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생태계 보호 ‘역사적인 진화’
이번 사례 계기로 ‘빈국 자연-부채 교환’ 활성화 기대
“이 거래는 역사적 이정표다.”
중남미의 에콰도르 정부가 갈라파고스 군도의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역사적인 ‘자연-부채 교환’ 거래가 성사됐다고 9일(현지시간)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의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 4일 에콰도르 정부가 발행한 액면가 16억달러(약 2조1000억원) 규모의 국채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에콰도르 정부가 갈라파고스 해양 생태계 보호에 20년 동안 매년 1800만달러를 지출하는 조건으로, 매입한 국채를 6억5000만달러(약 8600억원)의 ‘갈라파고스 채권’으로 전환해주기로 했다. 미주개발은행(IDB)과 미국 국제개발금융협동조합도 채권 일부를 인수해 재정적 보증을 서기로 했다.
2020년 국가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을 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악화한 에콰도르는 이번 거래로 약 11억달러의 부채를 탕감받고 갈라파고스 생태계 보호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게 됐다. 구스타보 미란다 에콰도르 외교장관은 “자연의 가치를 고려한 역사적인 합의”라고 말했다. 호세 다발로스 에콰도르 환경장관도 “갈라파고스 해양 생태계 보호는 푸른 행성에 거주하는 모두의 활동이 됐다”고 말했다.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1000㎞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19개의 섬과 다수의 암초로 구성돼 있다. 코끼리거북, 바다이구아나 등 고유 생물들이 서식해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준 섬으로 알려졌다.
에콰도르와 크레디트스위스의 ‘자연-부채 교환’은 자연 유산 보전 차원의 국채 거래로는 금융권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개도국과 빈곤국의 대외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으로 자연 보호 기금을 제공하는 ‘자연-부채 교환’에 대한 아이디어는 1980년대부터 있었다. 바베이도스, 벨리즈 등 카리브해 국가 지원에 활용됐다. NYT는 이번 에콰도르 국채 거래를 계기로 자연-부채 교환이 더욱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거래는 에콰도르 정부와 크레디트스위스 모두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최근 대량현금인출 위기를 겪으며 경쟁사인 UBS에 인수됐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당초 갈라파고스 채권의 규모를 8억달러로 잡았지만, 횡령 등 부패 의혹을 받는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해 6억5000만달러 규모로 축소됐다. 에콰도르 의회는 9일 대통령 탄핵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이번 거래가 성사된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는 최근 금융계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앨리스 휴 홍콩대 교수는 “부채가 많거나 채무불이행 위험이 있는 국가는 환경보호를 우선시하기 어렵고, 낮은 신용 등급으로 인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며 부채탕감과 자연보호를 위한 기금 및 의무를 맞교환하는 이번 거래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NYT에 말했다.
다만 패트릭 비거 UC버클리대 연구원은 “가난한 나라는 기후변화 기여도가 낮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가장 크게 받는다”면서 “갈라파고스 채권으로 탕감된 부채 규모는 에콰도르가 지고 있는 전체 부채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에콰도르 정부가 진 전체 국가 부채는 지난해 기준 약 666억8000만달러에 달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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