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확장 돕고 '불멸의 아이돌' 제작…K팝 무한진화 이끄는 벤처 [긱스]

이시은 2023. 5. 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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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스타트업의 '성장 3축'
매출처 확실한 '팬덤 비즈니스'
플랫폼 앨범·팬 커뮤니티 활황
'에스파', AI·VR로 실감형 공연
작곡·춤 강의도 이젠 AI가 척척
AI·팬덤 융합한 '버추얼 아이돌'
구설수 없고 활동 기간 무제한

#. 지난 3월 발매된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첫 솔로 앨범은 ‘실물 없는 앨범’도 함께 발매됐다. 이른바 ‘플랫폼 앨범’으로 이달까지 32만 장 팔렸다. 스타트업 미니레코드가 만든 이 앨범은 QR 카드가 동봉된 손바닥만 한 종이다. 스캔하면 전용 노래 감상 앱에 디지털 앨범이 생겨난다. 팬덤을 기존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끌어올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이어 최근 하이브가 투자를 결정했다.

#. 지난 8일 공개된 걸그룹 ‘에스파’의 3집 미니앨범은 가상현실(VR) 공연 콘텐츠로도 제작된다. 첫날 판매량 137만 장을 기록하며 역대 걸그룹 초동 판매량 2위에 오른 앨범이다. VR 콘텐츠 기술을 지원하는 곳은 스타트업 어메이즈VR이다. 카카오 초기 멤버들이 창업한 이 회사는 3월에도 SM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해 미국 대형 콘퍼런스에서 VR 기기 기반 에스파 콘서트를 열었다.

그래픽=이정희 기자


K팝 스타트업이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제품과 기술이 아이디어 수준에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잇달아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대형 기획사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한 배경에는 팬덤 비즈니스 기반의 아이디어 플랫폼과 인공지능(AI)·VR 등 딥테크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두 영역을 합친 ‘버추얼 아이돌’ 사업에서 국내 스타트업이 두각을 나타내며 K팝 생태계를 지탱하는 스타트업 ‘3대 성장축’이 완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팬덤 기반으로 ‘뭉칫돈’ 유치

팬덤 비즈니스는 매출처가 확실하고, 해외 진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분야로 꼽힌다. 핵심은 음원 관련 사업과 팬 커뮤니티 사업이다. 음원은 스트리밍 플랫폼에 빼앗긴 시장 주도권을 탈환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미니레코드처럼 새로운 개념의 앨범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스타트업 뮤즈라이브는 모바일 단자에 부착하는 손가락만 한 전자기기인 ‘키트 앨범’을 제작했다. YG엔터테인먼트,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등과 협력해 이달까지 블랙핑크, 세븐틴 등 아이돌 앨범 430종을 내놨다. 석철 뮤즈라이브 대표는 “사라진 음반시장의 가치를 재현하기 위해 키트 앨범을 기획했다”며 “작년 말까지 16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스톤브릿지벤처스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이 주요 투자자”라고 했다.

2021년 창업한 비마이프렌즈는 팬덤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솔루션 ‘비스테이지’를 선보였다. 이제 만 1년을 넘긴 서비스지만 제작된 팬 페이지는 지난달 기준 1000개가 넘는다. CJ와 GS그룹, 미국 벤처투자사 클리블랜드애비뉴가 주요 투자사로 포진해 있다. 올해 목표 매출은 100억원이다. K팝 굿즈 제작·펀딩 플랫폼 메이크스타는 지난해 매출 479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참여 가수는 580팀을 넘겼고, 181개 국가에서 결제가 일어난다. 해외 매출 비중은 70%에 달한다. 스타트업 테이크원컴퍼니의 ‘블랙핑크 더 게임’처럼 아이돌 지식재산권(IP)을 다른 콘텐츠에 활용하는 방식도 초기부터 팬덤이 있는 해외 국가를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K팝 댄스 가르치는 ‘AI 선생님’

AI, VR 기술 역시 K팝 스타트업의 무기다. 어메이즈VR처럼 가상 공간에서 아이돌 공연을 즐기는 직관적인 개념이 성행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하며 대형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는 곳도 있다.

하이브는 8일 신인 아티스트 ‘미드낫’의 뮤직비디오 무드 필름을 공개했다. 아직 정체가 공개되지 않았는데, 하이브는 미드낫을 “프로젝트 L의 주인공”이라고 언급했다. 프로젝트 L은 AI 보이스를 만드는 스타트업 수퍼톤과 하이브의 합작 프로젝트다. 수퍼톤은 2021년 하이브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지난 1월 450억원에 최종 인수합병(M&A) 됐다. ‘AI 작곡가’도 있다. 안창욱 GIST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 크리에이티브마인드는 AI 작곡가 ‘이봄’을 통해 가수 태연의 동생 하연의 데뷔곡을 제공했다. CJ ENM의 투자를 받은 AI 스타트업 포자랩스 역시 AI 작곡 플랫폼을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싸이드워크엔터테인먼트는 K팝 댄스 플랫폼을 다음달 출시한다. AI가 사람의 춤동작을 인식하고 K팝 댄스를 가르치는 방식이다. 이 회사를 이끄는 국기봉 대표는 국내 1세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이다. 국 대표는 “모바일에 AI 트래킹 기술을 적용하는 등 기술 개발에만 2년을 썼다”며 “한 그룹이 사라져도 더 많은 그룹이 생겨나는 K팝 시장은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라고 했다.

 주류 진입하는 가상 아이돌

‘버추얼 아이돌’은 최근 K팝 시장에 새롭게 대두한 키워드다. AI 기술로 가상 아이돌의 생김새와 춤 동작을 화면에 구현하고, 팬층을 끌어모아 사업을 키운다. 팬덤 비즈니스와 딥테크 기술이 융합된 셈이다. 주요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한 가상 걸그룹 메이브의 멤버 마티는 “우리는 100년 이상도 활동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이브는 넷마블 손자회사의 작품이지만, 두각을 나타나는 다른 제작사는 대부분 스타트업이다. 가상 보이그룹 ‘플레이브’는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독립한 스타트업 블래스트의 작품이다. DSC인베스트먼트, 슈미트 등이 초기 투자에 뛰어들었다. 한 달 전 공개된 플레이브의 ‘기다릴게’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조회수 300만 회를 넘어서기도 했다. 스타트업 카론크리에이티브의 가상 보이그룹 ‘레볼루션 하트’ 역시 인기다. 이들은 지난해 말 1집 쇼케이스 행사에서 CGV 수도권 5개 관 전석을 매진시켰다.

11인조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 역시 스타트업이 만들었다. AI가 수십만 장의 안면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물이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평균 조회수는 400만 회에서 600만 회 사이, 뉴스 프로그램 등 방송 출연 경력도 다수다. 박지은 펄스나인 대표는 “기존 아이돌은 짧으면 1년, 길면 7년 정도 버티지만 가상 아이돌은 멤버가 교체되거나 다른 꿈을 찾아 떠나는 일이 없다”며 “캐릭터 ‘미키마우스’처럼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K팝 기반 새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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