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닦으며 ‘접선’… 담배 피워 물면 ‘장소 이탈’ 신호
공작원 만날 때 행동 방식 상세히 지령
미행 포착하면 “두통 오니 병원 가겠다”
예비 장소로 이동하도록 치밀하게 준비
구속된 前 간부들, 해외서 공작원 접촉
北 문화교류국 지시 따라 ‘지사’ 만들어
공안 당국, 지하조직 구성원 추가 수사
북한의 지령에 따라 노조에서 활동해온 혐의를 받는 전직 민주노총 간부들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뒤 포섭된 것으로 전해졌다.
檢,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박광현 수원지검 인권보호관(왼쪽)이 1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수원=뉴시스 |
A씨는 북한 지시에 따라 민노총 위원장 선거에 개입하고 미군기지 사진을 수집한 것 외에 제21대 국회의원들의 개인 신상정보까지 넘겼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검찰, 통일부 등에 출입할 수 있는 인물들과 인맥 형성에 나서기도 했다. 지령 5단계 절차인 ‘친교 관계 형성→사회 부조리에 대한 불만 촉발→사회주의 교양→비밀조직 참여 제안→적극적 투쟁 임무 부여’ 등이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
A씨와 강원지역 조직결성에 나선 B씨를 두고 북측은 각각 ‘지사장’, ‘강원지사장’으로 불렀다. 산하에는 4개 팀씩을 두고 있었다.
구속된 이들은 모두 캄보디아·베트남·중국 등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났고 대남공작기구인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도를 받았다. ‘민심의 분노를 활용해 기자회견 발표, 촛불시위 등으로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키라’는 등의 지령을 받고 반미·반일·반보수를 앞세운 정치투쟁을 벌였다는 설명이다.
이들이 북한 공작원을 만날 때 나눈 신호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고 검찰은 강조했다. 기소장에 따르면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열고 마시는 동작’,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손수건으로 2∼3차례 닦는 동작’ 등 사전에 약속한 신호를 주고받았다.
민노총 홈페이지와 유튜브 동영상 댓글도 대북 연락 수단으로 활용됐다. 수사당국은 ‘실개천’이란 특정 단어가 포함된 홈페이지 게시글과 ‘오르막길’ 등 단어가 게시된 유튜브 댓글을 포착했다.
이 밖에 북측은 A씨 등에게 민노총을 내세워 주요 사회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물리적·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투쟁을 전개하라고도 주문했다. 2019년 2월에는 당시 야당 인사의 5·18 망언을 계기로 농성 투쟁 등을 주문했다. 같은 해 4월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대비해 계란 투척, 화형식, 성조기 찢기 등의 방법을 연구해 실천하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지령문에선 이태원 참사 이후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로 분출시키라’고 했고, 같은 해 12월 화물연대 파업 때는 ‘총파업 실패로 인한 부정적 결과들을 최대한 빨리 해소하라’고 요구했다.
A씨 등이 주고받은 통신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초월적 존재라는 뜻에서 ‘총회장님’으로 불렸다.
‘우리는 지사장(A씨)이 ‘총회장님’(김정은)을 받들어 통일변혁운동의 한길을 변함없이 끝까지 걸어가리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다’(2022년 12월17일자 지령문), ‘영업1부(민주노총) 인사권을 가진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지사장의 추천이면 모두 받아들여 인사에 반영하고 있음’(2020년 6월14일자 A씨 보고문) 등이다.
검찰과 국정원 등 공안 당국은 이번 수사로 적발한 지하조직의 조직원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를 하기로 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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