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으로 돌아온 이순재 "백성에 대한 연민 더 살려내"

강애란 2023. 5. 1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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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이어 두 번째 공연…"관객들에게 대사 잘 전달되게 보완"
리어왕 역 최고령 배우로 기네스북 등재 추진…"최선 다할 뿐"
이순재의 리어왕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배우 이순재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SNU장학빌딩에서 열리 연극 '리어왕: KING LEAR' 연습실 공개 및 간담회에서 주요 장면 시연을 하고 있다. 2023.5.10 jin90@yna.co.kr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고전이라는 것은 한 번, 두 번, 세 번 할 때마다 달라요. 이번에는 셰익스피어가 작품에 담은 백성에 대한 연민을 더 살려냈죠."

연기 인생 68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88)가 10일 서울 마포구 SNU장학빌딩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에서 2021년 초연에 이어 재공연에 나선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자기 딸들에게 정권을 넘기려 하는 팔순이 넘은 왕 리어의 이야기다. 이순재는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끔찍한 파국을 맞는 리어 역을 맡았다.

이순재는 "2년 전 손님이 없어 쫄딱 망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관객들이 성원해줬다"며 "그때 놓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해보자고 해서 다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셰익스피어는 연출가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하고 싶어 하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품"이라며 "젊었을 때는 '햄릿', 중년에는 '오셀로', '맥베스', 노년에는 '리어왕'이 있다. 내 나이가 ('리어왕'에) 적절해 만용을 부려봤다"고 했다.

예술감독도 겸하고 있는 이순재는 2년 전 공연과 비교해 이번 공연에서는 작품 속에 담긴 백성에 대한 연민을 부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잃은 리어왕이 "내 그대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부자들아, 가난한 자들의 삶을 몸소 겪어 봐라. 넘쳐나는 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자"고 말하는 대사의 한 구절을 읊었다.

이순재는 "(작품이 쓰인) 당시에는 귀족과 서민 사회가 하늘과 땅 차이로 격차가 컸고, 서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며 "셰익스피어는 중간 계층으로 있으면서 고통받는 백성에 대한 연민 갖고 있었다. '리어왕'뿐만 아니라 '한여름 밤의 꿈'에서도 리더의 '여민동락'(與民同樂·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순재의 리어왕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배우 이순재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SNU장학빌딩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KING LEAR' 연습실 공개 및 간담회에서 주요 장면 시연을 하고 있다. 2023.5.10 jin90@yna.co.kr

원작을 번역한 대사 속 관객들이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어휘들을 다듬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이순재는 "학문과 연극은 차이가 있다. 학문은 박사들끼리 모여서 하는 것이지만, 연극은 모든 관객이 알아들어야 한다"며 "번역문을 보면 우리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단어 하나에도 정의가 수십 개인데, 이걸 선택하고 풀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우리 몫"이라고 말했다.

고전인 '리어왕'은 워낙 내용이 방대해 보통 축약되거나 현대적인 해석으로 각색된 버전이 주로 무대에 오르지만, 이순재의 '리어왕'은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원작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순재는 원작에 충실한 공연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셰익스피어 작품 안에는 독백, 방백 등이 섞여 있고 (작품만의) 리듬이 있다"며 "그런데 이걸 잘라내고 스토리 중심이 되면 이야기의 전달일 뿐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진수를 전달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순재, 인자한 미소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배우 이순재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SNU장학빌딩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KING LEAR' 연습실 공개 및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5.10 jin90@yna.co.kr

다만 공연 시간이 200분에 달하는 등 배우로서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초연 때도 고령인 이순재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순재는 이날 시연에서 세 딸과 사위들, 신하들에 둘러싸여 극을 이끌었다. 긴 호흡의 대사를 막힘 없이 술술 읊으며 힘있게 팔을 쭉 뻗거나 가슴을 쿵쿵 치기도 했다. 후배 배우들이 시연하는 동안에는 눈을 감은 채 입 모양으로 다음에 할 대사를 되뇌거나 대본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는 "연습해보니 이제 힘들다. 체력이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대사 외우는 게 쉽지 않다. 깜빡하고 (대사가) 막히면 막 내려야 하는 위긴데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앞으로는 우리 후배들 가운데 더 멋있는 리어왕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935년생인 이순재는 '리어왕'을 연기하는 전 세계 배우 중 최고령으로 꼽힌다. 이날 윤완석 총괄프로듀서는 이순재를 '리어왕' 역의 최고령 현역 배우로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순재는 "(기네스북 등재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며 "내가 (연기)하고 있지만, 완벽하고,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관객들이 '리어왕'을 보며 현대적인 의미도 찾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죽을 때까지 (유산을) 절대 물려주지 말자'는 이런 현대적인 교훈도 있어요. (웃음). 작품을 구석구석 보면 지금과 매치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찾아서 표현하고, 관객들에게 동의를 얻는 것이 우리의 과제죠."

공연은 다음 달 1일부터 1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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