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집회 끊이지 않았는데 이젠 ‘텅텅’…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격세지감’
경비 목적 행인 통제 사라져
주민 “이젠 편하게 다닌다”
담벼락선 영화 촬영 광경도
대통령 집무실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겨간 지 1년이 지나는 동안 청와대 인근 지역의 풍경도 달라졌다. 경향신문은 청와대 인근 주택가와 상점이 있는 종로구 삼청동·통의동·팔판동·효자동을 둘러봤다. 소규모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는 텅 비었고, 청와대 직원을 ‘단골손님’으로 받던 일부 한정식집은 손님이 줄어 한숨을 쉬었다. 청와대 전용 주차장은 유료 주차장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지난 8일 오전 9시45분,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광장에는 경비 경찰 1명과 종로구 도시녹지과 직원 1명만 있었다. 분수대 뒤편, 청와대 경비 인력이 서 있던 파란색 부스는 비어 있었다. 청와대로에는 청와대 관람 셔틀버스가, 영빈문 앞 인도에는 파란색 깃발을 든 관광가이드와 관광객이 지나갔다.
과거 사랑채 분수대 광장은 시민들이 별도의 통행 허가와 검문을 받지 않고 대통령 집무실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할 말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였다. 사랑채(옛 효자동 사랑방)는 1993년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으로 개소해 현재에 이른다. 2002년 서울지방법원이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이후 이곳에서 집회·농성·기자회견이 활발하게 열렸다. 광화문 광장에서 사랑채 분수대 앞까지 이어지는 길은 집회 참가자들이 빈번히 오가는 행진 코스였다.
그러나 지난해 5월11일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긴 이후 집회 장소도 국방부 청사 앞으로 바뀌었다. 사랑채 분수대 앞을 지키던 1인 시위 참가자들도 삼각지역으로 옮겨갔다.
청와대 사랑채에서 9년째 청소노동자로 일해온 A씨는 “(예전에는) 시위하는 사람들이 분수대 앞에 진을 쳤다”고 회상했다. A씨는 “시위하던 사람이 사랑채 화장실에 들어와 머리 감고, 빨래하고….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며 “최근에는 주말에나 사랑채 방문객이 붐비고 평일엔 조용하다”고 했다.
청와대 직원들이 많이 찾던 식당가는 손님이 줄었다. 이날 오전 11시10분 찾아간 통의동의 한 한정식집은 텅 비어 있었다. 식당 주인 B씨는 이곳이 청와대 경비, 경호 업무를 맡는 이들이나 청와대 관계자들이 찾는 ‘회식 전용’ 식당이었다고 했다. B씨는 “가격대가 좀 있는 곳에는 뜨내기 손님이 없다.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회식 예약이 절반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춘추문에서 약 150m 떨어진 팔판동 추어탕집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종업원 C씨는 이날 오후 2시40분까지 11그릇을 팔았다고 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점심 시간에 50~60그릇씩 팔리던 곳이었다. 식당 인근 팔판로에는 한복 입은 관광객이 여럿 다녔지만, 골목 후미진 곳에 있는 식당을 찾지는 않았다.
청와대 주변 주택가 풍경도 달라졌다. 춘추관 뒤편 단독주택에 사는 박모씨(67)의 달라진 일상이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서 31년간 살아온 박씨는 집 앞 골목을 지키는 경호 인력 때문에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고 했다. 집을 나서고 들어갈 때마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받거나, ‘어디 가시냐’고 묻는 경호 인력에게 ‘집이 여기다’라고 말해야 했던 경험 때문이다. 박씨는 “오래전 정부 때는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녔더니 경호원이 호루라기를 불고 ‘옷 바로 입고 다니라’고 한 적도 있다”며 “지금은 운동화 신고 편하게 다닌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쯤 청와대 인근에서는 영화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청와대 담벼락 쪽을 향해 카메라가 움직였다. 보안이 삼엄했던 ‘청와대 집무실 시대’ 때에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사전 협의 없는 시설 촬영은 경호원의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 팔판동 소재 청와대 직원·출입기자 전용 주차장 세 곳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통령실에서 부지를 넘겨받은 종로구시설관리공단은 지난달 20일 공사에 착수해 이달 중순부터 차량 58대를 수용할 수 있는 유료 공영주차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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