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행간] 여야의 경쟁적 ‘정치혐오’ 유발, 야당에 불리한 이유는?
편집자주
‘박석원의 정치행간’은 국회와 정당, 용산 대통령실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을 넘어섰다. 여의도에선 정치가 실종되고 강대강 힘의 대결만 난무했다. 윤 대통령의 저조한 국정지지도(30%대)가 일상화된 가운데 국민의힘은 ‘용산 대통령실의 출장소’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광훈 목사 등 외부 극렬세력에 집권당이 흔들리는가 하면 대통령실 공천개입 녹취 파문이 터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에 반년 넘게 발목이 잡혀 있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터지면서 현역의원 수십 명의 명단이 나돌고,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까지 등장했다. 여야가 경쟁하듯 ‘정치혐오’를 유발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지경이다. 앞다퉈 국민불신을 키우는 풍경은 정치공학상 어느 쪽에 덜 불리할까. 양당 내부의 생생한 위기론과 노골적인 속내를 들어봤다.
‘누가 누가 더 못하나’ 사태, 정치공학적 분석에 분주한 여의도
내년 총선까지는 11개월. 여의도에선 ‘누가 더 못하나’ 싸움이 남길 이해득실에 주판알을 돌리느라 분주하다. 선거는 최선보다 차선, 차선보다 차악을 택하는 상대적 게임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비영남권 친윤계 의원은 10일 본보 통화에서 “국민이 볼 때 양쪽 다 똑같겠지만 정치혐오가 강해질수록 여당이 더 유리해진다”며 “기성 고령층은 지지정당이 고착화됐지만 야당이 앞선 20·30대층은 ‘깨끗한 정치’ 같은 화두에 흔들린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송영길 전 대표 돈 봉투 사건에 관련 의원들이 실명으로 추가되고, 김남국 가상화폐 건도 여론에 좀 더 자극적”이라며 “젊은 층이 지지를 철회하게 돼 우리로선 나쁘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시각은 민주당 주류진영에서도 나왔다. 한 친명계 의원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투표율 저하로 이어져 우리 쪽에 불리하다”며 “60·70대는 우리당에 로열티(충성도)가 덜하게 되고 민주세력에 실망한 20~40대가 투표장에 안 나오게 된다”고 우려했다. 진영에 대한 기대감 추락으로 이어질 국면을 심각하게 보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에게 정동영 후보가 완패한 2007년 대선직후 18대 총선 때 투표율이 46.1%로 역대 최저였다. 통합민주당은 8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의원은 다만 “투표율이 55%만 넘기면 윤 정권의 실정이 뚜렷해 민주당이 1석이라도 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권심판론’이 득세할지, ‘거야(巨野)심판론’으로 흐를지 아직 예단하긴 어렵다. 민주당의 수도권 의원은 “국민에게 야당은 구태정치로 보이지만, 대선 때 밀어줬더니 독선과 무능으로 돌아온 여당에 대해선 투표행위를 잊고 싶을 만큼 국가적 위기로 본다”며 “외교·국방·경제 등 국정 전 분야가 이대로 가면 큰일 나겠다는 위기의식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달리 익명을 요구한 비명계 의원은 “이준석의 코인은 관대하고 김남국 코인은 비난하는 대중의 반응이 위협적”이라며 “선거는 정서적 투표다. ‘누가 더 못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싫으냐’의 싸움이다. 중도층은 무능 프레임보다 내로남불과 부패·위선에 더 감정적일 수 있다”고 고백했다.
“여당 지도부는 복숭아학당” 절정에 이른 무기력과 극우 정체성
국민의힘이 느끼는 위기감도 민주당에 뒤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얼굴로 총선을 치러야 하지만 획기적인 국정지지도 상승 조짐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3·8 전당대회를 치른 지 두 달밖에 안됐으나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명이 징계 심판대에 올랐다. 당 지도부의 잇따른 실언과 우경화 움직임에다 이를 통제·관리해야 할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은 바로 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비영남권의 친윤계 의원은 “새 당대표가 탄생한 지 두 달 됐는데 청년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현장도 방문하고 했지만 워낙 기대감이 없어서인지 언론에 뉴스가 먹히지 않는다”며 “김기현 대표를 겪어보니 사람은 좋지만 이분을 중심으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냐는 근본적 의문이 생기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가감 없이 표현했다. 이 의원은 “지금처럼 조기에 당대표 레임덕이 발생하긴 처음이다. 최고위원들까지 개성이 강해 사실상 봉숭아학당이 되지 않았냐”며 “영남 텃밭 몇 명을 제외하면 수도권 의원과 출마그룹을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까지 무기력과 혼란상이 계속된다면 비대위 논쟁이 표면화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쇄신경쟁에서 여야 승패가 갈릴 것이란 점은 다수가 동의한다. 국민의힘에선 여론조사상 정권심판론이 야당심판론보다 다소 높게 나오지만, ‘현역의원 물갈이 필요성’을 물으면 찬성이 높다는 점을 주목한다. 용산에 대한 여당 내 불만이 쌓이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한 당직자는 “100% 당선되는 노른자 지역에선 서초동 검사그룹에 지역구를 빼앗긴다고 보고 일찌감치 고향으로 낙향하려는 움직임마저 나오는 실정”이라며 “당의 지원 없이 어떻게 정권교체가 됐겠나. 과거 민주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만들어준 호남에 ‘나 아니었으면 내세울 후보가 있었냐’는 식의 갈등이 있었지만, 이쪽도 용산과 당이 정서적으로 분리돼 있다”고 털어놓았다.
반대로 당의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상승할 일만 남았다는 낙관적 주장도 있다. 한 친윤계 의원은 “대미·대일외교가 국민 보기엔 성에 차지 않지만 방향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고 윤 대통령이 맞을 만큼 맞았다. 국정메시지 관리를 정교하게 다잡고 우직하게 가면 여론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태경 의원은 “쇄신경쟁은 어느 쪽이 더 절박한가에 달려 있다. 총선은 대통령 중간평가이고 여기서 지면 정권 레임덕 아니냐”며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만 오르면 탄력을 받는다. 말실수 안 하고 내각교체 때 인사요인을 활용하면 지지율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선·무능 尹정권은 안 바뀐다. 승리요건은 민주당 변화” 非이재명계 공세
민주당은 온갖 악재가 발등에 떨어져 말 그대로 비상국면이다. 검찰의 칼날이 집중돼 속수무책으로 수세에 몰려 있다. 비명계 의원은 “국민이 보는 민주당은 가치와 도덕성이 브랜드일 수밖에 없다”며 “’조국 사태’의 악몽이 부활하는 느낌이다. 당시 ‘사모펀드’는 문제없는데 왜 자녀 표창장 갖고 감옥까지 보내냐는 항변이 먹히지 않았다. 지금도 돈 봉투, 가상화폐 의혹 모두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 해명만 늘어놓는 격”이라고 내부를 비판했다.
오는 14일 박광온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쇄신 의원총회’가 친명-비명 간 당내 투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비명계가 당의 간판교체까지 공론화할지가 관건이다. 당 안팎에선 총선승리 요건으로 대략 두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검찰의 표적이 된 지 오래된 이 대표가 만에 하나 2선 후퇴할 여부와 함께, 당내 기득권인 586세대나 초선·다선 가리지 않고 극단적 이미지가 강한 ‘혐오의원 그룹’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명 측 의원은 “총선에서 여당이 감당할 ‘윤석열 리스크’는 바뀌지 않는 상수다. 민주당의 변화 여부가 유일한 변수”라고 분석했다.
검찰이 이 대표에 추가 구속영장을 청구해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이 부쳐지면 대세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한 친명계 의원은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될 경우 전략적으로 유연한 이 대표가 백의종군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예상했다. 비대위가 불가피해질 경우 문재인 당대표 시절 김종인 위원장에게 공천권을 넘긴 모델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또 한나라당 박근혜 ‘천막당사’를 벤치마킹하거나, 당시 박근혜 위원장 외에 ‘경제민주화’ 김종인, 4대 강 사업을 반대한 이상돈 교수, 낡은 당 이미지를 없앤 이준석이 함께 비대위를 꾸렸다는 점도 주목한다.
친명계 이해식 의원은 “국민에게 여야가 피장파장으로 보여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정치검찰의 의도를 국민이 간파한 데다, 선거는 근본적으로 경제가 좌우한다. 한미·한일 정상회담도 경제적 국익이 중요했지 않나. 경제지표는 안 좋고 일자리와 청년실업, 민생이 갈수록 어려운데 윤 정부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정권무능론이 총선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석원 논설위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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