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20%를 이해한 북토크
[숨&결]
[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서울로 가려던 참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당신도 가겠다고 했다. 책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였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머리를 굴렸다. 담당 편집자에게 연락해 행사장에 통역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하자 행사를 주최하는 서점에 전화했다. 담당자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문자통역을 하고 있다며 괜찮을지 물었다. 엄마는 수어통역이 있다면 좋겠지만 문자통역도 괜찮다고 했다.
서점에 도착하니 스크린이 내려져 있었다.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에 문자통역 기능을 켜서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테스트해보니 제법 괜찮았다. 자동으로 음성을 인식하고 맥락에 맞춰 수정되기도 했다. 독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았다. 나는 자기소개를 하며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엄마가 와 있음을 알렸다. 그렇게 북토크가 시작됐다.
시작과 동시에 깨달았다. 이 기능은 화자의 말을 정확하게 통역하지 못한다는 걸. 문자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는 걸. 게다가 신간은 그동안 써왔던 책보다 밀도가 있었다. 엄마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와 개념투성이였다.
잘못된 통역은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반영됐다. 엄마는 알아듣기 어렵다는 듯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인 관객은 무대 위 사회자와 나를 바라보다 스크린의 자막 보기를 반복했다. 애석하게도 통역은 자꾸만 원문과 멀어졌다. 안 되겠다 싶어 쉬운 내용으로 말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발화했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신이 나 빠르게 말하거나 어려운 단어를 쓰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얼굴을 찌푸렸다. 고민에 빠졌다. 수어통역사가 돼 모든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고 싶었다. 딸로서도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럼 무대 위 작가는 누가 하지?
나는 결국 통역을 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내가 했던 말을 요약하고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예시를 들어 통역했다. 모든 이들이 나를 바라봤다. 통역을 제대로 해냈다면 좋았겠지만 불가능했다. 음성언어로 말하다가 모드를 바꿔 수어로 발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만 통역하고는 작가로 돌아왔다. 몇차례를 반복했다. 식은땀이 났다. 통역사로서의 통역도, 작가로서의 말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맥락을 놓쳐 어디까지 말했는지 몇번이고 물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여러분은 지금 농인 자녀의 삶을 마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객 중 한명이 엄마가 행사 내용 중 몇%를 이해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왼손으로 20이라고 말하고 오른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선을 긋고 다시 동그라미를 그렸다. 퍼센트라는 뜻이었다. 20%. 엄마가 받아들인 정보의 양이었다. 엄마는 말했다.
“사람들이 보라보고 말을 정말 잘한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네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어. 정말 똑똑한 것 같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청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여력이 없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공지능(AI)이 판을 치고, 챗지피티(ChatGPT)가 나와 봤자 뭐 하나. 내가 아무리 장애와 다양성을 말하는 강연을 멋지게 해봤자 뭐 하나. 엄마가 이해하는 건 고작 20%인데. 준비한 말을 실수 없이 마치는 멋진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엄마의 몸은 현실이었다. 실패한 행사였다.
실패하지 않은 강연을 하고 나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그날은 현실을 자각했다. 딸의 이야기도 20%를 겨우 이해하는, 정보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말이다. 어쩌면 나는 성공하는 강연이 아니라 실패하는 강연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앞으로는 실패의 자리를 열어보려 한다. 실패하는 강연, 실패하는 북토크, 실패하는 퍼포먼스, 실패하여 20%에 머무르고 마는, 그리하여 현재를 직시하는 경험을 당신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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