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보수 투사에서 도민 보듬는 행정가로… "감자 팔던 강원도는 잊어달라"
원주에 삼성공장 유치·제2 강원청사 건립 등 공격적 도정
달리기 등으로 건강관리… "일자리 넘쳐나는 道 만들 것"
道伯에 오른 '춘천 토박이' 김진태 강원도지사
"'순한 맛'이든, '매운 맛'이든 오직 강원도만 바라보겠다는 마음 뿐입니다. 도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매 순간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뛰겠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서 '보수·태극기 투사'로 통했던 김진태 강원도지사(59·사진·국민의힘 소속)는 도정(道政)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이렇게 요약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도백(道伯)의 자리에 오른 뒤, 야당과 중앙정치에서 공개 충돌하는 일이 잦아들자 '매운 맛 김진태가 순한 맛으로 변했다'는 언론의 평가가 잇따랐다. 근본은 정치인임에도, 여야 간 정쟁이나 강성 지지층·발언에 의존해 존재감을 알리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 모습에 '의아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김진태 지사는 최근 디지털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미지 변신'에 대해 "정치인일 땐 정치인 역할, 행정가가 돼선 행정가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며 "우리 도민 앞에선 언제나 '순한 맛'이지만, 도민의 이익을 쟁취할 땐 영원히 '매운 맛'"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소년급제, 검사 출신 국회의원 등 옛 이력을 거론하기 이전에 그는 '춘천 토박이'다.
대선 전후 공약한 경제 특별자치도 구현, 원주 삼성 반도체 공장 유치 등 핵심 현안 해결을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임기 첫해 국비 2400억여원 추가 확보를 관철해 강원도 예산 9조원 시대를 열었고, 추진 41년 만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와 강릉 제2 강원도청사 건립을 확정했다.
특히 대외 협력·설득이 필요한 문제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의 수도권 반도체클러스터 조성계획 발표가 있었던 3월, 김 지사는 박승희 삼성전자 CR담당 사장 등과 면담해 '반도체 인력양성 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자신감이 생겼다는 김 지사는 "맨땅에 꽃을 피우는 일"이라며 "벌써 출범한 '반도체교육센터'나, 앞으로 구축할 테스트베드가 원주 반도체산업의 씨앗이다. 이 씨앗을 잘 길러야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전무를 지낸 엔지니어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25일 춘천을 방문해 "글로벌 기업의 반도체산업 3대 요소는 전력·용수·인재인데 강원도가 뒤지지 않는다"며 힘을 실어줬다.
김 지사는 윤석열 정부의 강원 1호 공약인 특별자치도 법령 개정폭을 넓히려 당·정 설득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단순 예산지원이 아닌, 환경·군사·농업 ·산림 4대 핵심규제 완화권을 가져오는 '진짜 자치, 자유'에 방점이 찍혀 있다. 지역구 여야 국회의원들과는 오월동주라도 하지만, 권한을 쥔 부처 설득이 최대 난제라고 한다. 그는 "6월11일 출범 전 특별자치도법(개정안)이 통과되려면 5월 한달 동안 공청회부터 본회의까지 5개 절차가 모두 이뤄져야 한다"며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 3월말 국무총리실 산하 강원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 회의 개최에 안주하지 않고, 이달 3일 정부서울청사서 가진 단독 면담까지 한덕수 총리를 세차례나 만났다.
특히 김 지사는 지난달 6일 2030 부산세계엑스포를 주제로 윤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특별자치도가) 빈껍데기만 남으면 강원도민을 볼 면목이 없다"며 "부처 협의가 잘 안되는 것을 다 적어서 대통령실에 드리려 한다. 안되면 '단식투쟁'이라도 해야겠다"고 밝혔다. 이때 한 총리가 '가져온 자료를 달라'며 받아들었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당의 강원지사 공천 임의배제에 맞서 경선을 나흘간 '단식투쟁'으로 관철했다. 이번에도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김 지사는 "(접경지인) 강원도는 지난 50년간 희생과 양보만 해왔다"며 "강원도라고 왜 안됩니까. 기업과 사람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넘쳐나는 강원도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힘줘 말했다.
특별자치도 개정 취지에 대해서도 "중앙정부가 전부 통제·규제하는 시대를 끝내고, 강원도민 스스로 강원도의 운명을 개척하는 시대가 시작된다. 핵심은 규제개혁"이라며 "그동안 이중삼중 규제 때문에 기업 하나, 공장 하나 들어오기 힘들었다. 4대 규제 총면적이 도 전체 면적의 1.3배라는데, 권한을 이양받아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보잔 것이다. 특별자치도 비전을 '미래산업 글로벌도시'라고 정했다. 산업 규제를 확 풀어 반도체·바이오헬스·수소에너지·스마트농업 등 미래 첨단산업을 키워보겠다"고 말했다. "감자만 팔던 강원도는 잊어주십시오. 이제 강원도는 미래산업으로 갑니다"라는 말에선 역대 도정과의 차별화 의지도 읽혔다.
당 '김기현 지도부'를 향해서도 김 지사는 "친정이 잘 돼야 광역단체장도 힘이 붙는다. 오로지 민생만 바라보면서 화합하고 단결하길 바란다"고 순항을 기원하는 한편 "덧붙이자면, 윤석열 정부 강원도 1호 공약인 특별자치도법 개정에 대한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당부드린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정치행보 구상에 대해 김 지사는 "솔직히 생각할 틈이 없다"며 "초대 강원특별자치도지사로서 특별자치도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고 인구 200만, 지역내 총생산(GRDP) 1조원, 수도권 강원시대로 나아가는 초석을 마련하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정 강행군을 하는 김 지사의 체력에도 눈길이 갔다. 그는 지난해 사흘간 단식농성 직후 당내 경선·본선 선거운동을 했고, 임기 초반까지 제법 야윈 모습으로 언론·방송 카메라에 잡힌 바 있다. 하지만 올해 3·1절 강원일보 주최 단축마라톤 행사에서 10km를 완주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 지사는 "도청 식구들과 함께 참가해 10km를 53분 23초에 완주했다"며 "벌써 20년 전이다. 2003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처음으로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해 4시간 27분 만에 들어왔었다. 평소 달리기, 배드민턴 같은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당면한 도내 현안으론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으로 불린 남모씨가 2018년 강원도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망상1지구 개발사업 시행사로 선정된 의혹과, 도의 긴급 감사가 거론된다. 김 지사는 "원래 5월 감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인천 전세사기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한달 앞당겼다"고 했다. '최문순 도정' 때 감사·수사에서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났었지만, 김 지사는 "작년 11월 서울중앙지검에서 남씨가 사업자 선정 서류조작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수사 결과가 바뀐 것처럼 정말 사업자 선정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며 "인천시민을 괴롭히던 전세사기범이 강원도로 와 도민에게까지 피해를 줬다면 용납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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