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가 왔는데, 김채은이 타고 있었다 [MD칼럼]

2023. 5. 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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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록의 나침반]

그러다 무심코 합승하고 말았다.

시청자들이 SBS '모범택시2'를 부른 건 결코 김채은을 만나기 위해선 아니었을 것이다. 우린 그저 무지개운수를 찾아가 악을 향한 복수와 응징을 보려고 했을 뿐인데, 모범택시의 문을 열자 당황스럽게도 그곳에 김채은이 앉아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올 것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김채은은 윈디의 얼굴로 가소롭다는듯 세상을 비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철저하게 계급사회야."


'모범택시2' 블랙썬 에피소드의 신스틸러 윈디가 김채은이었다.

'블랙썬 MD' 윈디로 분해 등장하자마자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장면을 압도했다. 도발적인 말투, 뻔뻔하고 가증스럽게 내뱉는 악행의 목소리 탓에 블랙썬 에피소드 내내 '저 MD는 누구야?', '어디서 봤는데?'란 시청자들의 반응이 잇따랐다. 정작 김채은은 "실제로는 MD를 본 적이 없어서 유튜브를 찾아보며 공부했다"고 고백하며 웃었다.

"이렇게 짙은 메이크업은 처음 해봤어요. 평소에는 꾸밀 줄도 잘 몰라서 항상 모자 푹 쓰고 다니거든요. 아버지도 드라마 보시다가 '오늘 너인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강한 의상이나 헤어 메이크업을 처음 하니까 아빠도 몰라보셨어요."


김채은이 들려준 일상은 윈디와는 달랐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고, 겨우 외출해도 하는 게 동네 산책이었다. 집에서 빵 굽는 게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2015년 MBC '아름다운 당신'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껏 해온 역할들을 훑어봐도 그랬다. KBS 2TV '내 남자의 비밀', '최고의 이혼', tvN '진심이 닿다' 등 블랙썬 MD 윈디와는 온도부터 달랐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윈디와는 눈빛과 표정, 말투, 목소리까지 모든 게 차이 컸다.

"직설적인 윈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막상 연기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목소리도 평소보다 톤을 많이 높였고요.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었는데도, 많은 관심 주시니까 다행이다 싶었어요. 앞으로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해드릴 수 있는 힘도 생겼어요."


다만, 김채은의 내면에는 악녀가 있었다. 그 악녀가 드러난 게 MBC '내일'이었다. 극 중 김채은은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그런 추악한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는 가증스러운 웹툰작가로 분해, 악랄한 눈빛과 표정, 말투, 목소리까지 카메라 앞에서 퍼부었다. '내일'의 악녀가 '모범택시2'로 이어진 것이다.

"새 캐릭터를 만나면 어렵게도 느껴지지만 그게 배우란 직업이잖아요. 너무 즐거워요."

그것이 악이든, 선이든 김채은의 연기에는 핵심이 분명히 존재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들려준 그 말.

고등학생 때 방송부 아나운서를 했던 기억부터, 대구의 연기학원에 등록한 뒤 엉겁결에 경주 화랑원화 선발대회에 나가 무대에 처음 섰던 순간. 학원에서 춤과 노래보다 독백 연기에 빠져들게 되고, 대학 수시 면접에서 "제 특기는 연기인데요?"라고 면접관들에게 당돌하게 말한 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연기를 한 용기. 그리고 훗날 진짜 배우가 되어 걸어가다 지금의 '모범택시2'를 찍으러 가던 그날들까지. 김채은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반복하며 했던 그 말.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김채은은 동네를 걸으며 대사를 외웠고, 오디션의 기회도 얻지 못할 때에는 빵을 구웠다. 정성을 다해 만들어, 시간을 들여 기다리면 그만큼 정직하게 구워지는 빵을 보며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우리가 모범택시의 문을 열고 김채은을 마주하기 이전부터, 그의 일상과 삶은 온통 연기에 탑승한 채였다. 단지 우리가 이제야 김채은을 만난 것뿐이며, 김채은은 우리가 발견하길 기다리며 줄곧 정직하게 연기하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우리가 보았던 기억 속의 그 배우, 이제야 발견한 이름 '김채은'이다.

"캘 채, 은혜 은이요. '은혜를 캐다'라는 뜻으로 부모님께서 지어주셨어요.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드는 이름이에요. 배우가 '은혜를 캐는' 직업인 것 같거든요. '캐다'란 단어가 발굴하기도 하고, 발견하기도 하는 뜻이잖아요. 배우를 하면서 저도 몰랐던 저를 찾기도 해요. 그래서 은혜를 캐라는 뜻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이해를 잘 못했는데, 성인이 되면서 이렇게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에요."

걷는다. 김채은이 집에서 나와 길을 걸으며 대사를 외운다. 어제와 다른 길로, 하지만 두려움 없이 즐거워하며,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요즘 참 행복해요. '모범택시2'를 찍을 때, 제가 재미있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번에 많은 힘을 받은 덕분에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이 떨리지만, 재미있어요. 마치 새로운 길을 가는 것처럼요."

[사진 = 리드엔터테인먼트, SBS '모범택시2' 제공]-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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