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번 외친 ‘숨은 노동’의 목소리…“다 함께 잘 살고 싶어요”

한겨레 2023. 5. 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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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6411의 목소리’ 연재 1년
‘6411의 목소리’ 연재 1년

하명희 | 소설가·<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일과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숨은 노동’의 구체적인 현실 알려 나가기.’

노회찬재단과 <한겨레>는 지난해 5월부터 매주 한차례씩 52회에 걸쳐 ‘6411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달해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래로부터, 노동현장으로부터, 새벽 첫차를 타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길 기대했다.

그동안 ‘6411의 목소리’ 발언대에는 플랫폼 노동자(콜센터 상담사, 배달라이더, 대리기사, 물류센터·택배 상하차 직원), 프리랜서(방송작가, 뮤지션, 배우, 웹툰 작가, 번역가), 해고와 불법에 맞서 투쟁하거나(주얼리회사, 세종호텔, 한국와이퍼, 아사히글라스, 롯데면세점, 골프장 노동자들) 교육 현장(주차, 청소, 한국어학당 강의, 급식조리, 도서관, 생활협동조합, 공모제 교장) 노동자, 장애인 노동(휠체어 사용자, 장애인 재택근무자, 발달장애인 직업 연결, 정신장애 동료상담가), 돌봄 노동자(가족 돌봄, 사회복지사), 청년 노동(택배기사,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대학생 현장실습생, 게임 엔지니어, 건설), 자영업자(타투이스트, 헤어디자이너, 봉제업·국외여행사·동네서점 운영). 그리고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다른 삶을 꿈꾸는 재일교포,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성매매 당사자, 탈북민, 농업미생물학자, 도축검사원, 귀촌 청년과 어부, 지역활동가 등이 섰다. 자신의 목소리를 글로 담아내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과 50년 동안 씨앗을 보존해온 농부, 폐지수집 노인은 지역활동가와 편집자문위원이 결합해 구술을 받았다.

52회에 걸쳐 당사자가 들려준 현실의 문제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 소외와 빈곤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10년 가까이 길 위에서 싸우는 해고 노동자들과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받는 사람들, 11년 만에 용기내어 지하철 타고 미술관을 찾은 휠체어 사용자와 장애를 가진 자녀들이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받고 일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자청한 엄마, 부당한 사회적 낙인에 맞서 다른 삶과 가치관을 실현하는 사람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숱한 약한 고리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당사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데도 왜 이들에게 발언 기회가 적은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경희대에서는 ‘6411의 목소리’ 연재 필자들을 초청해 청년시민을 위한 학습의 장을 제공하는 후마니타스 특별강좌(총 16회)를 진행하고 있다.

‘6411의 목소리’ 연재 한돌을 맞아 소외된 노동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좀더 귀 기울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에 참여한 필자들의 근황을 들어봤다. 글이 나간 뒤 크게 변화한 현실은 없었지만, 자신과 주변을 환기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

지난 3월17일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의 농촌 일손돕기 봉사활동 모습. 부티탄화 제공

마음 상처도 받았지만…목소리 더 내야죠

결혼이주여성들의 상황이나 처우가 개선되는 것을 바라는데, 별로 변한 게 없어요. 글이 나가면 욕하는 사람도, 응원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안 좋은 댓글이 많이 달려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냥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기도 했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결혼이주민 단체를 꾸리고 키우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와서 포기할 수는 없어요.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으니 목소리를 내는 걸 멈추지 않겠어요. 아직도 변화된 것은 없지만, 더해야 해요.

지난 4월17일부터 초등학교 시간제 다문화이해 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 다문화센터에서 일했고,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도 있고, 대학에서 다문화한국어학과를 다니면서 다문화이해 전문강사 2급 자격증을 땄기에 할 수 있게 된 일이에요.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으로 결혼이주여성들, 노동이주민들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월급이 나오는 일은 아니어서 다문화이해 교사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어요.

가끔 대학교나 여성단체에 특강도 나가요. 이번에 경희대 후마니타스 특강에서도 불러줬어요. 특강을 하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아요.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저는 잘살고 싶어요! 부티탄화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부티탄화들과 다 같이 잘 살고 싶어요!”

부티탄화(충북 옥천군 결혼이주 노동자)

지난 1일 부산 거제역 ‘2023 노동절 전국노동자대회’ 모습. 박정옥 제공

직접고용돼 돌아온 일터…너무 행복해요

너무 힘들게 114일 동안 투쟁했는데, 직접 고용돼 직장으로 돌아오게 돼 기쁩니다. 특히 학교 앞마당 낙엽을 더는 쓸지 않아도 된 게 너무 좋습니다. 전에는 다리 아픈 아줌마들이 아침저녁으로 학교 전체를 다 쓸어야 했거든요. 학교로 복귀한 뒤 인원이 줄긴 했지만, 학교에서도 저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 좋아요. 직원복지를 모르고 살았는데 직접고용된 뒤론 경조사부터 챙겨주고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험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그전에는 다치면 본인 돈으로 ‘대타’를 써야 했었거든요. 이젠 소소한 학교생활들이 너무 행복합니다.

아직 미진한 것들, 그러니까 교통비나 식대, 상여금 인상 등은 단체협약을 통해 이뤄나가야 할 것이고요. 학교는 학생수 감소 등 여러 이유를 들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교섭이나 협상의 자리가 보장됐기에 어떻게든 해보려고 합니다. 정년보장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너무 크고요, 투쟁하는 동안 ‘다른 데 알아보면 되지 뭐하러 그러느냐’던 가족들의 시선도 바뀌었어요.

아직 청소노동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더 외치고 싶어요. “나는 당당하다! 열심히 싸워야 한다! 노동자는 하나다!” 싸우고 계신 모든 분께 힘이 되고 싶고, 그동안 저희에게 주신 사랑을 연대로 보답하고 싶어요.

박정옥(부산 신라대 청소노동자)

지난 3월24일 세종호텔앞 농성장 철거규탄 기자회견 모습. 허지희 제공

꿋꿋이 버티고 있어요…복직 포기 못해!

정리해고된 뒤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난해 실망감이 컸는데, 올해 2월부터 정리해고 절차가 부당하다며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1심 결과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 모르겠어요.

상황은 열악하지만 여전히 매주 목요일 세종호텔 앞에서 집회하고 있어요. 서울 중구청이 지난달 인도에 설치된 농성 천막을 행정대집행해서 철거했어요. 불법 적치물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석에 겹쳐 있다길래, 천막 크기도 줄이고 안내선 안쪽으로 들였거든요. 그런데 사흘 만에 계고장도 붙이지 않고 또 강제철거를 강행했어요. 이 날은 재판이 있는 날이었는데 철거에 대응하느라 조합원들이 재판에 가질 못했어요. 재판 당일에 조합원들이 못 움직이게 한 이 일이 우연인지 의문입니다.

세종호텔이 4성급 호텔인데 새롭게 등급심사를 받아야 하는 때가 됐어요. 4성급을 유지하려면 기존처럼 커피숍이나 뷔페와 같은 식음료 업장이 두개는 있어야 하고, 숙박 손님에게 조식을 제공하고 룸서비스도 해야 해요. 회사는 식음료 업장을 폐지한다며 저희를 없앴는데, 4성급을 유지하기 위해 임대업체를 들여 식음료 업장을 연다고 해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더군요.

회사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여전히 경영이 어렵다며,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을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이번 재판에 해고 노동자들은 기대를 걸고 있어요. 코로나 때 매달 1억원도 안되던 객실 영업수익이 요즘 7억원이 넘었다고 해요.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어요. “우리는 아직 복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코로나 핑계 그만 대고 원래 자리로 돌려놔라!”

허지희(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지난해 9월3일 특성화고 졸업 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 ‘나의 마니또’ 행사 모습. 최예린 제공

현장실습생 인식 나아진 것 같긴 한데…

연재 글이 나가고 나서 주변에서 “진짜야?”, “정말 그랬어?”, “아직도 그런 곳이 있어?”라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제가 현장실습을 나갔을 때가 3년 전인데, 구조적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인식이 좀 많이 바뀐 것 같기도 해요. 학생들이 당당하게 본인 일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선도 긋고, 잘못된 점은 더러 건의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어린 학생들에게 회사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처음 현장실습 나갔던 곳이 아닌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쉬운 건 전문적으로 일하고 싶어서 특성화고를 나왔는데, 가는 회사마다 고졸이라는 점이 약점이 된다는 점입니다. 회사 사람들도 자꾸만 대학을 가라고 권해요. 그게 심적으로 불편해요. 같은 일을 하고 있고, 오히려 내가 더 숙련됐는데도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낮은 연봉을 받아요. 그게 참 아쉬워요.

최예린(특성화고 졸업생)

지난 3월28일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3·15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 모습. 최윤미 제공

조합원들 농성장에 경찰 폭력이라니요

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와이퍼 모회사인 ‘덴소’는 고용안전협약서를 지켜야 한다는 법원 판결을 지키지 않고 있거든요. 지난 3월15일에 큰 위기가 왔습니다. 한국와이퍼 공장 앞에서 농성하고 있던 조합원들 앞에 경찰 7개 중대와 회사가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용역이 들이닥쳐서 폭력을 휘둘렀거든요. 이 일로 조합원 15명이 응급실에 실려 가고 1명은 갈비뼈가 골절됐습니다.

정당하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곳에 경찰이 들어와 노동자를 끌어내고 폭력을 휘두른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경찰이 사과할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거예요. 국가인권위 문도 두드리고 안산시민들에게도 도움을 청하려고요. 몇년이 걸리더라도 경찰의 폭력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확인받고 싶어요.

최윤미(한국와이퍼 노조지부장)

지난해 9월28일 ‘플랫폼노동자대회’ 모습. 위대한 제공

나은 사회 만들어가고픈 포부 생겼어요

글이 나가고 주변 친한 플랫폼 노동자들 반응은 “네가 이런 걸 썼다고?” 하는 놀림이 많았어요. 상당히 부끄러웠죠. 그때와 지금, 현실은 변한 게 별로 없지만 저 스스로 변한 것이 있어요. 일하면서 늘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더 잘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얼마 전 서울청년네트워크 청년정책위원으로 위촉됐어요. 거기서 ‘플랫폼 노동자 사회보장보험지원’이라는 정책 아이디어를 제출했는데 관심 보이는 분들이 있어서 함께 해보기로 했어요. 우리 플랫폼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들보다 두배 이상 많은 4대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거든요. 건강보험이 대표적인데 플랫폼 노동자는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보험료도 많이 내야 하고 미납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정책제안을 하게 됐죠.

제 글이 나간 이후요? 저는 여전히 도로 위에 있고, 노조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모든 플랫폼 노동자들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어요.

위대한(라이더유니온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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