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찾아 파이팅 외치고 15분 안에 떠난 윤 대통령
"잘 이끌어 주시기 부탁드리겠다"며 질문 안 받은 대통령
대통령에게 '파이팅'제안한 출입기자…보도자료에서 뺀 대통령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생략한 윤석열 대통령이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 질문을 받지 않고 떠났다. 윤 대통령이 방문한 현장에서 일부 기자들의 부적절한 언행도 논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국민의힘 지도부, 국무위원과 취임 1주년 행사를 마치고 오후 1시39분께 대통령실 청사 1층에 위치한 기자실을 방문했다.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 국민의힘 인사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실 참모진 일부가 동행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기자실로 통하는 입구에 도착해 3개의 기자실을 돌아다니며 기자들과 악수하고 빠져나가기까지 딱 15분이 걸렸다. 대통령실은 출입기자들에게 “윤 대통령이 짧은 인사를 하러 온 것”이라며 질문을 제한했다.
기자들과 악수를 마친 윤 대통령이 인사말을 마친 틈을 타 한 출입기자가 “새해에는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이 없어져서 기자들과 관계를 많이 만든다고 했는데 이런 자리를 자주 해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잘 이끌어 주시기 부탁드리겠다”며 질문 안 받은 대통령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1년 동안 많이 도와주시고 우리가 국가 발전을 위해 일하는데 좋은 지적도 해 주시고 해서 여러분 덕분에 지난 1년 일을 나름대로 잘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이 맞이하는 1년도 언론이 정확하게 잘 짚어주시고, 저희들이 또 방향이 잘못되거나 이럴 때면, 속도가 빠르거나 너무 늦다 싶을 때 여러분께서 좋은 지적과 정확한 기사로써 저희 정부를 잘 이끌어 주시기 부탁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작 신년에 이어 1주년 기자회견도 없이, 기자실에 얼굴만 비추는 이벤트성 자리를 만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11월 출근길 문답 중단 이후로 기자들 질문을 받지 않고 있다. 주요 현안에 대해선 '회의 발언 생중계'로 입장을 밝히고, 해외순방 관련해선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대통령실은 1주년 기자회견을 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익명을 전제로 질의응답에 응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1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고 도어스테핑 중단 후 소통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데 대통령이 소통 강화를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한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양한 소통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기자가 '윤 대통령 기자회견은 출입기자 뿐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으로서 중요한데 조속한 시일 내에 요청한다'고 하자 “잘 감안해서 논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홍보수석과 대변인 등 대언론 소통이 주요 직무인 참모진이 실명으로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자리는 없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기자실 방문에 대해 '배포한 자료만 기사화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실은 윤 대통령이 방문하기 10여분 전 전체 출입기자 대화방에 “대통령 기자실 방문은 영상, 사진 포함, 관련 내용 모두 풀 기사 최종본 게재 이후 보도 가능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기자실에서 퇴장한 뒤인 2시10분엔 “금일 대통령 기자실 방문은 '풀 최종본' 내용에 한해서 보도 가능하다. 그외 다른 내용은 보도 불가”라고 했다.
'풀 최종본'은 대표취재를 맡은 기자가 윤 대통령 일정을 취재해 기록한 내용을 기자 간사단, 대통령실과 협의해 전체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하는 일종의 보도자료를 말한다.
대통령에게 '파이팅' 제안한 출입기자…보도자료에서 뺀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실이 오후 3시가 넘어 공개한 자료에는 현장의 정황이 상당 부분 빠져 있었다. 일례로 한 출입기자가 윤 대통령에게 '원내대표님과 파이팅 한 번 해 달라'고 요구하자, 윤 대통령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 파이팅”을 외친 대목이다.
이 밖에도 윤 대통령과 일부 기자들이 나눈 짤막한 대화들도 대통령실 풀 자료에서는 볼 수 없었다. 당시 파이팅을 제안했던 경북 지역 일간지 소속 기자는 “기자들이 있는 데서 좀 잘하겠다는 의미로 파이팅 한 번 해 달라고 그런 것이다. 별 다른 의미는 없었다”며 “원내대표가 대구 출신이라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언론과 소통 의무를 기피하고, 이를 견제해야 할 출입기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응원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는 모습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부르고 있다. 더구나 이번 일은 지난달 해외순방에 동행한 출입기자 일부가 대통령 전용기에서 김건희 여사와 환히 웃으며 '셀카'를 찍는 사진이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됐다 삭제돼 논란을 부른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을 하던 지난해 8월엔 한 기자가 “대통령님 파이팅”을 외쳐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취임 1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시점에 기자들이 질문할 기회 없이 인사만 하게 돼 아쉬웠는데 거기에서 파이팅 제안을 듣게 돼 당혹스러웠다”며 “취재하다보면 유대 관계가 생길 수 있지만 비판과 감시의 대상으로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런 자각이 우리들 사이에서 부족한 것이 아닌가 의아함을 느낀다”고 했다.
또 다른 출입기자는 지난 2일 윤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했을 때에도 '촬영, 녹취, 보도 불가'라고 공지를 했다며 “출입기자들이 권력감시 책무를 저버리고 동화돼서 한 배를 탄 선원이 된 건지 되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헌법을 공부하고 사랑하길 바란다. 자유 위에 민주공화국이 있다”며 “'딸랑딸랑'하는 이들도 그렇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조선일보, 윤석열 취임 1년 엄호 ‘여론조사 가짜뉴스’ 주장 - 미디어오늘
- “대통령 국정철학 따라 방통위 운영? 과거 회귀적, 방통위 설치법 봐라” - 미디어오늘
- 윤석열 취임 1년 전임정부 탓, 조선·매경·한경 “거야 독주” 편들기 - 미디어오늘
- MBC 구성원들 “정부부처, 대통령 앞장서자 경쟁하듯 MBC 탄압” - 미디어오늘
- 하태경 “방송이라 참는다” 라디오 진행자 “저도 참습니다” - 미디어오늘
- [영상] 고민정 “국민과의 불통을 선택한 취임 1주년” - 미디어오늘
- 임기 두달 남은 방통위원장 서둘러 면직하려는 이유는 - 미디어오늘
- MBC뉴스 유튜브 구독자, 尹정부에서 100만명 늘었다 - 미디어오늘
- 다음 뉴스 댓글 ‘찬반 방식’에서 ‘실시간 채팅’으로 바꾼다 - 미디어오늘
- “인내는 끝났다” 민주노총, 윤석열 퇴진 투쟁 선포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