로 전진당의 지지자가 될 개연성이 크다. 여론조사에서 프아타이당을 점차 따라잡고 있는 전진당으로선 이러한 캠페인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전진당은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으로서 군부 및 왕실에 가장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다.
이처럼 반군부 계열끼리 ‘제 살 깎아 먹기’를 하면 결국 군부정당만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양당은 쁘라윳 총리의 재집권을 막겠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총선 후 군부와 연정을 이룰 가능성에 대해선 전진당은 강경한 반대 노선을 취하는 반면, 프아타이당은 좀 더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 학생 시위 이후 첫 선거… 정치적 세대교체 앞뒀다
총선 결과의 향방은 젊은 세대가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당시 태국 젊은 세대는 민주주의로의 개헌과 더불어 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왕실 존폐 논의까지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 당국의 체포와 억압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이들의 정치적 요구는 흐지부지됐지만, 3년을 돌아 총선이라는 무대를 만나게 됐다. 당시 거리 시위에 나섰던 이들 중 상당수가 이번에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유권자 약 5200만명 중 42세 미만이 42% 정도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Z세대(18~26세)가 약 13%, Y세대(27~42세)가 약 29%다. 현재까지 이들의 표심은 주로 프아타이당과 전진당을 향하고 있다.
전진당은 이번 총선을 “세대적 선택”이라 규정하며 청년층 적극 공략에 나섰다. 스트레이트타임스(ST)에 따르면, 전진당 소속 의원의 평균연령은 44세로 다른 당(57세 이상)보다 젊다. 전진당은 청년세대가 호응하는 이슈인 동성결혼 합법화, 징병제 폐지, 군대의 정치 참여 금지, 왕실모독죄 폐지, 최저임금 인상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번 총선은 50~60대 남성이 주류였던 태국 정치 판도에 세대교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ST는 젊은 표심을 잡기 위해 PPRP를 비롯한 전통적 보수당에서조차 40대 이하 정치인들이 선거 전략 전면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최근 신선한 얼굴들이 나타나게 된 건 전진당이 정치 지형에 들어온 것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며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젊은 정치인이 점점 더 증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ST에 밝혔다.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사회활동가 출신의 한 30대 후보는 “(과거) 우리가 할 수 있던 최선은 실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뿐이었다. 시위만으론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적으로 권력을 얻어 변화를 만들려면 국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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