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벌 막고 임도 안내더니 … 대형산불에 한국 숲 망가진다
◆ 매경 포커스 ◆
작년 3월 강원도 울진·삼척 지역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 열흘간 이어진 역대급 산불로 1만6302㏊(163㎢)에 달하는 산림이 까맣게 타버렸다. 서울시의 27%에 달하는 면적이다. 피해 면적만 보면 2000년 발생했던 동해안 산불(2만3794㏊) 때보다 작았지만 피해 금액은 9086억원으로 동해안 산불(360억원)에 비해 25배나 더 컸다. 역대 최대 규모 피해였다.
당시 산불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울진 금강송 군락지 때문이었다. 산불이 조금만 더 번졌더라면 국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높은 숲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할 수 있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 2247㏊ 산지에는 수령 200년 넘는 노송(老松) 8만그루를 비롯해 1000만그루 이상의 금강송이 자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일반인 접근이 통제됐을 뿐 아니라 1959년 국내 유일의 육종보호림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도 소수의 예약 탐방객만 받을 정도로 치밀하게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금강송은 목질이 우수해 예로부터 왕실의 건축용 자재로 사용됐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서울 남대문 복원에도 금강송이 사용됐다.
발생한 지 1년도 넘은 울진·삼척 산불을 지금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당시 산불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림이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금강송 군락지까지 타버리는 재앙을 막기는 했지만 울진·삼척 산불을 교훈삼아 우리나라 산림 정책의 방향을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그보다 큰 산불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도대체 울진·삼척 산불이 갖는 함의는 무엇이고, 우리나라 산림 정책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자주 발생하는 산불과 커지는 규모
우리나라 산불에서 나타난 뚜렷한 변화는 과거에 비해 더 자주, 그리고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한 해 발생한 산불 건수는 197건에 피해면적 72㏊였다. 이후 산불 건수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작년엔 756건에 피해 면적 2만4797㏊를 기록했다. 산불 건당 피해 면적이 2012년 0.4㏊에서 작년 32.8㏊로 늘었다. 2012~2021년 10년간 산불 발생 건수와 피해 면적이 연평균 각각 481건과 1087㏊였던 점을 감안해도 작년의 산불 발생 건수와 피해 면적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쉽게 확인된다.
올해 들어서도 최근까지 산불 발생 건수가 작년과 거의 비슷하다. 이미 10년간 연평균 산불 발생 건수를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발생 빈도가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대형 산불이 늘어나고 있는 게 더 심각하다.
박도환 한국임업진흥원 이사는 "산림 쪽에서는 피해면적이 100㏊ 이상이면 대형 산불로 분류한다"며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대형 산불은 연평균 1.4건 발생한 반면 작년에는 대형 산불만 11건에 달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피해 규모가 큰 산불이 워낙 많이 발생하다 보니 과거에는 없었던 '초대형 산불'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피해 면적 3000㏊ 이상인 사례를 따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산불이 워낙 자주 발생하다 보니 산림청은 봄철 내내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한다. 그 중심에 진화헬기를 운용하는 산림청 산림항공본부가 있다. 산림항공본부가 전국 각지에서 운용하는 47대의 진화헬기는 봄철을 맞이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기연 산림항공본부장은 "최근 몇 년 새 산불 발생 건수가 늘고 규모도 커지면서 진화헬기 크기와 숫자를 계속해서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2000년 동해안 산불과 2005년 낙산사 산불 이후로 대규모 산불이 거의 없었는데, 2017년에 3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한 이후로는 거의 매년 큰 규모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산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산불이 발생한 이후 진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대형 산불이 나지 않도록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산불의 원인은 기후변화와 임목축적
최근 들어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가뭄이라는 것이다. 가뭄으로 습도가 낮아진 가운데 기온이 상승하고, 바람이 강해지면서 산불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로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그렇게 발생한 산불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등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산림이 지나치게 우거진 것도 산불 발생의 매우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산림녹화 사업을 모범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전쟁통에 완전히 망가진 민둥산이 녹음이 우거진 숲으로 변모했다. 산림에 나무가 얼마나 우거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임목축적'이라는 것이 있다. 나무를 부피인 체적으로 계산한 것으로 ㎥ 단위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산림의 ㏊당 임목축적은 1960년 9.55㎥/㏊에서 2021년 168.7㎥/㏊로 18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기연 산림항공본부장은 "산불의 발생에는 연료와 열, 산소 등 3개 요인이 개입한다"며 "지금 우리나라 산에 있는 나무는 너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산불이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산불의 연료가 되는 나무 양이 해마다 많아지면서 사실상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 울진·삼척의 대형 산불도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게 화근이었다는 분석이다. 해당 지역의 ㏊당 임목축적은 우리나라 평균치의 2배에 달하는 300㎥/㏊에 달하고 있다.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산림이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 강호상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교수는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산불엔 4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지중화(地中火)와 지표화(地表火), 수간화(樹幹火), 수관화(樹冠火)가 그것입니다. 지중화는 낙엽 분해물이 쌓인 이탄층이나 뿌리 등 땅속에서 타는 불이고, 지표화는 지표면의 낙엽이나 초본류들이 타는 불입니다. 수간화는 나무 큰 줄기가 타는 불이고, 수관화는 나무 제일 높은 곳의 수관(樹冠)층이 타는 불입니다. 산불이 수관화가 되면 불의 세기도 강하고, 진행 속도가 빨라 끄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산림에서는 수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한마디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면 불이 나무 위로 쉽게 옮겨붙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는 뜻이다.
소나무 등 침엽수가 산불에 더 취약
우리나라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 중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 비중이 높은 것도 산불에 취약한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 중 침엽수림 비중은 39%에 달한다. 활엽수림 비중은 33%다.
활엽수는 나무껍질이 두꺼워 불이 잘 붙지 않고, 겨울철에는 잎이 없기 때문에 불길이 나무 위로 번지는 수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서는 큰 가지에 붙어 있는 죽은 가지들이 사다리 역할을 하면서 지표 화가 수간화로 이어지고, 이어서 나무 맨 위의 수관(樹冠)으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대형 산불로 이어지기 쉽다. 특히 가지에 달려 있는 솔방울들이 불이 붙은 채로 강풍에 수백 m씩 날아가 산불을 확장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강호상 교수는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버티고, 건축용 등으로 용도가 많은 소나무를 우대한 반면 활엽수는 활잡목으로 인식해 땔감으로 많이 사용했다"며 "인가 주변 숲을 중심으로 소나무가 많이 조성되고 관리돼 왔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들어 활엽수 조림 비중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침엽수림에서 활엽수림으로의 숲 전환에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숲 가꾸기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산불 발생을 사전적으로 막으려면 무엇보다 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림에 나무가 과도하게 들어차 있는 만큼 간벌 즉 솎아베기를 활용한 '숲 가꾸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숲에서 나무를 베는 것을 자연 훼손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숲 가꾸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립공원 내 산림처럼 자연경관 등을 이유로 보호해야 하는 숲이 아닌 일반 경제림의 경우는 숲 가꾸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산림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 중 52%가 경제림에 해당한다.
나무도 생명체여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장 활동이 약화된다. 나무에 따라 다르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확 느려진다. 따라서 일정 수령을 넘어선 나무는 솎아베기를 활용한 숲 가꾸기를 해주는 것이 숲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숲 가꾸기를 제때 해주지 않으면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오히려 줄어드는 이유다. 강호상 교수는 "630만㏊에 달하는 우리나라 산림의 탄소 흡수량이 2018년에 4230만t으로 분석됐다"며 "지금처럼 숲 가꾸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산림의 밀식 상태가 더 심화되면 탄소흡수량이 2050년에는 오히려 1390만t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나라 산림은 숲 가꾸기를 더 미루면 안 될 정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수령 30년 이상 된 나무 비중이 2010년 65%에서 2020년 77.2%로 늘었다. 40년 이상 고령 나무 비중도 현재 38.3%에 달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줄어들고, 산불에도 취약한 산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산림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배경이다.
선진국들은 숲 가꾸기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산림청은 작년 1월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위기에 대응하고 산림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산림연료관리 10년 전략'을 발표했다. 2026년까지 24억2000만달러 예산을 투입해 숲 가꾸기 면적을 국유림에 대해서는 연간 800만㏊로 기존에 비해 8배 늘리고, 사유림은 1240만㏊로 12배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임도 내는 것도 산림을 지키는 일
숲 가꾸기의 좋은 방안 중 하나는 임도를 확장하는 일이다. 과거에는 산에 도로를 내는 것 자체를 산림 훼손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만 갈수록 솎아베기를 통한 경제림의 개발과 산불 방어를 위해서는 임도를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의 임도 밀도는 3.97m/㏊로 독일(54m/㏊)의 14분의 1, 일본(23.5m/㏊)의 6분의 1 수준이다. 산불 진화에 있어서 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작년 울진·삼척 산불에서 입증됐다.
금강송 군락지가 위치해 있어 전 국민이 노심초사했던 울진군 소광리 지역의 산불은 전체 산림 면적 3705㏊ 중 6.1%에 달하는 225㏊만 피해를 입었다. 반면 같은 산불이 발생한 응봉산 권역은 1만169㏊ 중 19.1%에 달하는 1933㏊가 피해를 입었다. 두 지역의 피해 규모를 가른 것이 바로 임도였다. 임도 밀도가 소광리 권역은 13.0m/㏊에 달했으나 응봉산 권역은 0.14m/㏊에 불과해 거의 임도가 없다시피 했다.
송영범 산림조합 남부토목사업소장은 "소광리 권역에는 기존 임도 폭보다 넓은 산불예방임도까지 몇 해전 설치돼 중대형 소방차와 산불진화 급수차량의 신속한 투입과 원활한 교행이 가능했다"며 "진화헬기가 뜰 수 없었던 야간에도 임도를 활용해 진화차량과 진화대원을 산불 발생지역으로 즉각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이 금강송 군락지를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송 소장은 "임도를 설치하면 조림이나 벌채 등 산림사업 비용을 30% 줄일 수 있고, 산불 예방 효과가 큰 데다 산간마을 교통 개선으로 주민 편익까지 높일 수 있다"며 "향후 산림 휴양 레포츠 활성화에도 임도 활용 가치가 높은 만큼 임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우리나라 산림에 임도 설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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